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화를 놓고 갖가지 썰들이 종횡무진으로 교차된다는 현상은 그만큼 그 작품이 관객의 가슴살에 남겨놓은 해석의 폭이 크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재미가 있었다는 지배적 의견 하에 파생된 그것이라면, 이건 실로 성공적인 영화의 한 요건을 충분히 만족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우뚝 서 있는, 시대의 문화적 패러다임을 선도하며 가공할 만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매트릭스>의 재림이 이 같은 현상을 벌써부터 자욱하게 흩뿌리고 있는 중이다.
한데, 매트릭스 시리즈를 독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하고 있는 ‘의지가 현상을 앞선다’는 경구처럼, 우리는 이미 ‘매트릭스’의 거부할 수 없는 신화에 포박 당했다는 자백을 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말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일리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분명 틀린 말이기도 하다. 영화에 대한 전대미문의 기대감은 원편의 신인류적 감성의 이미지와 철학적 사유의 무한한 세례로부터 기인된 것이고, 속편의 극대화된 볼거리들의 무자비한 살포 역시 관객들을 충분히 홀릴 만했기 때문이다. 또한, 영악한 워쇼스키 형제의 철저한 계획아래 <매트릭스2 리로디드>가 1편과 3편에 뀡겨 있고, 별도로 진행 중인 <애니매트릭스>도 있기에 좀처럼 확실한 가닥이 잡힐 듯 말 듯 한 이야기에 대한 수많은 의견들의 치고받음은 필요불가결한 수순이라 볼 수 있다.
솔직히, 필자는 <매트릭스2 리로디드> 보는 동안 정신없었다. 인간의 이성으로 조합해낸 언어가 이다지도 필설로서 표현해낼 수 없는 것들이 무수한지 영화의 아크로바틱한 장면들을 보면서 절실하게 느끼기도 했거니와, 인간의 이성으로 길어 올린 ‘운명론’이니 ‘결정과 선택’이니 ‘인과이론’이니 하는 잠언적 말씀들에 이리 저리 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우선, 네오와 트리니트 모피어스가 인간의 최후의 도시 시온에 방문, 그곳에 암약하고 있는 실재의 인간들을 기계의 지배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매트릭스 심장부에 접근하며 사투를 벌인다는 영화의 이미지는 전편의 묵시록적 세계관을 성심성의껏 계승하고 있다. 다만, 무한대의 극치로 경이로움을 끌어올리려다 보니 디스토피아적 어두움이 조금은 희석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대신, 이러한 면을 리로디드는 매트릭스의 설계자를 비롯해 몇 명의 인물들의 입을 빌어 나지막이 설파하며 벌충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각효과와 서사에 간극이 발생하는 것이다. 재미를 위시로 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스펙터클의 황홀함에 워쇼스키 형제는 너무 치중했고 동시에 철학강의 시간도 늘렸다. 원편의 충격적인 아우라에서 크게 나아감이 없다는 주장도 맞긴 하지만 인간은 들려주는 것보다 보여주는 것에 더 마음이 동하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관객은 기겁할 만한 쿵푸+특수효과에 환호를 보내며 적잖은 에너지를 소진시켰고, 그럼으로써, 당연히 비대해진 텍스트의 메시지에 관한 측면에는 그만큼의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다.
결정적으로 거기에 더해, 한창 어리버리한 인물이었던 네오가 인식론적 헷갈림에 대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득도해가며 나아가는 모습을 서사와 액션의 맞물림 속에서 단계적으로 길어 올렸던 원편에 비해 <매트릭스2 리로디드>는, 따로 놀아서는 안 될 두 요소가 끝내 평행선을 달리는 듯한 인상을 심어준다. 한편, 주름이 적잖이 잡힌 스토리의 전개 과정과는 사뭇 다르게 이제는 주저 없이 웬만한 일은 알아서 팍팍 해나가는 네오의 용가리통뼈적 행보는 위의 가설과 여러모로 닮았다. 이것이 샌드위치 안에 놓여 흰자와 노란자가 버벅이 된 후라이 같은 리로디드의 숙명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은 것은, 전언했듯 엄청난 돈으로 때려 박은 물량과 CG를 원화평이 안무한 몸 움직임에 잘 입혀 워쇼스키 형제가 주조해냈기 때문이다. 짱깨권 배우들에 비하면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느려터진 동작의 서양인을 배려해 무한대의 속도와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한 공간 그리고 의상과 무기와 같은 소품들을 적절하게 특수효과에 배합한 결과가 보는 이들의 턱을 떨어뜨리기에 분명 모자람이 없었다는 얘기다.
따라서 중력과 물리의 법칙을 무시하며 저.고속 촬영과 와이어에 의지한 채 당당당 날아다니는 그네들의 모습이 공허하다며 리로디드 전체를 폄하한다면, 자신의 해석이 최종독본이기에 뭐 어쩔 수 없지만, 너무 가혹한 평이 아닌가 생각한다.
영화를 만족스럽게 본 많은 이들은 필시 <매트릭스2 리로디드>의 가공할 만한 이미지에 우선적으로 매료됐기에 그러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고 나서 신화적 상징과 기독교적 알레고리 위에 설계한 철학적인 사유에 대해 관심을 표명했다고 본다. 물론, 이 역도 성립하고, 또 둘 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비중의 위치로 가늠하고 본 관객들도 많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는 전자에 해당된다. 그러기에 한번 더 보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아마도, 대부분의 분들, 필자와 같은 심정이라 본다.
결론적으로, <매트릭스2 리로디드>, <매트릭스>를 통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기대감 딱 20% 정도만 덜어내고 보면 무지하게 흡족해하리라 믿는다.
*영화가 끝난 후 절대 마셔되던 음료 깡통과 씹어대던 오징어 부스러기 훌훌 떨어버리고 얼른 나가시지 말길 바란다. 친분이 있는 기자한테 뒤늦게 들은 이야긴데, <매트릭스3 레볼루션>의 예고편이 엔딩 크레딧 후에 나온단다. 극장에 따라 본 영화가 끝난 후 바로 또는 5분, 길게는 10분 뒤에 나온다고 하더라. 물론, 아예 예고편을 내보내지 않는 극장도 있다고 하니 염두에 두시길 바란다.
*네오와 스미스 요원의 행동을 유심히 잘 살펴보길 바란다. 전편과 다른 모습을 포착할 수 있을 거다. 이러한 단서는, 아마도 2편을 이해하고 3편에 접근하는 데 있어 아주 유용한 실마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