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에 10대를 보낸 사람이라면 모두 기억하는 말하는 자동차 ‘키트’는 <전격 Z작전>이란 프로그램으로 우리나라에 깊이 인식되어 있다. 반면에 국내에서 생소한 ‘허비’는 40년간 미국의 안방극장에서 사랑 받던 캐릭터로 말만 하는 키트와 달리 범퍼를 이용해 미소 짓고, 헤드라이트를 통해 윙크를 해대는, 말 그대로 온몸으로 말하는 자동차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겐 오일을 쏴주기도 하고 본네트로 턱을 쳐버리는 액션까지 펼친다.
게다가 할리우드의 영 파워 2순위인 린제이 로한이 왕년의 TV스타 허비와 호흡을 이뤄 세계 최대 레이싱 경기인 나스카(NASCAR) 챔피온쉽에 도전한다는 줄거리는 어느 로맨스 영화 못지 않은 시기와 질투, 눈물과 환호를 어우러진 보기 드문 가족 영화로 거듭났다. 속칭 ‘딱정벌레’라고 불릴 정도로 깜찍한 폭스바겐 비틀을 모델로 했기에 보기만해도 속도감이 느껴지는 레이싱차와 비교해 과연 잘 달릴 수 있을까?하는 의아함을 느끼기에 충분한데 폐차장에서 건진 허비의 튜닝 과정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누구보다 많은 협찬과 지지를 했을 것 같은 폭스바겐 사(社)는 이번 영화에 단 한푼도 지원하지 않은 걸로 알려졌다. 제작진은 미국전역의 비틀 클래식을 수소문했고 허비와 함께 유년시절을 보낸 차주들은 흔쾌히 영화출연을 위해 자동차 제공을 허락했다는 후문이다. 누구보다 땀내나는 ‘레이서’의 세계를 담은 스포츠 영화지만 인간의 감정을 지닌 딱정벌레 자동차 <허비>는 되려 재기와 성공드라마에 가깝다.
특히 실제 나스카 경기가 열리는 현장에서 양해를 구해 촬영을 하고 나중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수정한 경기장면은 속도광이 아니더라도 그 스릴감에 흠뻑 빠질 만큼 현실감 있다. 누구보다 레이서의 피를 타고났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위험하지 않는 안정된 직장을 갖길 바라는 아버지와 딸의 갈등은 성공된 삶과 자신이 원하는 삶에서 갈등하는 사회초년생의 갈등을 첨가해 젊은 여성들이 공감할만한 이슈를 이끌어냈다.
사람이나 자동차가 인생의 화양연화는 있는 법. 과거 승승장구 하는 자동차 허비가 인간마냥 온갖 트로피와 스캔들로 신문의 1면을 장식하는 빠른 화면 전개는 영화 속 스피드 만큼이나 스릴 있다. 게다가 명문 카레이싱 집안의 유일한 아들이자 린제이 로한의 오빠로 나오는 레이 페이톤 2세의 깜족 같은 양보는 허비와 린제이 로한의 오해를 풀어주는 결정적 역할을 해준다. 원년<배트맨>이었던 만큼 멋지게 늙어준 마이클 키튼과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의 원조 꽃미남 맷딜런의 연기 대결도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