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가 보이는 아름다운 야경. 노라 존스의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고 영화가 시작된다. 일본의 풍경은 한국과 닮은 듯 하지만 결국에는 그 색감이 다르다고 했던가. 정적이고 옅은 톤이라는 일본영화가 가지는 일반적으로 가지는 이미지와 함께, 영화가 시작하면 내리는 비처럼 무겁게 차분해지는 공기들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책을 열어 몇 문장을 읽기 시작했을 때 느껴지는 여운의 무게를 정확하게 잡아낸다. 한눈에 봐도 최상류층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멋진 야경의 집. 그 분위기에 어울리는 부티 나고 우아하면서 거기 어울리는 묘한 여유를 가지 여자. 그리고 그녀의 곁에 있는 ‘음악적으로’생긴 여백 같은 남자.
도쿄를 배경으로 그려지는 서양 취향의 작가 에쿠니 가오리 원작의 ‘고급’불륜 드라마. 이 영화 <도쿄 타워>의 시작이다.
스물 한 살의 토오루(오카다 준이치) 와 마흔 한 살의 시후미(구로키 히토미). 그리고 이들보다는 ‘상대적’으로 평범한 토오루의 친구 코지(마츠모토 준)와 키미코(테라지마 시노부).
이들의 사랑이 가진 장애물은 범상치 않은 나이 차이보다도 ‘불륜’이라는 한 단어. 그러나 원작자인 에쿠니 가오리는 원작자는 늘 사랑이라면 내부에서 세간의 통념을 담지 않는 게 특기이기에 영화는 그 결정적 장애물을 그냥 감싸며 흘러간다. 화려하게 치장된 분위기 있는 사랑이든 변화에 끌려 히스테리성으로 치닫는 사랑이든 사랑은 그냥 사랑인 거고 지금은 생각하기 싫다는 그런 기분이 영화의 전반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남편이 아닌 그의 앞에서 결혼하길 잘 했다고 말하는 그녀. 같은 것을 보고 있어도 함께 있을 수 없는 그녀. 하지만 늘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처럼 무시하려고 해도 이들의 사랑은 불륜의 통속적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시후미가 불륜을 했다는 것보다 그 상대가 나이도 한참 어린 자신의 아들이었다는 것보다 그런 아들의 가장 아름다운 청춘에 그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뿐이었다는 게 원망스러운 토오루의 엄마의 반응처럼 어떤 식으로든 불륜은 그 사랑으로 인해 상처를 받는 사람들을 만들고 있기에 그저 사랑만으로 넘어가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해피엔딩은 어디로 흘러 가야 하는 걸까.
영화에서는 원작에 없는 결말이 준비되어 있다. 영화의 결말에 점을 찍어주려는 건지 아름답게 그리려 했지만 무시할 수 없는 불륜이라는 어두움을 종국엔 사랑이라는 밝은 풍경으로 정리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여하튼 해외 로케까지 하면서 준비된 결말이 등장한다. 현실적이지 않지만 매력적인 그들의 사랑을 보여 주었지만 그 사랑의 나름 낭만적 결말은 반대로 굉장히 현실적 여운을 남겨 주고 만다. 앞으로의 그들은 어떻게 될까? 우아하고 잡을 수 없던 그녀가 모든 경제적 현실적 조건을 포기하고 그의 현실로 생활로 들어와도 그들은 계속 사랑에 빠져 있을 수 있을까?
계속 시간은 흐른다. 도쿄타워는 늘 그 자리에 있고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지만 공기는 매일 변하고 그 공기가 설명할 수 없는 만남을 계속 만들 것이다. 에쿠니 가오리 라는 일본 작가와 일본의 텔레비전 방송국의 자본, 그리고 일본 영화의 분위기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도쿄타워>라는 이 영화. 그래서인지 풍경이 마지막까지 도쿄였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어쨌든 ‘사랑’이라지만 결말까지 ‘사랑’을 너무 낭만으로 도배하면 반대로 현실이 더 리얼하게 느껴지고 말 테니까.
●관람가
☞때로는 와인 한잔에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멋진 야경을 원하는 ‘사실은’ 고상한 취향인 분.
☞낭만의 완성을 위해선 프랑스어라도 배워 둘 의지가 있는 분.
☞‘음악적’으로 생긴 남자를 감미로운 영상으로 감상하고 싶은 분.
●관람불가
☞조용하게 분위기를 잡으면 가려움증이 재발하는 분.
☞불륜에 대한 아주 원천적 기억 또는 위험한 환상을 갖고 계신 분.
☞<프라하의 연인> 같은 드라마의 연애 어록들을 늘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하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