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 1962년 출생. 동국대 연극영화과 졸업. 88년 실험극단의 '실비명'으로 데뷔. 연극 '에쿠우스' '택시 드리벌' '햄릿1999' '박수칠 때 떠나라' 등 출연. 드라마는 '야망의 세월' '서울의 달' '사랑과 이별' 등에 출연. 영화는 89년 '구로아리랑'으로 데뷔한 이래 '넘버 3' '조용한 가족' '쉬리' '해피 엔드'에 등장했으며 28일 개봉하는 새영화 '파이란'(송해성 감독, 튜브픽쳐스)에서 절정의 연기를 보임. 서울연극제 연기대상, 아ㆍ태영화제 남우조연상,동아연극상,대종상 남우주연상 등 수상.
사회성 짙은 작품서 '혼의 연기'
우리 시대의 배우 최민식. 라일락 꽃향기가 그윽한 서울의 봄,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약속시간 보다 일찍 와 있었고 늘 그렇듯 다소 구겨진듯한 편안한 옷차림에 수염을 기른 일상인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카메라 앞에 섰을때 그는 빛나는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는 집념의 배우다. 그렇다. 최민식은 감각적인 스타가 아니라, 진정한 연기자다. 일상에서는 그지없이 평범한 인간이지만,작품 속에선 처절한 연기로 인간과 인생을 표현하는 빼어난 연기자다. 그의 연기는 보통의 수식어로 말하기 어렵다. 표현하는 인물마다 그 냄새와 색깔과 향기과 슬픔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작품에 대한 집중력이 뛰어난 예인이다.
그를 '우리 시대의 배우'로 부르고 싶은 것은,그가 출연한 작품들은 대개 우리시대의 삶을 반영한 사회성 짙은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또 그는 진지한 자세로 선 굵은 자신의 연기 세계를 만들어왔고 또 만들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출연한 작품들은 적어도 우리시대의 살아있는 인물의 모델로,관객들에게 자신의 삶을 반추시켜보는 거울같은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다.
최민식은 두둑한 배짱의 사나이다. 자신을 지키기 어려운 이 시대에 자신의 연기혼을 찾아가고 또 지켜내기 때문이다. 그는 "배우는 기록경신을 위한 달리기 선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흥행=스타'란 이상한 등식에 의해 연기력까지 폄하 당하는 우리의 세태. 그는 배우란 진솔한 작가주의 영화나,진지한 주제의 영화,단편영화를 하면서 탄력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배우는 흥행 신기록을 쫓는 무리가 아니라,정신사를 만들어내는 역할까지 맡고 있기 때문"이란다.
출연작이 흥행에 다소 실패했다고 그 배우의 연기력이나 능력을 평가절하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민식은 그런 면에서 100%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이젠 많이 자유로워졌고 또 앞으로도 더 자유로워지고 싶단다. 이번에 개봉하는 [파이란]과 앞으로 찍을 [장승업]은 천박한 대중적 허상에서 벗어나 연기자로서 진정한 가치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작업에 참가하게 됐다고.
그는 28일 개봉하는 문학적 향기가 잔잔히 배어있는 빛나는 영화 [파이란]에서 인천 뒷골목의 삼류건달 이강재역을 맡았다. 말이 삼류건달이지, 중국에서 온 처녀를 팔아넘기기 위해 위장결혼까지 하는 기생충 같은 인물이다. 비열하고 파렴치한 그러나 내면적으로 인간애를 지닌 복선적인 인물이다. 최민식은 그런 인물의 성격을 탁월하게 그려냈다. 절절한 '건달끼',목적을 잃어버린 눈빛,그리고 극전체를 감싸는 분위기. 그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스크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게 최민식의 힘이다.
삼류도 안되는 인물과 그 주변부적인 인간들의 삶을 절제된 연기력과 영상으로 보여준 게 이 영화의 미학이다. 아주 뛰어난 미학이다. 멜로 건 아니건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영화 자체가 가치가 있는가,아닌가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파이란]은 우주속을 살아가는 인간 그중 부초처럼 떠도는 인간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최민식의 거칠음, 장백지의 순백미가 합쳐진 이 영화는 분명 우리 영화의 수확으로 기록될 것임에 틀림없다.
극단 실험극장의 연극 '실비명'(윤호진 연출)을 시작으로 연기활동을 연 그는,현대인의 방황하는 정신사를 질문한 피터 쉐퍼의 연극 '에쿠우스',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 [쉬리]에서 북한 전사역을 맡아 대형배우로 인정 받았다. 연극,드라마,영화 등 다장르를 오가면서 자신의 연기력을 닦아온 그는,2001년 봄 우리 시대의 연기자로 우뚝섰다. 언제나 풋풋한 사나이 최민식의 생각속으로 들어가봤다.
▲ 지난 겨울 세달 동안 열심히 만들었어요. 서해안 인천에서부터 동해안까지 감독 스태프진 그리고 출연진들이 애써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 파이란을 저 세상으로 마지막 보내는 화장터 신에서 상대 배역을 패는 장면이 있었어요. 한찬 패고 난 후 누군가가 그래요, 극중 배역 이름을 강재 대신 제 이름을 불렀다는 거에요. 강재씨 왜 그래가 아니라 민식씨 왜 그래라고 했다는 거에요. 정말 추운 날씨였는데, 한바탕 웃고 다시 촬영했지요.
▲ 그렇죠. 파이란을 팔아넘기기 위한 위장 결혼이었으니까요. 그녀가 죽은 후 만나게 되는 상황설정이어서 촬영하면서 가능한 안만났어요. 팀워크보다 영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지요. 감정축적을 통해 영화 속에서 표현하고 싶었지요.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어요.
▲ 사랑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랑이라면 거짓말이지요. 증명사진 1장 달랑 보고 사랑을 말할수 있겠어요. 사랑이란 말도 나누고, 싸우기도 하고, 밥도 같이 먹고, 스킨십도 있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중국에서 인천으로 와 직업소개소에서 삐끔이 본 것 밖에 없는데, 사랑은 아니죠.
▲ 강재는 결국 파이란의 편지에 의해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파이란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동해 바다에서 꺽꺽 우는 것은, 여자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었어요. 자신의 삶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강재가 거울보듯이 자신의 내면의 얼굴을 보게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지요. 삶에 대한 통곡이지요. 그게 이 영화가 일반 멜로와는 다른 멜로영화라는 점이지요. 영화선택의 결정적인 계기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그 친구가 그러더군요. 홍콩에선 1년에 10편을 찍는다구요. 1달에 한편씩 영화를 만들었다구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우리는 1년에 걸쳐 1편을 찍기도 한다구요. '파이란'의 경우 석달 동안 찍는 것은 무지하게 빨리 찍는 것이라고. 추운 날씨에도 카메라 앞에 서면 참 열심히 연기하더군요.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 나오느니 욕이었어요.(웃음) 인물이 그러니까요. '넘버 3'에서도 검사로 나와 자극적인 욕을 해, '욕하는 검사'로 불렸는데 이번에도 욕좀 했지요. 시나리오 그 자체가 욕이었어요. 편하게 쓰는 욕, 맛깔스러운 욕은 없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대사를 했어요.
▲ 단순히 멋있는 선남선녀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나누는 살가운 사랑 이야기가 아니어서 좋았어요. 고정관념화된 멜로의 개념을 뛰쳐 나간 영화여서 좋았구요. 서류상 부부지만 전혀 만난적이 없는 여자의 편지에 의해 스스로의 삶을 자각하고 구원의 메시지를 얻는 강재. 그 여인의 편지로부터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그녀의 죽음으로 부터 인생의 참의미를 느끼는 그런 멜로영화지요.
▲ '넘버3'에서 검사역이 최고의 직함이었어요. (웃음) 잘 나가는 인생보다 어영부영하는 주변부적인 인생살이를 하는 인물들을 주로 맡았어요. 극중에서도 여복도 없었구요. '해피엔드'에선 무기력한 남편, '쉬리'에선 애써 키워 놓았더니 엄한 놈(?) 하고 사랑에 빠지고, 아무튼 그랬어요.
▲ 선호하는 장르는 없어요. '흐르는 강물처럼'같은 영화는 무척 기억에 남아요. 영화 속 플라잉 낚시 장면은 압권이었어요. 그런 영화 좋아해요. '대부' 좋았구요.
▲ 특별한 것은 없구요. 뛰는 운동을 주로 해요. 요즘은 황사핑계대고 잘 안하지만요(웃음). 달리기 축구 등 땀흘리며 뛰는 운동이 좋아요. 술 역시 좋아하구요.
▲ 영화 '조용한 가족' 할 때 드라마를 마지막으로 했어요. 소위 말하는 겹치기 출연이었는데, 에너지를 한곳에 모을 수가 없었어요. 잠도 차안에서 자야했구요. 전 너무 정신없는 시스템은 어떤 장르의 무슨 작품이든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일수 찍듯이 작업할 순 없잖아요. 연기란 집중력이 필요하고 그 집중력을 위한 여유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 요즘 배우들은 흥행에 대한 부담감이 큰 것 같아요. 배우는 기록 경신선수가 아닙니다. 영화란 장르의 상업적인 측면도 물론 이해를 해요. 문학적인 향기와 한국적인 정서를 제시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상업적인 것만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배우들 자신도 손님이 안들 것 같은 영화를 사양하는 것 같아요. 흥행성 작품만 쫓으면 균형적인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양적 팽창도 중요하지만 질적 균형도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선 영화 '파이란'이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음 작품인 태흥영화사의 '장승업'(임권택 감독, 이태원 제작)에 몰입할 겁니다. 요즘엔 먹갈고 붓잡는 법 등을 배우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