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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렬의 영화칼럼
밀애, 본 아이덴티티, 위험한 유혹 | 2002년 11월 5일 화요일 | 정성렬 이메일

갑자기 난데 없이 세편의 영화제목을 나열했다. 과연 무슨 뜻일까?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세편의 영화 제목을 썼을까. 궁금하다면, 읽어 주기 바란다.

<밀애>는 전경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쓰디쓴 의무감이 따르는 불륜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의외로 질펀한 사랑 놀음보다 한 여자의 재생과 회복을 이야기 하고 있다. 때문에 지금까지 쉽게 넘겨짚었던 여타의 불륜 영화들과는 구분 지어진다. 이러한 의도는 첫 장면에서 확연히 드러나는데, 김윤진이 물 속에서 보여주는 노곤하고 신비로운듯한 표정이 그것이다. 소설을 거의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긴듯한 <밀애>는 놀랍게도 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첫 장면을 삽입함으로 인해 그 모습을 더욱 확실히 하고 있다.

이어 <본 아이덴티티>는 기억을 상실한 3000만불 짜리 인간 병기가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피도 눈물도 없이 잔혹한 살인마로 훈련 받은 주인공이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 속에서 끔찍한 과거를 발견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설정이다. 그가 등장하는 첫 장면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다. 우연히 고깃배에게 발견된 주인공의 등에는 총알이 두발이나 꽂혀있지만 죽었다고 생각되었던 그는 놀랍게도 재생과 회복을 통해 거듭난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가장 최근에 본 <위험한 유혹>은 수영 선수인 주인공에 집착하는 여성의 파멸과 그 여성으로 인해 망가지는 남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의 그러한 설정은 수영장에서의 섹스로 인한 것이고 그 일이 있은 뒤 창창하던 주인공의 앞날에는 끔찍한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소위 망가진 청소년의 전형이었던 남자 주인공은 수영을 통해 반듯한 모습으로 갱생 했다가 다시금 수영장에서 곤혹스러운 사건에 말려들고 만다.

앞서 밝힌 세 영화의 공통점은 '물'과 '다시 태어남'에 있다. 일단 물의 이미지는 위로와 보살핌 그리고 재생을 의미한다. <밀애>의 첫 장면이 물속 김윤진의 모습이었던 것은 그녀의 이야기가 결국 상처를 극복하는 치유의 이야기임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본 아이덴티티>에서 주인공 제이슨 본이 바다에서 건져지는 것은 성경을 연상할 정도로 전형적인 생명구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으로 <위험한 유혹>은 물로 거듭난 이가 다시금 물 속에서 망가진다는 반복적인 변화를 상징하고 있다.

요즘 영화들을 보면 특히나 이렇게 물의 이미지로 재생과 거듭남 그리고 치유를 바라는 작품들이 종종 발견되곤 한다. 억지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레드 드래곤>에서 한니발 렉터에게 상처를 입은 주인공은 바닷가에 살면서 위안을 얻고, <하얀방>은 영화 이미지를 물로 설정하고 있다. <로드무비>에서 여주인공은 바다에 빠짐으로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게 되며, <비밀>에서 극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장소 역시 바닷가였음을 생각한다면 그리 엉뚱한 발상이라고 야단하지는 못하리란 생각이다.

어쩌면 이러한 반복적인 이미지들의 나열은 영화자체의 거듭남을 주장하고 싶은 영화인들의 갈급한 소망이 빚어낸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00년의 세월을 거듭하면서 만들어 낸 영화라는 매체는 이제 스토리와 비주얼 어느 하나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어려울 만큼 비슷비슷한 모양으로 조제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금전적인 문제가 꼬여 들면서 영화 제작에 가장 큰 가위로 작용한 '흥행'의 문제는 영화인들의 발목을 잡고 자꾸만 반복적이고 소위 돈이 되는 그렇고 그런 영화들을 찍어내게 하고 있다. 뭔가 다른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영화인들은 자기 치유와 회복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깨끗하게 씻음 받고 다시 태어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겠지만 많은 시도들이 외면 받지 않고 격려와 관심 속에서 새로운 자양분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래본다. 단순히 일방적인 몇몇 이들의 노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이들과 즐기는 이들의 소통을 통해 더욱더 가까워지는 행위들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나 가벼움 일색인 한국 영화들이 부디 씻음 받음을 통해 한걸음 진일보 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하고 생각하는 것이 2002년이 얼마남지 않은 지금 이순간 필자의 절실한 기도이자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기 바랬던 재생과 거듭남 그리고 희망에 대한 의도다.

6 )
theone777
본 아이덴티티 최고   
2007-09-21 16:59
mckkw
본 아이덴티티 완전 재밌다.   
2007-09-11 23:19
kpop20
잘 읽었어요   
2007-05-25 15:41
js7keien
밀애?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더라도 어디까지나 불륜은 불륜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는   
2006-10-06 19:25
soaring2
밀애같은 장르는 개인적으로 별로예요   
2005-02-13 17:02
cko27
밀애 우연히 ocn에서 봤는데. 재밌었어요. 이종원씨 영화데뷔작인가?   
2005-02-0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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