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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 교수의 영화와 정신분석 - '왕자와 공주' 또는 '자리 바꾸기'
프린스 앤 프린세스 | 2001년 4월 26일 목요일 | 서울대교수(비교문학) 고원 이메일

영화는 모두 여섯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길지 않은 영화인데도 관객에게 1분간의 휴식시간을 허용하고 있다. 영화의 흐름을 끊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고 유익한 영화이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중세의 프랑스, 파라오의 이집트, 18세기의 일본, 미래의 지구, 그림 동화의 독일 등 다채로운 배경 속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재도 다양하다. 마녀와의 사랑, 무화과의 꿈, 옷과 강도, 개구리 왕자와 공주, 새와 조련사, 다이아몬드와 개미 등 일상적인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의 세계가 관객을 잠시나마 다른 세상으로 데려간다.

'옷과 강도'의 이야기부터 먼저 보도록 하자. 젊은 강도가 중년 여인의 옷을 훔치려다가 고생만 죽도록 한다는 내용이 표면적으로 크게 부각되어 있다. 남자는 몸이 건장하다. 좀 특이한 것은 그의 코다. 우뚝 솟은 코가 그만 끝에 가서 납작코처럼 죽어있다. 처음에 그는 두 여자의 이야기를 몰래 엿듣는다. 두 여자의 모습은 휘장으로 가리워 있어 그 윤곽이 뚜렷하지 않다. 윤곽을 부각시킨 영화에서 이 장면만은 윤곽을 일부러 흐리고 있다. 관객으로서는 더 주의를 집중할 수밖에 없다. 마치 그 엿듣는 남자가 그렇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관객을 그 남자의 자리로 한번 옮겨보자.

남자는 다만 그녀의 옷을 빼앗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옷을 빼앗지는 못한다. 그 대신 그는 그녀를 업고 그녀가 가고자하는 곳으로 움직여야한다. 옷은 그녀가 입고 있다. 그녀를 그가 업고 있다. 그렇다면 제한된 의미에서나마 그는 계획대로 그녀의 옷을 빼앗은 셈이다. 그녀의 옷을 입고 그는 뛰어난 풍경을 즐긴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그녀의 하이꾸를 즐긴다. 하이꾸를 지을 줄 안다면 그녀는 게이샤이다. 그러나 늙은 게이샤이다. 그 늙은 게이샤의 비싼 옷만을 그는 갖고자 했다. 그러나 그럴 수만은 없다. 옷과 함께 그는 그녀의 몸을 빌려야한다. 옷과 여자 그리고 여자를 업고 있는 남자는 영화와 관객의 관계를 설명하는 멋있는 환유이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영화의 제작과정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매번 주인공의 옷차림을 바꿔주고 있다는 사실을 이런 맥락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의 마지막 이야기에서 개구리 왕자와 공주 사이에 벌어지는 <자리 바꾸기>는 관객과 영화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서양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일본문화에서 일본춘화가 빠질 수 없다. 여자를 업고 땀을 뻘뻘 흘려야 하는 남자는 어찌 보자면 춘화의 주인공 같다. 그는 그녀의 옷을 빼앗을 수 있는 곳까지만 그녀를 업고 가고자 했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시점까지만 여자를 찾는다. 그런 다음에는 그녀를 버린다. 영화에서는 그 욕망의 관계가 뒤집혀 있다. 문제는 여자의 욕망이다. 남자가 여자를 버리려던 시점에 여자는 남자의 허리를 죈다. 그 힘에 꼼짝 못하고 남자는 여자의 명령대로 움직인다. 성적인 암시가 뚜렷하다. 그의 몸은 여자의 욕망을 다 채워주고도 남을 수 있을 만큼 아주 탄탄하게 생겼다. 남자가 여자를 노리고 시작된 관계는 남자 등에 업힌 여자가 그 남자를 선택하면서 점입가경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가파른 고개를 올라갔다 내려가는가 하면 폭포수가 떨어지는 명승지에도 간다. 그리고 마침내 안개에 휩싸인 후지산까지 올라간다. 남자의 몸에 밀착된 상태에서 여자는 지속적인 오르가슴을 체험하는 셈이다. 그 체험이 끝난 다음 그녀가 남자에게 옷을 벗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이 모두 끝났기 때문이다. 옷을 벗으면서 일이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 두 남녀의 관계는 옷을 벗으면서 일이 끝나고 있다. 옷을 입고 일을 벌이는 것이 바로 춘화의 속성이다.

다음으로 '무화과의 꿈'을 보자. 무화과가 여자의 성을 상징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주인공 남자는 여왕과의 사랑을 꿈꾼다. 이것은 죽을 죄를 뜻하기도 한다. 여왕의 측근신하가 나중에 목이 잘리고 마는 장면에서 여왕과의 사랑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무화과의 꿈이 다만 여자와의 성 관계를 꿈꾸는 것이라면 굳이 그런 위험한 관계까지 갈 필요는 없는 일이다. 영화 속의 영화제작 과정에서 여자는 파라오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여자가 파라오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쨌든 여자는 파라오가 되어 젊은 남자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간접적으로 동성애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문맥에서 재미있는 것은 남자가 바치는 물건이 여자를 상징하는 무화과이고 여자가 이것을 받아먹는다는 사실이다. 측근신하는 이 사실에 아주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그리고 남자로 하여금 수건으로 입을 가리도록 한다. 수건으로 입을 가리는 행동 속에는 여성의 기호가 엿보인다. 두 사람의 관계를 간파한 사람은 바로 그 측근신하이다. 그는 두 남녀 사이에 벌어진 비밀의 동성애를 묵인하지 않고, 오히려 수면 위로 떠올리도록 만든 셈이다. 그리고 결국 살해당한다. 금기를 건드린 것은 무의식의 차원에서 동성애의 심리를 만족시킨 두 남녀가 아니라, 의식의 차원에서 그 동성애를 지적하며 조롱한 바로 그 신하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파라오로 등장한 여자에서 이미 <자리 바꾸기>가 실현되어 있다. 남자 속의 여자 그리고 여자 속의 남자라는 양성의 문제가 마지막 작품인 <개구리 왕자>에서 왕자와 공주 사이에 벌어지는 변신의 과정에서 실현되기에 앞서, 이미 전반부에서도 심도 있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영화제작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여기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두 젊은 남녀와 한 사람의 늙은 남자가 그들이다. 그는 특히 그의 매부리코에서 아주 독한 인상을 풍긴다. 마귀 할아버지 같은 인물이다. 그의 역할은 세 사람이 함께 영화에 등장하는 첫 작품 '다이아몬드와 개미'에 잘 표현되어 있다. 공주는 마술에 걸려 움직이지 못한다. 마귀 할아범이 다이아몬드를 먼저 발견하여 그녀를 마술로부터 풀어줄 수 있는 기회를 얻지만, 결국 시간에 쫓겨 일은 실패하고 그는 그만 개미로 바뀌고 만다. 다이아몬드를 찾기에 앞서 그 둘은 개미떼를 본다. 왕자는 개미를 살려주었고 마귀할아범은 개미를 불태워 죽이려든다. 결국 개미떼의 도움을 받아 왕자는 111개의 다이아몬드를 모두 찾아 공주를 다시 살려낼 수 있게 된다.

111개의 다이아몬드는 상징적이다. 개미 떼의 힘을 빌려 비로소 모든 다이아몬드를 찾아낸다는 이야기의 설정에 함축된 사실은 그것이 사실은 공주의 것이 아니라 여왕의 소유물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공주는 여왕의 자리를 탐내다가 결국 벌을 받은 셈이다. 그리고 공주와 여왕의 그런 관계는 '백설공주'에 잘 드러나 있듯이 아주 복잡한 관계이며, 왕도 어쩔 수 없다. 마귀 할아범으로 등장하는 왕은 왕자보다도 더 많은 다이아몬드를 발견한다. 그러나 그도 111개의 보석을 한꺼번에 찾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가 살려준 개미떼의 도움을 받은 왕자만이 다이아몬드를 다 발견할 수 있고 그런 왕자만이 공주를 살려 그녀와 함께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프랑스 영화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에는 프랑스 대혁명의 역사가 녹아있다. 그렇다면 마귀 할아범은 단두대에서 목이 달아난 왕이기도 하다. ('무화과의 꿈'에서 처형된 신하는 이런 문맥에서는 위에서와는 다르게 해석될 필요가 있다.) 역사와 현실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꿈과 동화의 세계가 함께 펼쳐진다. 세 사람의 제작진이 동시에 영화에 출연하면서 그들은 현실과 꿈을 넘나든다. 현실과 꿈의 <자리 바꾸기>가 실현되는 것이다. 그 지혜의 자리에서 아테네의 부엉이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자리 바꾸기>는 글쓰기의 현장인 바로 여기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혜의 부엉이가 되어 그 자리를 지켜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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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jin4rang
기대되요...아   
2008-10-17 08:44
rudesunny
기대됩니다~   
2008-01-14 14:47
rudesunny
기대됩니다~   
2008-01-1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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