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류 건달인 강재(최민식)는 깡도 끈질김도 없는, 도무지 건달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내다. 미성년자들에게 포르노 비디오 테이프를 팔다 구류를 살고 나오고 깡패 조직의 후배들에게까지 무시를 당하며 상황은 그를 참담하게 만든다. 그나마 유일한 희망인 배 한 척을 사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조차 요원하기만 하다. 그런 상황에서 옛친구이자 조직의 보스인 친구를 대신해 살인죄를 뒤집어 쓰는 것과 배 한 척을 살 수 있는 돈의 교환은 뿌리치기 힘든 제의일 것이다. 이미 그는 헤어나오기 힘든 절망의 수렁에 한 발쯤 빠져 있으므로. 그 어름에서 예전 자신이 돈을 위해 위장 결혼을 해 주었던 중국인 아내 '파이란'(장백지)의 죽음 소식을 맞는다. 그리고 그는 서류상 남편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죽음을 수습하러 간다. 그가 처한 상황을 고려할 때 그 여정은 자신의 어긋난 이전 삶을 버리러 가는 과정이다.
"바닷소리 들립니다. 비 옵니다. 아주 캄캄합니다. 누운 채, 손 한 쪽으로만, 서투른 글씨 미안합니다./ 고로 씨가 정말 좋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누구보다 고로 씨가 좋습니다. 아픈 거 괴로운 거 무서운 거가 아니라 고로 씨를 생각해서 울고 있습니다. 매일 밤 잠들 때 꼭 그랬던 것처럼 고로 씨 사진 보면서 울고 있습니다. 항상 그랬지만, 친절한 고로 씨 사진 보면 눈물이 나옵니다. 슬픈 거 괴로운 거가 아니고 고맙다로 눈물 나옵니다."
비록 골격만 가져 왔지만, [파이란]의 원작인 아사다 지로의 소설 <러브 레터>는 그 자체로 맛깔스런 소설이다. 소설 속 죽음을 앞둔 '칸 파이란(姜白蘭)'이 말단 야쿠자 조직원 고로(영화 속의 강재)에게 보내는 '러브 레터'의 이 구절쯤에서 읽는 이는 망연해진다. 편지의 사이 사이에 드리워진, 이국땅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한 외로운 여인의 실루엣은 그대로 읽는 이의 삶을 돌아 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 [파이란]에서는? 영화 속에서 그 메시지는 강재를 통해 반사된다. 소설의 미세한 감정 흐름의 전달이 행간의 의미를 들이미는 직접적인 것이라면, 영화 속에서는 강재라는 인물을 통해 그 감정선을 간접적으로 건드리는 것이다. 영화 속 강재는 파이란의 편지를 읽으며, 그녀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실어나르는 매개자인 동시에 그것을 통해 변화하는 당사자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듯, 만일 영화 [파이란]이 주는 감동은 다분히 강재 역을 맡은 최민식의 몫이다. 이 영화를 최민식의 영화라 해도 과장이 아일 정도로 그의 연기는 소설 속 행간을 메꿔, 원작의 감동을 오롯이, 아니 어쩌면 더큰 파장으로 관객들에게 전해준다. 영화 후반부 '파이란'의 유해를 품에 안고 담배로도 막지 못하는 격한 감정에 흐느끼는 강재의 모습만으로 그건 충분히 대변된다.
그 모습은 무언가 보는 이들의 삶을 되돌이키게 하는 힘이 있다. 하긴 강재의 삶이란 조금 극단적일 뿐,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습가 어딘가 닮아 있다. 살면서 한번쯤 참담함에 빠지지 않는 사람 그 뉘 있으랴. 그 참담함에 몸서리쳐 보지 않은 이, 또한 앞으로 그러지 않을 이 몇이나 되겠는가. 또한 그 참담함의 결과가 강재처럼 얼굴의 상처로 외형화하진 않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 생채기로는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강재가 생각치 못한 것에서 진실로 자신을 친절한 사람이라 생각해 주었던 이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 보았듯, 영화를 통해 그러한 계기를 마련했던 우리들은 그 되돌아봄의 끝, 길거리 어느 모퉁이에선가 작지만 큰 깨달음 하나 떠올리며 슬며시 미소짓지 않을까. 일찍이 한 시인이 설파했던 것처럼. ―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너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