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호머 심슨이 위대한 미국인을 뽑는 투표에서 1위에 올랐다는 건 미국인들에겐 자랑할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그것도 영국인들이 뽑은- 콩가루 가족을 지향하는 심슨 가족의 가장으로 무뇌적 성향을 지닌 호머 심슨은 그 자체만으로도 미국인에 대한 조롱적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친밀감이란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가족적 결속력을 찾기 힘든 이 부조리한 가족은 의외로 사랑스럽다. 그건 이들이 보여주는 행위가 사건을 만들지만 그것이 사회를 어지럽히는 악행의 의도를 지니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며, 더불어 그것이 오히려 사회의 의도된 악행을 방해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슨 가족, 더 무비>도 마찬가지다.
자학적 개그를 자행하는 이 애니메이션의 골 때리는 이야기는 때론 너무 노골적으로 수준 이하를 스스로 표방해서 기가 막힐 정도다. ‘TV시리즈를 극장에서 보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호머 심슨의 대사는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을 농락하는 직설 화법처럼 들리지만 이는 동시에 이 시리즈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는 교감이기도 하다. 결국 이 시리즈에 대한 적당한 이해가 있는 관객은 그들이 벌이는 좌충우돌의 우스개 에피소드가 담고 있는 해학적 함의를 받아들일만한 자세가 됐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심슨 가족>은 스스로가 유치하고 저질스러운 화법을 지녔음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이는 어느 누군가에겐 너무나 격식이 없어서 눈살 찌푸리게 할만한 일이겠지만, 어느 누군가에겐 너무나 솔직하여 통쾌한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거침없는 언사가 지향하는 건 단순히 하위 문화적 개그쇼가 아닌 고단수의 해학적 은유에 가깝다. <심슨 가족>의 행위는 가족 내부에 한정된 좌충우돌이라기보단 사회를 감싸고 있는 커뮤니티 전체와의 충돌로 인한 소통으로 번진다. 이는 가족으로 한정된 커뮤니티의 결속이 심화되는 현대의 사회에선 이색적이며 동시에 그 좁은 울타리를 부수는 일탈의 쾌감으로 확대 해석된다. 또한 제도권의 음모는 어수룩한 이들의 실수에 얽혀 분쇄되거나 표면으로 드러나 비난 당한다. <심슨 가족, 더 무비>도 마찬가지로 환경 문제에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안일한 대처를 보이는 미국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조롱이 섞여 있다. 그건 생각이 너무 없어서 탈이지만 그 덕분에 '사람들은 통계치만 들이대면 다 믿는다'는 말을 거리낌없이 할 줄 아는 호머 심슨의 직설적인 화통함과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는 영화가 아닌 TV시리즈 중 그의 대사다.- 그건 바로 약자로서 지닐 수 있는 저항의 골계미라 치켜세울만한 이 작품의 매력이다.
물론 98분 가량의 러닝타임이 2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이 시리즈의 매력을 100% 보여줄 수는 없지만 이 시리즈가 지닌 매력이 어디서 발생하는가 정도는 확실히 보여준다. 제도적 권위에 대한 조롱은 비판적 쾌감으로 배출되고 유명 인물과 작품들이 패러디로 전복된다. <심슨 가족, 더 무비>는 ‘우리의 미덕은 대개의 경우 위장된 악덕에 불과하다.’란 라코푸슈코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진실처럼 포장된 거짓이 드러나고, 선의로 위장한 악의를 풀어헤치는 순간, 이 시리즈가 지닌 진정한 미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것이 바로 3D라는 기술적 성과를 빌리지 않고도 이 평면 캐릭터들이 시대를 넘어 스크린에 진입 장수할 수 있는 현세의 가치가 아닐까. 물론 모든 걸 떠나서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웃음만으로도 <심슨 가족, 더 무비>의 효용성은 충분하다. 물론 그 안에 담긴 심오한 배려까지 파악한다면 더욱 바람직하겠지만.
2007년 8월 9일 목요일 | 글: 민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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