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불안했다. 박신양이 선택한 영화란. 나는 비디오로 [편지]를 보다가 잠들었으며, TV에서 방영하던 [약속]은 반도 못 보고 채널을 돌려버렸고, [화이트 발렌타인]은 시놉시스만 읽었다. 음, 또 뭐가 있더라.
[인디안 썸머]도 그랬다. 예고편을 보고 그 불안함이 다시 엄습해왔다. '그 곳에 서있지 말아요, 나 살고 싶어지니까.' 그리고 이미연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 또로록. 그렇지, 또 시작되었군.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나 당신을 사랑하리다' 류의 눈물짜내는 한국 멜로 영화.
갑자기 다가온 운명같은 사랑, 하지만 그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여주인공의 죽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뻔한 사랑의 레파토리가 아닌가. 물론 [인디안썸머]는 대부분 불치병이었던 여주인공의 죽음을 '사형'이라는 상황으로 전환시켜 놓긴 했지만, 의도한 만큼 신선하지는 않다. 시한부 인생임이 너무나도 뻔하고, 짧은 시간에 즐기는 사랑의 도피 행각(?) 또한 많이 보아왔던 장면들과 크게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헤어짐을 전제한 짧은 사랑은 얼마나 애절할까, 감독은 이런 생각에 얽매여 있고, 가장 큰 문제점은 감독의 의도가 너무나 빤히 보인다는 것이다.
이신영이 진실을 밝히고, 마치 살 것처럼 굴다가 갑작스레 죽음을 택하는 마지막 장면도 분명 서둘러 마무리하려던 흔적이 역력하다. 아직까지도 의문이 든다. 도대체 이신영은 왜 죽어야 했을까. 자신이 살해한 것도 아니면서, 왜 사형을 선택해 일부러 죽어야 했을까. 이신영이 죽은 것이 아니다. 감독이 죽으라고 시킨 것이다. 그렇게 밖에 안 보인다. 그래서 좀처럼 눈물이 나지 않는다.
멜로영화는 관객에게 의문의 여지를 주어서는 안 된다. 관객들이 '저런 상황에서 저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 거야.' 끄덕끄덕 절절히 동감하며, 스크린 속 인물에게 푹 빠져들어 그들이 느끼는 대로 울어야, 잘 만든 멜로영화인 것이다. 이것은 치밀하고 논리적인, 탄탄한 구성을 기반으로 한 흡인력있는 영화에서만 가능하다. [인디안 썸머]는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구멍이 숭숭 뚫린 실패한 멜로영화이다. 더 이상 한국 관객을, 멜로영화를 물로 보지 말라. 아무래도 진부한 레파토리에서 벗어나기 힘든 장르인 만큼 더욱 신선한 감각과 치밀한 구성, 잘 닦인 내공이 필요하다.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를 섭외했다고 해서 마음 놓아버리는 '적당한' 멜로영화는 이제 안 된다.
멜로는 신파가 아니다. 눈물을 짜내어야 멜로영화라는 잘못된 선입견은 이제 버려야 한다. 한국멜로영화에도 다양한 접근과 시각이 필요하다. [편지]류 영화의 성공으로 보장받은 한 입장에서 안주하려는 안이한 태도는 버리길 바란다. 오히려, 이미 봇물처럼 터져나온 신파조 영화들에 지친 관객들의 냉담한 시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군더더기를 잘라내고 깔끔하게 핵심만 보여주었더라면, 섬세한 감정묘사와 스릴넘치는 미스테리가 가미되었더라면, 어쩌면..어쩌면..- 불안감은 못내 씁쓸한 아쉬움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