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공항, 웬 가죽 자켓을 입은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다. 어찌 보면 조금은 도도한 듯 카리스마 있게 보이기도 하고 싸가지 없이 건방지게 걸어가는 모습이 인상 깊게 다가오는 듯 한데 어라,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어, ‘원빈’ 아니야, 정말? 당연히 아니지. 바로 일본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키무라 타구야’이며 그가 몇 년 전 일본 시청률 1위를 기록한 <Good Luck> 이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 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예전에 서민에게는 그림에 떡인 L표 비싼 청바지 CF에서 키가 크지 않은 동양인이 아크로바틱(?) 체조하는 것을 보셨을라나?
그래도 잘..에이, 위에서 설명했잖아, 배우 원빈하고 닳은(솔직히 원빈이 닮은 거지만..)원조 원빈, 그래도.. 그럼 뭐.. 거시기 아시죠? 검색창으로 때려보시라. 어찌되었던 간에 필자가 재팬드라마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요렇게 시작되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짜잔.
에로 기사만 쓰다가 무비스트 미모의 여기자의 달콤한 말에 속아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지만 이상하게 자세 안 나오네(오, 희안하네). 아~ 정말로 ‘S’로 시작되는 단어의 파워가 이 정도란 말인가? 솔직히 툭 깨놓고 이 물 건너 온 드라마를 좋아하진 않았다.
TV에서 삶에 고개 숙인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가슴속 뜨거운 뭔가를 팍팍 새겨주셨던 존경하는 ‘이순신 장군님’의 역사 드라마만 봐도 알 수 있고 우리보다 정치, 경제, 사회면에서 잘 나가는 것도 그렇고 젠장, 그러니 일본톤의 발음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거슬리고..(근데 이게 또 AV로 넘어오면 180도 달라져요. 그 ‘야매떼~~ 5.1채널 서라운드 소리가 화면을 통해 ‘링’처럼 스멀스멀 퍼져 올 때면 아래쪽 뭔가의 힘을 불끈하게 하니..)
우리나라에 일본문화가 개방되기 전, 당시에는 희소성과 더불어 잘난 척 및 약간의 마니아적인 경향을 따라가긴 했지만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물론 애니메이션은 빼고.. 그러던 어느 날, 모 술집에서 후배들과 술을 마시고 있는데 뒤쪽에 모임에서 한창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가만 들어보니 어떤 모임 같기는 한데 일본 드라마가 어쩌구 키무라가 저쩌구~~, 슬쩍 듣고 있다가 후배녀석에게 ‘야 ‘키무라 타구야’가 누구냐? 라고 물었더니 필자보기를 한심하게 쳐다본다.
SMAP도 모르냐고.. (*끼, 지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겁나게 무시하네) 숟가락으로 귀밥 좀 파줄까 하다가 그 넘에 술값땜시 포기하고 알코올 기운이 반쯤 얼굴을 지배한 상태로 집에 돌아와 자판 때려잡기를 한지 몇 시간.. 대충 드라마 리스트가 필자 앞에 뚝 떨어졌다.
결론은 키무라 뭐시기한 배우의 드라마만 보더라도 대충 짐작을 할 수 있겠다는 애매모호 뿌듯한(?)계획을 세우고 다음날부터 <Long Vacation>을 포함 <Hero>, <Good Luck>, <Pride>,<미녀 혹은 야수>,<고쿠센>,<GTO>,<골든볼>, 그리고 최근에 막을 내린 <엔진>까지.. 그리하여 보고 느낀 재팬 드라마의 몇 가지 특성을 대충 말씀 드리겠사오니 ‘에고 겨우 그 정도보고 네가 뭔데 그 따위 결론을 내리는 거야’ 하고 욕하지 마시고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길 바란다. 왜냐면 시작 전에 벌써 제목으로 실상을 낱낱이 말씀드렸으니 말이다. X도 모르면서 아는 척 하기라고..
☞ 첫째. 시리즈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
이 야그가 무신 말인가 하니 우리나라 드라마는 몇 부작인지 도통 분간을 할 수가 없다. 요즘엔 많이 사라졌지만 예전엔 시청률이 좋으면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질질 끌어서 시청자들에게 비판이 되거나 재미없다 싶으면 바로 종영해 버리는 거 말이다. 그러나 일본드라마들은 거의 12부작을 넘는 경우가 없는 거 같다.
물론, 일본은 일주일에 한번만 드라마를 방영한다고 하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아무리 인기가 좋아도 아메리칸 스타일로, 즉 시즌으로 속편을 시작한다. 여기에 우리처럼 한 인물이 클로우즈 업 되거나 궁금증을 유발하는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회가 결말을 짓고 다른 회에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어찌되었던 재미가 있건 없건 간에 일정한 길이가 정해져 있으니 거 부담 없네..
☞ 둘째. 공주와 왕자님이 등장하지 않고 소재가 다양하다.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드라마의 캐릭터는 상당히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경우가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 중 무조건 한쪽은 돈이 많고 재벌이거나 재력이 없으면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태생이 나중에 알고 보니 배다른 동생이나 형.누나,이모.삼촌인 콩까루 집안들(우라질 돈 많은 사람들은 다 그런거야?) 와. 정말 짜증난다.
그러나 일본드라마 주인공들은 돈 없고 빽 없는 평범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다. 샐러리 맨이나 전문직을 가지고 있더라도 나름대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라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능력이나 모습이 현실적이라고 해야하나? (그렇다고 다 그런 건 아니다) 물론 캐릭터마다 특유의 개성이나 카리스마는 곳곳에서 엿볼 수 있으나(특히 키무라 타쿠야의 드라마의 경우..)거부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스토리가 되는 소재도 요리에서 레이싱까지 가지각색 다양한 주인공들이 등장, 여기에 우연은 등장하나 우리나라 드라마 식의 기적적인 우연은 등장하지 않고 확실히 현실적이라는 점이지..
☞ 셋째. 여성 캐릭터들이 상당히 적극적이다?
이점이 현재 우리나라 드라마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 중에 한 부분일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바 즉, 재팬드라마의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전문직을 가지고 있으며 상당한 사회적 지위도 가진 인물이 등장한다. 그렇기에 사랑표현도 남자주인공이 소극적이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반대로 여성들이 주체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쉬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단면적으로 <미녀 혹은 야수>라는 드라마에서도 엔딩씬에서 남주인공이 공항까지 가서 쭈뼛쭈뼛 서있자 여주인공이 먼저 키스를 하는(이 여배우 내가 좋아하는 배우인데.. 이름이 뭐더라?)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러니 일본여성들이 우리나라 드라마처럼 남자 주인공이 적극적으로 대쉬하고 사랑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던지는 드라마 속 모습을 보니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솔직히 자랑이지만 우리나라 남자 배우들이 더 미모(?)가 더 뛰어나지.)
다시 말하면 일본드라마는 좋게 이야기하면 깔끔하고 쿨하지만 우리나라 드라마처럼 스토리의 기복이나 클라이막스를 느끼게 하는 것이 부족하다. 오메, 쓰다 보니 일본드라마의 단점이 되버렸소..
이외에도 한편의 MTV 뮤직비디오처럼 외국의 유명팝송이나 음악을 가지고 오프닝씬을 만든다거나 일정시간 드라마의 일부 장면을 진행시키고 나서 오프닝으로 들어가는 등 여러가지 차이가 있으나 무엇보다 드라마는 그 나라의 사회, 문화와 유행을 한번에 보여주기 때문에 그 파급효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와 얌전하게 바른말만 쓰려니까 디따 힘들다.)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조차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으니까 말이다.
한때 일본문화가 개방되기 전 일본드라마의 소재나 스토리를 베끼는 경우가 많았던 우리나라의 드라마들은 이제 그것을 역으로 능가, 드라마로 일본사람들의 눈과 귀를 빼앗아 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예전에 TV에서 보니 지금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유행하는 스토리나 캐릭터는 이미 예전에 일본 드라마에서 유행하던 것이라고 한다.
스스로 자만해서 돈벌기만 급급하다면 80년대 후반 홍콩영화가 우리나라에 불었던 잠깐의 바람처럼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야그다. 자. 대충 무식한 넘이 필자보다 더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 앞에서 S(?)를 벗어버리고 건전한 삶을 공유하기 위해 몇자 적어보았다. 느낀 점은 필자는 역시 건전한 삶 보다는 에로.. 에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