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간도 시리즈의 완결편인 <무간도Ⅲ종극무간>이 우여곡절 끝에 7월 2일 개봉하게 됐다. 대중과 평단을 동시에 열광시키는 보기 힘든 광경을 연출하며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홍콩 영화를 구원할 적자로 평가되고 있는 영화는, 상업영화의 미덕과 장점은 물론이고 완성도 측면에서도 여느 영화 못지않은 상당한 밀도를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의 반응은 그리 폭발적이지 않았다. 실망스런 수준은 아니지만 그네들과 비교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그래서 말인데 솔직히 필자, ‘무간도 시리즈’ 좀더 많은 분들이 봤으면 하는 바람 그득하다. 살맛나는 갈비 뜯다가 밑반찬 수거해가는 거 미처 신경 못 쓰듯, 그냥 스쳐 보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는‘환장했다’라는 표현이 더 없이 어울릴 정도로 홍콩 영화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 적이 있었더랬다. 보면서 별 생각 없이 좋다고 웃을지언정 진중하거나 눈물 따위를 흘릴 영화들은 아니다, 라고 단정 지었던 당시 중화권 영화들을 대한 최소한의 심리적 저지선마저 허물며 80년 후반에서 90년 중반까지 한국을 강타했던 바로 그 영화들, 우리는 그들을 주저 없이‘홍콩 느아르’ 또는 ‘형님 무비’라 일컬어 불렀다.
그러던 와중 2003년 초에 <무간도>가 한국에 입성했다. <고혹자> 시리즈와 <풍운> <중화영웅> 등 홍콩 영화의 기술적 측면을 진일보시킨 유위강 감독의 작품이라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만, 유덕화와 양조위라는 두 인물의 캐스팅이 마음에 걸려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지경이었다. 결국 영화를 보게 됐고, 그 결과는 <무간도>를 보기 전 품었던 그 모든 의구심이 속단에 불구했다, 라는 일깨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명맥이 끊어졌던 ‘홍콩 느아르의 부활’이라는 제하 아래 <무간도>는 도처에서 술렁이기 시작했고, 여러 영화매체에서는 적당한 긴장감과 함께 이 현상을 진단하는 글을 내놓았다.
<무간도>는 분명, 홍콩 느아르 장르에서 파생된 영화다. 동시에 그 장르의 관습을 스스로 허물거나 멀리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처럼 뒤바뀐 운명, 역전된 위치에 놓은 두 인물을 축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은 홍콩 느와르의 시원(始原)에서부터 찾아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구성의 묘다. 이수현이 조직원으로 주윤발이 경찰스파이로 등장한 임영동의 <용호풍운(한국에서는 <미스터 갱>으로 개봉)>을 시작으로 <첩혈속집>, <첩혈쌍웅> 그리고 할리우드가 넘어간 오우삼의 <페이스 오프>까지 수도 없이 이 장르는 이 보편적 얼개를 영화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렇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형님 무비들의 법통과 포개지지 않는 불균질한 요소들이 적잖이 포진돼 우리들의 예상을 뒤엎고 곳곳에서 이 장르의 문법을 해체하고 있다. 무엇보다 무간도 시리즈에는 그 넘쳐나는 과잉의 비장미가 거세돼 있다는 사실이다. 현실성은 휘발되고 무한한 폭력의 낭만성에 심취될 수 있도록 이끄는, 피 끓는 울분의 풍모를 고고한 자태로 보이게끔 복무하는, 과도한 슬로우 모션의 총질 결전이 목격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한 발을 쏘면 열댓 명이 알아서들 불구덩이 속으로 자빠지시는 악당들과, 열 발을 맞아도 큰 동작 없이 미세한 움직임으로 인고의 미덕을 만방에 떨치시는 주인공들의 살벌하지만 아름다운 총질의 안무가 당최 보기 힘들다는 말이다.
적이라 할지라도 종국에 다다르면 의리로 도원결의 해 죽음을 불사하면까지 서로를 감싸 안는 대견스런? 공동체 의식 역시 당 시리즈에서는 철저하게 무시된다. 뭉치면 사는 게 아니라 죽는 다는 지론을 갖고 있기라도 한 듯 무간도의 사내들은 죽어라 상대방을 의심하며 개인의 욕망에 충실하다. 그럼으로써 퀴어에 가까울 정도로 우정과 의리에 구속된 홍콩 느와르의 신화적 짝패 서사는 무간도에 이르러 와해된다.
이처럼 무간도 시리즈는 기존 장르의 지형도에서 벗어나 무모하리만치 다른 길을 선택해 걸어왔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긴장감 넘치는 치밀한 시나리오(유위강과 공동연출을 맡고 시나리오를 담당한 맥조휘의 힘이 지대했다)와 깊이와 날카로움을 더하는 촬영과 편집 그리고 그에 걸맞은 배우들의 살 떨리는 호연 덕택이다. 한마디로 기본에 충실했다는 거다.
특히, 쇠락해진 조직을 재건하기 위해 각 지역의 보스들을 규합 또는 응징하려는 삼합회의 보스 예영효(오진우)의 연기는 단연 발군이다. 학구적 풍모를 풍기며 CEO의 복장을 한 채 냉혈한의 차가움과 온화함의 따뜻함을 아우르며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대부>의 마이클(알 파치노)을 연상케 한다. 가족의 우애를 뜨겁게 그린 스토리도 그러하지만 낮은 조도와 어둠을 강조한 촬영술, 원편에 비해 길어준 영화의 호흡은 정말이지 <대부>를 닮은 구석이 많다. 이는, 홍콩 느와르의 또 다른 젖줄인 필름 느와르와 갱스터 영화의 분위기 형식을 <무간도2>가 빌려왔음을 말해준다.
또한 총 대신 등장하는 휴대폰은 시리즈를 관통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뇌관으로, 샐러리맨의 복장은 무게감으로, 명암을 극명하게 대비한 불빛은 필름 느와르의 깊이 있는 어둠으로 제 역할을 다하며 영화의 매혹적인 무드 생성에 일조한다.
양식화된 장르 안에서 기존의 것을 등지고 또 다른 좌표점을 설정하며 새로운 탐사를 펼친‘무간도 시리즈’는 너무 뒤늦게 도착한 감이 없진 않지만 홍콩 느와르를 한 단계 진화시킨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무간도의 캐릭터들은 우리네와 다를 바 없는 인물이기에 슬픈 존재들이고 그러기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의와 협이 사라진 지옥 같은 속세에 내쳐져 패닉 상태 일보 직전에 기거하고 있는 그네들의 비루한 삶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그 경계가 모호한 위험스런 위치에 선 바로 우리 세인들의 자화상이다. 결국, 무간도 시리즈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헤어날 길 없는 동시대의 서글픈 질곡을 나지막이 하지만 묵직하게 무간지옥을 통해 통렬하게 그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