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이 유난히 높아보이는 날,안성기를 만났다.
"차 한 잔 하시죠"라며 날씨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는 넉넉한 미소.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소처럼 인터뷰를 끝내고 마는 N세대 스타들과는 사뭇 다르다.
'무사'(김성수 감독-싸이더스 제작)에서 안성기는 무사 진립으로 나온다.
아홉명의 무사 중 하나로 묻혀버릴 수도 있는 캐릭터인데, 끝까지 무게 중심을 잃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시사회에서도 안성기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역시 국민배우답다'는 네티즌의 극찬 또한 쇄도하고 있다.
진립은 전투에선 누구보다 노련한 무사로,고려 무사들에겐 정신적 지주로 고려 무사들의 행군을 독려한다.
'백전노장'인 그가 스크린 안팎에서 배우들의 든든한 지주 역할을 했던 것처럼.
"열네살인 큰 아들 다빈이가 멋있다고 감탄을 하더군요. 그런데 활이 아니었으면 큰일났을 뻔했어요. 창이라면 힘이 딸려서 그만큼 폼나게 휘두를 수 있었겠어요?(웃음)"
'무사'는 안성기에겐 64번째 영화다.
지금까지 제일 힘들었던 작품으로 '남부군'을 꼽곤 했는데,이젠 '무사'가 1위에 올랐다.
'중국에서 해를 넘기게 되겠구나'란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했고,극중 고려에 돌아가기 위해 피눈물 흘렸던 무사들처럼,좋은 영화 한편을 완성해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중국 오지를 누볐다.
그러나 극한 상황에서도 최고참답게 웃음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새벽부터 분장을 하고 사막에 나와있는데, 낌새를 보니까 촬영은 종 칠 것 같은 날이 수두룩했어요. 그러면 마음을 비우고 '자기 생활권'으로 들어가는거죠. 고구마도 구워먹고,서울에 가져갈 예쁜 돌도 고르고. 몰두하다보면 나중엔 밥 먹을 시간이 부족하더라구요."
땀을 흘리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는 게 안성기의 생각. 개봉 이후 '무사'에 대해 찬반양론이 갈리고 있지만,중국 오지에서 구슬땀을 흘렸던 것에 대해선 후회가 없다.
새로운 차원의 시도와 노력이 돋보인 영화였으며,창의 무게를 그대로 실어낸 액션신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자신있게 평할 수 있다는 것.
특히 김성수 감독은 힘이 넘치는,남성적 영화 연출에 있어선 독보적인 힘을 지녔다고 호평.
"대박 영화도 해봤고 소리소문 없이 간판을 내린 출연작도 있었죠.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터득한 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입니다. "
따뜻한 웃음이 넘치는 50분간의 인터뷰.
그 말미에 문뜩 한 영화계 관계자의 말이 떠올랐다.
"안성기를 처음 봤을 때 너무나 사람좋아 보이는 모습이 연출된 것이라 생각했고,두번째는 '정치에 뜻이 있나. 어쩜 저렇게 이미지 관리를 잘하나'고 생각했다. 그러나 10년 가까이 그를 지켜봤는데 한결같더라"는 것.
그가 지금 그대로의 한결같은 모습으로,한국 영화계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제 자리를 지켜줄 것이라는데 한국 영화 관객들이라면 이견이 없을 듯.
그래서 그가 현재 촬영중인 영화 '취화선'과 '흑수선'에도 큰 기대를 걸게 되는 듯하다.
<자료제공 : 스포츠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