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1문 1답
공식적인 데뷔작이 <환도와 리스>가 맞는지 궁금하다.
그 영화는 처음에 연극을 위한 대본이었다. 연극지휘를 하며 생각났던 것들을 영화에 집어 넣었다. 영화를 찍을 당시에는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어서 주중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만 영화를 찍는 식이었다. 지금도 이해를 못하지만 영화가 개봉하자 멕시코 인들이 모두 나를 죽이려고 안달들이었다. 가장 크게 문제가 된 장면은 소녀가 돼지를 낳는 장면이었다. 나는 연어 같은 존재라 흐름을 거스르려는 경향이 있다. 매번 만들었던 영화마다 그 당시 상영되던 영화계에 역행하는 작품들이었다. 내가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요시하는 건 ‘시(詩)’다. 시는 모든걸 가능하게 만든다. 음악과 의상, 편집 연기까지 다 하는 나를 봐라.(웃음)
한국에서 개봉하는 작품들이 모두 종교 색이 강한 것 같다. 러시아 계 유태인인 당신의 출생과 관련이 있나? 30년 만에 리마스터링을 했다는데 개인적으로 그때와 지금의 다른 점을 말해준다면?
정확히 말하지만 나는 칠레사람이다. 할아버지가 러시아 여자를 강간한 적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서 낳은 여자가 바로 나의 어머니다. 칠레에서의 나는 초현실주의자이자 예술가였다. 그 당시와 달라진 점을 꼽으라면 외면을 더 늙어버렸지만 내면은 더 젊어졌다는 거다. 그때는 죽지 않을 사람처럼 살았는데 지금은 죽을 거란 걸 안다.(웃음)그래서 하루하루가 보석 같은 것 같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세상을 바꾸려 시작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로봇으로 변하고 도시는 시멘트 무덤으로 바뀌고, 정치하는 사람은 인형 같다. 영화는 마약이 아니고 치유를 위해 존재한다. 의식을 깨기 위한 도구란 걸 깨달았다.
예민한 질문이 될 수도 있지만 16시간 상영으로 진행된 <듄>프로젝트가 무산된 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뭔가를 할 수 없을 땐 다른걸 하면 된다. 대신 <듄>을 코믹만화로 만들었다. 한국에도 번역된 걸로 알고 있는데?(웃음) ‘좌절’이란 거는 길을 바꾸는 것 뿐이다.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그렇게 힘들지 않다. 난 내가 쓴 작품을 가지고만 영화 작업을 했는데 지금은 치유를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방한 일정스케쥴이 궁금하다. 좋아하는 한국영화와 꼭 같이 작업하고 싶은 배우가 있는지?
현재의 할리우드 영화는 13살짜리도 만들 수 있을 만큼 매번 같은 기법, 같은 주제, 같은 철학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영화의 기술과 배우들의 연기는 이미 일본과 홍콩 영화를 초월했다. 사실 이 나이가 되면 이름을 외우기가 쉽진 않다.(웃음) <왕의 남자>, <괴물>, <음란서생>,<올드 보이>, <한반도>, <섬> 등 정치적인 문제를 상업화해서 영화로 만들어내는 부분이 굉장히 흥미롭다. 오늘은 이준익 감독과 만난다고 알고 있어 기대된다.
<엘토포>에 실제 아들이 출연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쯤이면 마흔살정도 됐겠다. 속편에 그 아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고 했는데 그럼 그 분이 또 출연을 할수도 있나?
그 아들은 현재 연극을 하고 있고 그 딸들도 연극을 한다. 이건 재앙으로도 볼 수 있는데(웃음)다른 아들도 각자 화가와 재즈밴드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예술가가 된다는 건 끔찍한 일이기에 내 자식들은 상업에 종사하길 원했다. 물론 후속 편을 만든다면 그 아들말고 다른 아들까지 모두 출연시킬 것이다. 작년에는 가족 모두가 출연한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는데 그건 우리집안의 전통과도 같다. 할아버지가 신발제작을 했다.그런의미로 나에게 신발은 큰 의미가 있다. 23살에 칠레를 떠나 40년 동안 조국에 돌아가지 못했는데 칠레에서 가져온 건 그 신발밖에 없었다. 지금 신고 있는 건 친구들이 만들어준 건데 걸을 때마다 ‘으르렁~’거리는 동물소리가 난다. 내가 만들고 싶은 신발은 떠다닐 수 있는 신발이다.
마지막으로 한국관객이 개봉하는 영화를 어떻게 봐주길 바라는지 궁금하다.
나는 부정적인 예술에 지쳤다. 관객이 어떻게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단지 젊은이들이 많이 와서 보고, 나 같은 늙은 사람이 극장으로 오길 바란다.고양이나 새가 와서 보면 너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새는 독수리인데 다른 짐승의 썩은 고기를 먹는다는 게 좋다.(웃음)
2007년 3월 6일 화요일 | 취재_이희승 기자
2007년 3월 6일 화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