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목요수다회]는 무비스트 기자들이 같은 영화(시리즈)를 보고 한 자리에 모여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관람 후 나눈 대화인 만큼 스포일러가 잔뜩 포함돼 있으니 관람전 독자는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아름답다
재하 보면서 딱 든 생각이 ‘칸 감독상 탈만하다’ 였어요. 최근 나왔던 영화 중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그림이나 미장센이 뛰어난 영화는 다 보고 난 후 미장센이 서사나 스토리와 이질감이 든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요. 박찬욱 감독님이 대단한 점은 그림(미장센)과 서사를간극 없이 딱 밀착해 붙여 놨다는 거예요. 별 이야기가 없는 것 같은데도 미장센 안에 다 녹아 들어있거든요. 사실 광고에 쓰일 법한 연출이나 그림이 많아서 이상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 ‘박찬욱 감독의 월드에 초대합니다’하는 느낌이에요. 내 발로 들어갔으니 당신 뜻에 따르겠다고 마음을 확 열게 합니다.
은영 멋진 표현인데요! 박찬욱 월드에 초대해서 (무엇이든) 기꺼이 따르도록 만들었다니. 어쩌다 보니 앞부분 1시간을 못 보고 부산 파트(편의상 1부)의 마지막 부분부터 봤는데 이때는 정말 절절한 로맨스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다시 한번 더 보니 이번에는 블랙 코미디 같은 거예요. 왜 이렇게 웃기죠? 인물의 행동 하나하나가 복기되면서 너무 재밌더군요.
금용 제 친구도 비슷한 얘길하던걸요. 이상한데 ‘박찬욱 감독이지’ 하고 납득하니 괜찮다고요. 제작보고회에 참석했는데 그때 코로나로 인해 후반 작업 기간이 길어졌고, 덕분에 미술 등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하면서 아름다운 영화라고 말씀하셨어요. 미장센으로 유명한 분이 그렇게 자신할 정도면 얼마나 좋길래 하면서 궁금했죠. 실제로 보니 너무 아름다워요. 분위기, 미술, 세트, 그리고 문학적이라고 할지 현실이라면 기묘한 느낌이 들 대사까지도 어우러져서 너무 좋았어요. 수사극 로맨스라고 하는데 사실 수사극보다는 로맨스에 방점이 찍혀 있고 2~3년 사이에 본 정통 멜로 중에서 최고였습니다.
은영 필름누아르의 성격을 띤 수사, 멜로, 코믹, 드라마가 뒤섞인 복합장르인데 전 굳이 하나만 꼽으라면 블랙코미디라고 하고 싶어요. 캐릭터들이 아닌 듯 무심하게 웃음을 주잖아요. 게다가 소품을 활용한 디테일은 또 어떻고요. 특히 특선 초밥세트와 핫도그! 여기서 핵심은 그냥 초밥 세트가 아닌 ‘특선’과 핫도그에 정교하게 뿌려진 ‘케?+머스터드 소스’라고 생각합니다. 그 순간 ‘서래’(탕웨이)의 표정, 꼭 주목해야 해요. (웃음)
재하 어떤 분이 ‘박찬욱 감독이 관객에게 마이쭈를 주는 것 같은 영화’라고 하는데, 정말 재미있는 표현이면서도 공감됐어요. 중고등학생들이 서로 마이쭈를 주면서 친해지잖아요. 뭐랄까, 고고하게 저 세상에 있는 느낌이던 감독이 마치 ‘나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하면서 대중과 친해지고 싶다고 마이쭈를 주는 듯한 느낌이라는 거죠. 트위터의 이 댓글을 먼저 읽고 영화를 봤는데 과연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호 VS 불호
은영 칸 수상부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고, 시사회 직후의 평가도 어마어마하게 좋았어요. 개봉을 고대하는 관객도 많았고요. 그런데 막상 호와 불호가 많이 갈리는 인상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개봉 첫 주 성적이 50만 명이 조금 넘는데 그쳤고, 현재는 88만 명 정도예요. 박찬욱 감독의 작품 중 가장 쉽고 취향 탈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라면 의외입니다.
금용 찾아보니 내용이 어렵다는 평가가 많아요.
은영 어려운가요? 굉장히 단순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보이는 것 이상의, 이면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골몰하기 때문일까요?
재하 기본적으로 플롯 자체는 단순한데 그림으로서의 이야기를 못 따라가는 게 아닌가 해요. 다시 말해 인물의 감정이 잘 잡히지 않는 거죠.
금용 영화를 너무 좋게 본 입장에서 어떤 단점에 대한 이야기에 크게 공감이 가지는 않지만 굳이 이해해 보자면, 미장센이 매우 아름다워 좋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마냥 예술영화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은영 어렵다는 게 정서적으로 따라가지 못해서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인물의 감정선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측면도 있겠지만, 보인다고 해도 납득되지 않는 거죠. 서래, 해준 두 사람이 사실 도덕적인 인물은 아니잖아요. 남편 살해 용의자에 용의자에게 빠져드는 형사, 게다가 형사는 멀쩡하게 가정 생활하는 유부남이기도 하니까요. 사실 ‘품위’와는 거리가 멀기도…(웃음)
금용 아무리 작품이 힐링되고 재미있다 하더라도 불륜이 개입되면 ‘꼭 불륜이어야 했냐’는 의견이 나오는 것과 달리, <헤어질 결심>은 남녀 주인공이 거의 반불륜인데도 이 점이 (거의) 언급되지 않아요. 제가 보기엔 둘의 스킨십이 없는 면도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정신적인 사랑인 것 같고, 그래서 거부감이 안 느껴지는 거예요. 오히려 해준의 결혼 생활이 둘의 사랑에 장애 요소처럼 느껴질 정도니까요. 개인적으로 불륜물에 좀 예민하게 불쾌감을 가지는 편인 데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아 참 독특한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재하 좀 전의 말과 비슷한 맥락인데요. 이미 박찬욱 월드에 발을 들인 이상 해준이 서래에게 왜 빠졌는지 또 서래는 왜 살인까지 불사하면서 해준을 만나려 했는지, 사실 납득이 안 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좋게 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걸 이미 논할 단계가 아닌 수준이 돼 버리는 거예요.
은영 결국 영화에 발을 들여놨느냐 못 들여놨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이 호불호가 지금까지도 있었지만, 그건 대부분 소재의 파격성과 수위 높은 표현, 인간의 왜곡된 면을 들춰내는 등 뭔가 불편하게 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엔 언뜻 보면 순하고 얌전하고 단순해 보이거든요. 아, 그리고 호불호야 원래부터 있었고 강했다 치더라도, <헤어질 결심>은 유난히 흥행 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어요. <아가씨>만해도 428만 명을 동원했거든요. 얼마 전 개봉한 <브로커>의 관객이 124만 명 정도인데 이에도 못 미칠 것 같아 슬프네요.
금용 제 생각엔 OTT가 대중화되고 영화 티켓값이 오르면서 사람들이 소위 ‘가성비’를 좀 더 따지게 된 거 같아요. 같은 값이라면 멜로, 드라마처럼 스토리 중심의 장르보단 마블 영화나 <탑건: 매버릭> 같은 볼거리 빼곡한 액션 블록버스터를 보는 게 '돈 값' 할 거라는 생각이죠. 무겁고 진지한 내용보단 가벼운 영화를 선호하는 최근의 트렌드도 반영된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실관람객 사이에선 N차 관람이 필수라는 이야기도 많이들 나오고 있고 입소문이 좋으니까 개인적으론 좀 뒤늦게 터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재하 저도 비슷한데 이제는 콘텐츠가 '영화관에서 볼 법한 작품'과 '집에서 봐도 좋은 작품' 정도로 나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박찬욱 감독 영화는 난해하고 예술작품이라는 고정관념이 깊게 박혀 있죠. OTT 한달 구독료에 맞먹는 돈을 주고 보기에는 위험부담이 큰 거예요. 예를 들면 <탑건: 매버릭>은 화려한 공중액션과 같이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는데 <헤어질 결심>은 조금만 기다리면 집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불호'의 위험성을 안고 영화를 보러 돈과 시간을 쓰기에는 부담이 크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은영 맞아요! 두 분의 의견에 동의하고요. 원체 경쟁작이 막강하고, 그러니까 영화관에서 보면 좋을 영화가 쏟아지고 있는 요즘에 개봉한 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또 하나는 그간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는 나름 상업적으로 재밌는 측면이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헤어질 결심>은 영화적으로는 물론 아주 좋지만, 과연 대중적인 ‘재미’가 있고 ‘오락적’이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면이 있어요. 다시 말해, 오락영화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고, 또 관객이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고 다가가기 때문에 영화의 코믹+웃음 코드에 접근하는 데 문턱이 높을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레츠 고! 박찬욱 월드!
재하 보면서 박해일 배우의 최고의 연기라고 생각했어요. 박해일, 고경표, 박용우 등분명 내가 보던 배우들인데 너무 다르게 느껴지는 거예요. 연출과 배우를 활용하는 데 있어 감독님의 스타일이 뚜렷한데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금용 여담이지만, 전 송강호 배우요. 박찬욱의 송강호와 봉준호의 송강호는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게 신기해요. <괴물>, <기생충> 등에서 본 송강호 배우는 정말 평범한 소시민인데 <박쥐>에서는 정말… 완전히 딴 사람 같아요! 또 감독님은 미장센도 유명하지만 여성 캐릭터를 잘 쓰기로 유명하고 그간 감독님과 작업한 여자 배우는 다 떴는데요. 특히 <아가씨>의 김태리 배우가 그렇죠. 이번에 탕웨이 배우는 평소에도 신비로운 느낌을 지녀서 그런지 여전히 신비롭지만, 막 새롭진 않았어요. 기존에 이미지 때문에 캐스팅하고 이를 그대로 가져갔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생각보다 한국어를 잘해서 놀랐습니다.
은영 탕웨이 배우는 아름답고 신비하고 귀엽기도 하고… 뭐 타고났죠! 그나저나 한국어 대사를 소리만 외울 수는 없다고 해서 글자부터 하나하나 배웠다고 해요. 감독님이 인터뷰 때 정말 칭찬을 많이 하셨어요. 언어 감각이 탁월하기도 하지만, 노력하는 정도가 대단하다고요. 심지어 글자도 잘 쓴다는대요! 이번에 감독님을 인터뷰하면서 참 질문에 성심껏 답해주는 분이라고 느꼈어요. 배우 한 명 한 명 애정어린 코멘트를 남기셨거든요. 여기서 다 얘기하기 힘드니 나중에 감독님 인터뷰를 꼭 한 번 읽어보길요. 또 역시 영화 애호가라는 생각이 든 게, <좋은 사람> 같은 한국 독립영화부터 <베네데타>, <퍼스트 카우>, <나이트메어 앨리> 같은 외국영화도 인상 깊게 봤다 하시더군요. 또 <파친코>에 출연한 김민하 배우도 신선했다고 합니다.
재하 봉준호 감독이 사회적인 이슈를 끌고 와 자기만의 색으로 영리하고 위트 있게 풍자한다면, 박찬욱 감독은 그보다는 오롯이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고 생각하는데요. 정말 영화적인 분인 거죠. 평소 창작의 영감을 어디서 받는지도 궁금하고요, 또 원작을 어떻게 그렇게 파격적으로 각색해서 자기화하는지 정말 감탄스러워요. 그리고 <헤어질 결심>이 예상보다 흥행이 부진해도 영화를 본 관객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가치를 이뤘다고 생각해요. 보다 더 대중적인 감독으로 한 발짝 다가간 거니까요. 예술성과 대중성을 다 갖춘 감독님으로 거듭나실 것 같습니다.
2022년 7월 7일 목요일 | 글 박은영 기자(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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