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라이브가 간절히 그리웠음은 사실임에 틀림없다. 때문에 이런 기회는 평소보다 몇 퍼센트의 기대는 더 가지게 되는 법이다. 30년이 넘는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음악 페스티벌-글래스톤베리. 한번쯤은 저런 곳에서 이성을 잊고 빠져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해 본적이 있지만, 금전적, 물리적, 시간적 요인들이 발목을 잡고, 막상 저런 환경에서 2박 3일을 보낸다면 깨끗한 물로 샤워하고 침대에서 두 발 쭉 뻗고 자고 싶은 기본적 욕구가 얼마나 간절할까 따위를 소심하게 우려하다, 한번쯤 해방되고 싶어하는 정신을 잡고 마는 당신에게, 기회가 왔다. 극장 안에서 조용하고도 편하게 앉아 영국의 한 시골 농장에서 펼쳐지는 이 페스티벌의 열기를 나눌 수 있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주는 ‘사실감’이 평소 무겁게 느껴졌었다 할지라도, 이 영화는 음악 페스티벌을 소재로 하고 있기에 또 다른 대중성의 코드를 갖는다. 콜드플레이, 라디오헤드, 블러, 비욕, 데이빗 보위, 펄프, 케미컬 브라더스, 프라이멀 스크림, 오아시스, REM, 벨벳 언더그라운드, 앨리스 콜트레인, 프로디지 등 여타의 쟁쟁한 이름들이 주는 기대감과 극장의 빵빵한 사운드로 쏟아져 나오는 이들의 라이브 음악들, 그리고 감독이 실제로 담은 2002년 축제 현장과 공고를 통해 모은 900시간에 달하는 페스티벌의 역사가 담긴 영상들이 보여주는 생생하고도 생경한 현장이 가진 ‘사실감’은 실로 유쾌하기까지 하다.
물론 예기치 않게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나체를 비롯해 마약, 히피들의 문제, 그리고 조용한 삶의 터전이 방해 받지 않기를 바라는 주민들과의 갈등 등 영화는 동시에 이 페스티벌이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잡기까지 생기는 불가피한 갈등과 이해관계의 충돌을 보여줌을 잊지 않는다. 곳곳에서 펼쳐지는 돌발 행동이나 너무 상식적인 주민들의 반응들은 의도와 관계없이 관객들에게는 같은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이 영화가 페스티벌의 역사에 대한 기록물이라는 무게는 더해주기도 한다.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페스티벌을 유지해 온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았고 영화의 서사 구조는 때론 이 무게로 늘어지게 되는 것이 필연적인 그 순간에 흥미로운 것은 그 찰나마다 이 축제를 처음 만들었던 농장주 마이클 이비스를 비롯해 페스티벌을 만들어 가는 이들이 문제점과 마주할 때마다 얼마나 초기의 정신과 순순한 그 의도를 잊지 않고 공정하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자 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 무거움은 다시 페스티벌이 가진 순순한 열망의 근원을 보여줌으로써 유쾌해진다.
페스티벌의 처음과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 조용한 시골 마을의 정경과 사람들이 떠나고 난 빈 농장에는 가끔씩 날리는 쓰레기만큼이나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 2박 3일간 그곳을 가득 메웠던 음악과 열기는 공기 속으로 흩어졌고 세월의 흐름 속에 페스티벌의 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담장이 남은 그곳에는, 한때 그곳에서 울렸던 음악, 열기는 꿈처럼 사라지고 이제 그 순간을 기억하는 유일한 증거가 될 이 필름만이 남았다.
위로를 삼아 영화를 본 것이건만 영화를 본 후 역시 라이브에 가고 싶어지는 것은, 역시 영화만으로는 그 생생한 열기의 대리 만족이 불가능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이 영화가 라이브의 열기를 너무 생생히 전달하고 있기 때문일까.
| | - | 펜타포트, 후지락, 썸머소닉 등을 ‘늘’ 꿈꿨지만 올해도 ‘또’ 좌절된 분 | | - | 위에 열거한 뮤지션의 이름 하나하나에 가슴이 뛰는 분. | | - | 음악과 영화를 동시에 누리고 싶은 분 |
| | | | - | 페스티벌의 이름을 비롯해 열거한 뮤지션에 이르기까지 그 중 당신을 전율하게 만드는 단어가 하나도 없는 분 (혹은 그게 누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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