결혼의 계절이라는 봄, 그래서인지 11일 개봉한 영화 [신혼여행]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미스테리에 살인극, 코미디와 멜러가 혼합된 짬뽕영화라는 점이 그렇고, 이런 혼란스런 장르의 영화가 감독과 작가의 첫 데뷔작이라는 점이 그렇다. 더더욱 그런 느낌을 부추기는 것은 영화의 제목. 新婚이 아니라 身魂이다. 결혼한 신혼부부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난데없이 영혼이라니, 특이하다 못해 기괴한 느낌을 주는 이 영화의 감독과 작가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약속장소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는 기자는 상당히 긴장된 상태였다. 두 사람을 한꺼번에 인터뷰하기도 처음이려니와, 결혼에 귀신이야기, 미스테리까지 짬뽕시킨 독특한 데뷔작을 들고 나타난 신인감독과 작가는 왠지 기괴한 사람은 아닐까 하는 (시덥잖은) 생각 때문. 그러나 두 사람은 오히려 '떼'로 나타난 기자들에 놀란다(그날의 일행은 취재기자 1명, 무비카메라 1명, 사진기자 1명, 홍보팀장 1명까지 총 4명. 일반적 인터뷰는 취재기자 1명, 사진기자1명). 인사가 오간 뒤 두사람이 건넨 첫 질문. "원래 이렇게 하는 건가요?"
첫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 큰 탓이겠지만 지나친 겸손처럼 보인다는 말에 나감독은 "세상에 영화처럼 쉬운 게 없잖아요"한다. 영화가 쉽다니? 잠시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이어지는 대답. "돈내고 들어와서 그만큼 즐기려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게 극장에 들어온 관객들이잖아요. '자, 해 봐. 웃어주고 울어줄게' 그런 준비가 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만큼 쉬운 게 어딨어요. 그런데 원하는 만큼 반응이 나오지 않더라구요. 관객들이 좋게 봐주는 것 같아요" (웃음)
일단 '재미있는 영화론'으로 말문을 연 윤작가는 다소 단호함이 느껴지는 어투로 말을 이었다. "저는 우리영화 재미없다고 말하는 사람 못봤어요. 왜, 영화가 끝나고 화장실에 가서 듣는 반응이 진짜잖아요. 배우도 아니고 얼굴도 안 알려졌으니 모자 내려쓰고 화장실 가면 관객들의 자연스런 반응을 들을 수 있거든요. 다들 재미있다고 하더라구요. 재미없었어요?" 갑작스런 질문에 되려 기자가 당황했지만 신인의 패기와 자신감이 느껴지는 대답이다. 그러나 영화 [신혼여행]은 시사회 이후 "재미는 있는데 좀 산만하다"는 이야기가 중평이었다. 이러한 평가를 전하자 나감독은 "더 용감해졌어야 하는데 좀 안타까워요. 앞으로는 관객과 같이보며 메모할 생각이예요"라며 대답을 대신했다.
[신혼여행]이 첫 데뷔작이긴 나감독도 마찬가지. 학창시절 단편영화를 만들었던 것을 빼면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나 감독 타이틀을 걸고 영화를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란다. 그러나 임권택 감독 등 충무로 연출부로 오랜 활동을 해 왔기에 어쩌면 그가 가진 '내공'도 만만치는 않을 것 같다.
"원래 따로 구상하던 것이 있었기 때문에 '신혼여행'은 라인업이 다 구성된 뒤에 참여했다"는 감독의 말대로, 사실 장르결정권은 감독에게 있었던 것 같지 않다. 분업화된 영화제작의 전형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런만큼 의견조율이라는 부분이 중요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작가가 촬영내내 함께 했다고 하니, 생각의 차이를 조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내용 수정이 있었다는 이야기. 시나리오의 구상부터 해온 작가로서는 불만도 있을 법 한데, 윤작가는 내내 미소만 짓고 아무말이 없다. 첫 영화인만큼 아무래도 욕심이 많았을 것 같다며 운을 뗐다. "더 많이 웃기고 야하고 무서운 영화가 되길 바랬어요. 감독님이 수위조절을 하신 거라고 생각해요. 연출력으로 멜러부분에 대한 보완도 하셨구요"라며 슬쩍 돌려 이야기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묻어난다.
한쪽은 끊임없이 미안해하고 한쪽은 추어올리고, 작가와 감독의 기묘한 공방이 재미있다. 그 모습이 너무 친근해보여 시비도 걸어 볼 겸, 좋은 시나리오작가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여백이 있는 시나리오가 좋은 것 같아요. 연출자들이 시나리오를 쓰면 너무 꽉 짜여져 있어서 지루해 지는 경우도 종종 생기거든요.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니까, 여러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약간 빈 구석을 마련해 두는 게 좋지 않을까 해요. 끼어들 틈을 줘야죠."하며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의견을 술술 피력하는 나감독.
공모전 당선으로 공식 데뷔를 했으니 전업작가로 나설만도 한데, 윤작가는 생각이 좀 달랐다. "기본적으로 천억을 넘기는 헐리우드 영화와 게임이 되려면 시나리오가 좋아야죠. 우리나라에는 시나리오 전문작가가 없어요. 시나리오만 써서는 돈이 안 되거든요. 생활이 불가능하니까 영화감독 방송작가로 나서는 거죠"
제작과 관련된 환경이야기가 나온 김에 신인감독들의 활약에 비해 중견감독들은 제대로 영화조차 만들지 못하는 우리 풍토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나감독은 "용감해질 필요가 있어요"라며 또한번 좌중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는데, "생각이 있으면 16미리 들고라도 찍으면 되는 거예요. 일단 시도해야죠. 환경 문제도 크지만 이전에 했던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안 해본 것들에 도전하는 용감성이 필요하죠."한다. 환경에 대한 비판이 먼저 나올 줄 알았는데 기대밖의 이야기다. 오랜 연출부 생활에서 나오는 균형감각일까?
"영화촬영장은 처음이었거든요.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죠. 촬영하는 거 구경한다고 하다가 여기저기 끼어들어 NG내고. 경찰서 앞에서 살수차 동원해서 물뿌리는 장면에서도 그랬어요.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카메라 동선안에 들어가 있더라구요. 배부르게 욕 먹었죠"하며 웃는다. 어쨌든, 그런 이유인지 영화에 윤작가가 등장하는 씬이 있다고 한다. 1초정도라니, 눈 크게 뜨고 찾아 보시길(나감독은 이 부분에서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로 기자들을 반쯤 뒤집어 놓았으나, 대개가 '베드씬 촬영'에 관한 것들이라 차마 이 자리에 못 옮겼다).
나감독은 "그동안 하고 있던 일도 있고 해서, 그걸 계속 추진해 볼 예정이고... 사실 아직 개봉도 안 했으니 구체적인 건 없죠. 앞으로는 뮤지컬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라며 뜻밖의 짤막한 대답으로, 역시 구체적 계획은 없다는 윤작가는 한 번 더 '재미있는 영화론'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맺었다.
인터뷰 내내 나감독과 윤작가는 서로의 대답을 보충해가며 성실하게 임했고, 덕분에 영화전반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겸손하지만 진지하고 자신감 넘치는 두 사람과의 대화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나홍균 감독 E-mail: nhk8927@netsgo.com
윤제균 작가 E-mail: jkyun@lgad.l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