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쥐는 말 그대로 황당한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만화 속에선 황당한 상상도 의지를 지닌 캐릭터를 입히고 실행이란 스토리에 착지하면 유용한 현실이 된다. <라따뚜이>는 불가능한 꿈에 대한 실현 의지다. 물론 그런 실현을 보여주는 방식은 애니메이션 특유의 생기발랄함과 다양한 개성을 살린 캐릭터들의 표정 연기가 주는 즐거움을 통해서다.
<라따뚜이>는 생기 넘치는 캐릭터들을 통해 생생한 질감의 이야기를 만든다. 천부적인 요리사의 재능을 지녔지만 쥐인 레미와 재능은 없지만 인간인 링귀니가 손을 잡으며 윈-윈 전략의 공조 관계를 취하며 만화적 상상력을 생활력 있는 이야기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협력 관계는 단순한 협조 이상의 유대감을 형성하며 부분적인 결핍을 서로의 관계로 극복하는 루저들의 성공담으로 발전한다. 할 수 없다는 고정 관념은 링귀니가 레미의 재능을 머리에 업고 주방에 서는 순간, 만화적 생동감으로 바스러진다. 조그만 생쥐의 모험담이란 비현실적 무리수가 강행되지만 장르적 감동의 극대화를 거둔다.
마치 누구보다 높이 날고 싶었던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꿈을 담은 ‘갈매기의 꿈’처럼 <라따뚜이>는 누구보다 요리하고 싶었던 쥐, 레미의 꿈을 실현하는 만화적 상상이다. 네 발의 쥐가 두 발로 걷는 애니메이션의 상상력은 장르에 국한된 즐거움임에 틀림없다. 또한 그런 상상력에 기댄 캐릭터가 살아 숨쉬는 <라따뚜이>는 애니메이션에서 누릴 수 있는 재미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라따뚜이>는 볼거리 이상의 감동이 차려진 진수성찬이다. 자신의 출신 성분을 극복하는 쥐의 성공 스토리는 어려운 현실앞에 투덜거리는 누군가에겐 분명 그럴 듯한 깨달음을 줄 법하다. 더불어, 냉정한 음식 평론가 이고의 마지막 대사는 자신이 사랑하는 그 어떤 것에 대한 애정 어린 성찰을 일깨우는 벅찬 대사로 기억될만하다. <라따뚜이>는 ‘꿈은 이루어진다’ 식의 해피엔딩으로 포장한 허구라 단정짓기 전에 화려한 데코레이션보단 소박한 정성이 진한 감동을 우려낼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무엇보다도 두발로 걷는 생쥐들만큼 <라따뚜이>는 사랑스럽다. 이런 행복한 작품을 맛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2007년 7월 10일 화요일 | 글: 민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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