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세이션! 베를린을 뒤흔든 레전드가 도착했다! 베를린영화제 최고의 화제작! 최우수 유럽영화상 수상! 리타, 타티아나 역의 두 배우가 여우주연상 동시수상!
베를린영화제가 자랑하는 것은 방대한 작품 수와 더불어 역사와 현실에 늘 한 뿌리를 두는 영화 선정의 남다름. 새천년을 축하하고 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어느 해보다도 떠들썩했던 2000년에도 베를린의 프로그램은 쟁쟁한 작품들로 꽉 채워졌다. 한 여자 테러리스트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레전드 오브 리타]는 어느 작품보다 베를린에 어울리며 베를린에서 상영될 때 더욱 의미 있는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언제나 논란을 몰고 다니는 [양철북]의 감독, 폴커 슐렌도르프의 신작이라는 자체만으로도 이목을 집중시킨 데다가 최초로 독일의 분단과 통일을 전면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은 것. 유력일간지 쥐드도이체 차이퉁(Suddeutsche Zeitung)은 가장 독일적인 삶을 아프게 그려냈다고 평하며 리타의 슬픔에 공감했고 뉴욕타임즈는 슐뢴도르프의 가장 강력한 작품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뜨거운 관심과 호응은 시상식까지 그대로 이어져, 감독은 최우수 유럽영화상(블루엔젤상) 수상! 극중 리타와 타티아나 역의 두 배우 비비아나 베글라우와 나야 울은 여우주연상을 공동수상! 숱한 화제를 뿌리며 [양철북]보다 강렬하게 세상을 뒤흔든 [레전드 오브 리타]가 2003년 4월, 씨네큐브의 문을 두드린다.
비극적 실화! 테러리스트에게 허락된 사랑은 없다! 테러리스트의 가슴 아픈 실화! 세상은 그녀에게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다!
더 나은 세상을 원했던 한 여자의 꿈과 좌절을 이야기하는 영화 [레전드 오브 리타]는 1970년대에 활동한 서독의 적군파 테러리스트 잉게 비트의 실화를 바탕으로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까지의 독일사회를 다루고 있다. 1986년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 수상작인 라인하르트 하우프트의 [슈탐하임]이 적군파의 재판과정을 비판적으로 조망했다면 [레전드 오브 리타]는 조직, 혹은 이념을 벗어난 개인의 비극에 관심을 두었다. 리타와 그 친구들은 새로운 세상의 주인이 되겠다는 의지로 강도, 살인도 마다하지 않지만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만다. 리타가 테러리즘의 무력함을 느끼고 회의에 빠졌을 때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제목의 레전드는 동독 비밀경찰 용어로 신분조작을 암시하는 말. 그녀는 비밀경찰 에르빈의 도움을 받아 각각의 삶에 어울리는 레전드를 갖추고 직물공장의 수잔나, 캠프교사 사비나로 거듭난다. 그러나 삶이 위태롭기로는 테러리스트 때나 매한가지. 정체를 감추고 살아야 하는 탓에 누구에게도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도 없으며 과거가 드러나는 순간 우정도 사랑도 끝나버린다. 리타는 한때, 가장 치열하게 세상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영영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사랑 받을 수도 없게 된 것이다.
거장 슐렌도르프!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이후, 성숙한 시선에 주목하라!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와 [레전드 오브 리타] 리타도 시대가 낳은 희생자!
폴커 슐렌도르프는 초기 대표작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서 평범한 여자가 테러리스트를 은닉했다는 혐의를 받으며 당하는 수모를 절절하게 그려낸 바 있다. LA 타임즈, 샌프란시스코 크로니컬, 뉴욕타임즈, 시카고 선 타임즈 등 언론은 입을 모아 [카타리나...]와 [레전드 오브 리타] 두 작품의 인물 설정과 묘사방식을 비교하고 있다. [카타리나...]에서 주인공 카타리나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정체를 모른 채 테러리스트와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아침, 곧바로 들이닥친 경찰과 언론의 공격에 무방비상태로 희생당한다. [레전드 오브 리타]는 테러리스트 당사자인 리타의 조각난 삶을 카타리나 만큼이나 아프게 묘사했다. 바로 이 점에서 충분히 논쟁적인 작품. 감독은 거침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테러리스트들에게서도 인간적인 표정을 읽어낸다. 리타 역시 일상적인 행복에 목말라하는 보통사람이다. 그러나 테러리즘을 버리고 평범하게 살고 싶을 때도 세상은 그녀를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과거는 리타를 단단히 얽어매고, 그녀는 언제나 쫓기고 도망치듯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레전드 오브 리타]는 극중 동독 비밀경찰간부의 입을 빌어 테러리즘을 일종의 낭만주의로 정의하면서 기존의 일방적인 비난과 냉소적 시선에도 거리를 둔다. 리타 역시 시대가 낳은 희생자일 뿐. 카타리나와 리타는 이란성 쌍둥이다.
눈물 없는 비극! 담백한 표정이 마음을 더 울린다! 슬픔을 절제하는 연출! 눈물을 지워버린 연기! 눈물조차 흘릴 수 없어 더욱 슬픈 이야기
감독은 격정적인 인물의 삶을 다루면서도 객관적이고 담담한 시선을 유지했다. 그의 연출방식에 따라 리타는 쉽게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뉴스를 통해 앤디의 죽음을 접한 리타는 슬픔을 날려버리려는 듯 더욱 쾌활하게 춤을 춘다. 떠나지 말라고 매달리는 타티아나를 매정한 척 뿌리친다. 요헨에게 과거를 고백하는 대목에서는 충격을 주체하지 못하는 요헨이 소리를 질러대는 동안 묵묵히 바라보기만 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게 된다. [레전드 오브 리타]는 눈물조차 흘릴 수 없어 더욱 슬픈 이야기다. 슬픔은 안으로 삼키고 더 큰 아픔을 전하는 연출이 가장 돋보이는 대목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이 이루어지자, 그때까지 테러리스트를 애써 보호해오던 동독 비밀경찰이 그들을 서독 측에 넘기는 역할을 맡는다. 리타를 돕던 에르빈은 상황의 반전에 분노하며 마지막 탈출의 기회를 마련해준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그 여자가 이쪽으로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동독 경비병의 대사는 리타의 비극을 한마디로 보여준다. 리타는 그곳의 검문을 무단통과 하려다가 총에 맞아 죽는다. 힘없이 쓰러지는 그녀의 뒷모습, 눈발이 날리는 잿빛 하늘을 담은 스산한 풍경은 관객의 마음을 무겁게 채운다.
감독 폴커 슐렌도르프와 시나리오 작가 볼프강 콜하세의 인터뷰
- 동독에 숨어 든 서독 테러리스트들에 관한 이야기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 콜하세 : 1990년의 한 신문에서 서독 테러리스트들이 동독에 잡혀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신문은 그들이 RAF에서 어떤 활동을 했으며 동독에서 이름과 신분을 바꿔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전하고 있었다. 기사를 본 몇 주 후, 관련자 10명이 더 체포되었다. 동독 정부와 경찰이 주도권을 쥐고 직접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하지만 언론에는 범죄 수사 도중에 우연히 드러난 것처럼 보도되었다.
- 그 신문 기사를 보고 영화의 스토리를 생각해냈는가? 콜하세 : 다른 많은 얘기들처럼 이 이야기 또한 과거에 벌어졌던 일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나치시대를 겪었고, 2차 대전을 치렀고, 연합군에 항복해야 했으며, 그리고 분단과 냉전의 시기를 지나왔다. 이 이야기는 테러리스트 삶의 내면에 대한 것이다. 그들이라고 하늘로부터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 부모의 자식들이었다. 슐렌도르프와 얘기를 나누면서, 영화 작업 뿐 아니라 살아온 방식에 있어서도, 우리가 꽤 다른 경험을 해왔고 사고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작업한다면, 독일에 대해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슐렌도르프 : 작가가 처음 관심을 가진 부분은, 주로 서구 세계의 테러리스트가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베트남 전에 대한 항의 표시로 백화점에 폭탄을 설치하는 것부터 미국에 대한 무력 대응까지, 그들의 행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나는 동독에서의 삶이 더 알고 싶었다. 그들은 어떻게 아파트를 얻을까? 직업을 바꿀 수는 있을까? 다른 도시로 옮기는 것이 가능할까? 휴식 시간에는 무슨 얘기를 할까? 이런 일상적인 것들이 내 관심을 끌었다.
- 주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자료를 수집했나? 콜하세 : 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읽었다. 많은 수감자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감옥에 있는 수잔 알브레히트, 한-페터 북, 잉게 비트를 만났다. 나는 영화 속 인물들이 가질 캐릭터를 찾아내기 위해, 실존했던 인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내가 그런 자료들을 읽고 인터뷰를 했던 것은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렇게 창조된 인물들이 영화에 들어가 있다.
- 극 중 리타 폭트는 동독으로 단순히 피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한 노동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런 리타 폭트의 캐릭터는 당신의 리서치 작업을 통해서 나온 것이다. 그녀가 어떤 동기에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콜하세 : 테러에 가담하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이 원래 가졌던 정치적 목적에 완전히 파묻혀 버린 것을 깨닫는다고 생각한다. 이게 아닌데 하는 개인적 고민이 시작되지만, 끈질긴 추적으로 일상적인 삶을 누리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찾게 되고, 그래서 결국은 제3세계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예상은 물론 계획조차 하지 않았던 동독에서 그 여정을 끝내게 되어 버렸다. 슐렌도르프 : [슈피겔]은 이 영화를 말도 안 되는 범죄드라마라고 했다. 좋은 이야기일지는 모르지만, 표현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점에서, 그 말은 맞는 말이다. 리타의 과거에 대해 내가 얼마나 알아야 동독에서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녀는 동독에서 살았던 것이 감방 생활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게 이런 평범한 노동자로서의 생활자체가 바로 해방이었고, 그녀는 그 생활에서 일종의 행복을 찾았던 것이다. 그녀는 바로 자신을 위해서 무언가를 했다. 비록 동독 정부에 이용당한 것일지라도, 오히려 그것을 감사하며 받아들였다. 생애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던 것이다.
- 리타는 일상에서 자신을 찾으려 애쓴다. 이런 리타는 일탈을 일삼으며 자신의 삶에 충실하지 않은 타티아나를 만난다. 이 두 여자는 왜 만나는가? 콜하세 : 각자가 서로에게 끌리기 때문이다. 서로 섞일 수 없는, 어느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만 살아 있을 수 있는 존재. 그 둘이 세상에 대해 가지는 물음의 종류는 다르지만, 사회에 대해 계속 의문을 던진다는 공통점 때문에 그들은 함께 한다. 리타는 서독을 버리고 동독에서 살아가는 것을 택한다. 이런 리타가 타티아나에게는 다른 별에서 온 사람만큼이나 낯설다. 리타는 자신이 이제껏 시달렸던 서방세계의 모순이, 동독에서 전혀 다른 새로운 모순으로 모습을 바꿔 나타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슐렌도르프 : 한 사람은 세상에 맞춰 들어가려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거기서 나오려고 한다. 그 둘 모두 자기가 태어난 서독과 동독에 애착이 없다. 그래서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독일에서 도망가려 한다. 우리는 사랑에서 그 동기를 찾을 수 있다. 리타는 앤디를 사랑했다. 앤디와 헤어진다는 것은 또한 무장 투쟁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타티아나는 다른 곳에서 온 자유로운 새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리타는 전에는 있는지조차 몰랐던, 내면에 감춰져 있던 부드러움을 깨닫게 된다. 정치적인 이유로 타티아나를 배반할 수 밖에 없게 되자, 그녀는 오직 사회적인 삶으로만 자신을 몰아넣는다. 당에 가입하려 하고 커다란 회사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한다.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사적인 감정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게 된다. 그리고 여름 캠프에서 자신을 오직 여성으로만 보는 젊은 물리학도를 만난다. 그 때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자신이 진정한 동독인도 아니고, 이름과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으며, 결코 자유롭지도 않다는 것을.
- 리타는 이런 혼돈 속에 오래 빠져 있지 않는다. 정부 당국으로부터 많은 지원과 이해를 경험했던 것처럼, 그녀는 동독과 그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 이념에 많은 공감을 보인다. 공산혁명에 낭만을 불어넣으려던 장군과 슈타시(구 동독의 비밀경찰) 간부인 에르빈의 토론에서 리타의 이런 심경에 대한 주요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콜하세 : 낭만적인 공산혁명의 꿈은 언제나 동독의 일부분이었다. 특히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고통받고 싸웠던 사람들에게는 더욱 각별하다. 그리고 아마도 몇몇은 감정이 메말라버린 관료주의 사회에서 살게 될 거라는 사실에 애써 눈을 돌려버렸다. 장군은 탄식한다. 나는 아직도 꿈을 꾼다. 아직 그 꿈이 끝난 건 아니라고. 과연 그 꿈이 끝날 수는 있는 것인지 소리 없는 의문이 우울한 가슴에 떠오를 것이다. 슐렌도르프 : 늙은 슈타시 간부도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들은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었고, 히틀러의 독재에 저항하며 게릴라 투쟁도 벌였다. 불가능한 것에 도달하기 위해 적어도 인생의 한 시기에는, 낭만적인 젊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가졌던 이들. 어떤 특정한 방법으로 더 나은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는 이상주의자들, 그들이 바로 낭만주의자는 아니었던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서독과 동독 양쪽 모두에게 현실은 더욱 가혹하게 다가왔다. 스스로 쓰러져가고 있던 유토피아에게도, 그리고 아마 그 이상향에 대한 믿음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도 다 작별을 고한 것이다. 어쩌랴, 바로 그것이 독일인 것을,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이곳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을.
- [레전드 오브 리타]는 실존했던 인물을 바탕으로 만든 가상의 인물에 대한 영화이다. RAF나 슈타시(동독 비밀 경찰)라는 용어가 나오지 않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서 인가? 왜 언급하지 않았는가? 콜하세 : 관리라는 말을 들으면, 공무원이 아니라 비밀공작원이라는 것을 모르는 관객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얘기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리타 폭트라는 이름을 가진 테러리스트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개별적인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지, 실존했던 인물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 당신의 작품 전체를 놓고 볼 때, 이 영화는 일종의 회고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단지 영화의 시간적 배경 때문만이 아니라, 정치적 혼란 속에 놓인 한 개인의 운명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당신 초기 영화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슐렌도르프 : 사실 나는 이 점에 대해 따로 언급할 것이 없다. 내 필모그래피는 내 자서전이다. 빙 돌아가기도 하고, 중간에 멈추기도 하고, 잠깐 떠나기도 했지만, 언제나 내 영화는 독일 역사에 관한 것이다. 베를린에 있었던 10년 동안 거의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영화보다는 오히려 경험하고 관찰하면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 다시 돌아왔다. 그 시기 덕분에 나는 이제는 자유롭게, 예전에 만들던 영화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상세한 세부 묘사가 필요한 시대극이다. 이 영화를 통해 80년대의 동독을 어떻게 들여다볼 수 있는가? 감독으로서 이 영화를 만들면서, 마음 속에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었는가? 슐렌도르프 : 동독의 단조로움과 부당함을 단순히 시스템을 드러내거나 세트를 짓는 것으로 전달할 수는 없었다. 돈도 많이 들뿐 아니라, 영화를 지루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태도는, 오히려 10년이 지나더라도 충분히 언급할 가치가 있다. 바벨스베르그에 있으면서, 서로 어떻게 인사하는지, 어떻게 돌아보고 혹은 딴청을 피우는지, 그리고 언제 미소 짓는지, 그런 사소한 것들을 잘 관찰할 수 있었다. 빌딩의 외관과는 달리 쉽게 바꿀 수 없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통해 우리는 동독에 관해 표현할 수 있었다. 볼프강 콜하세는 간결하고 정확한 대사를 구사하면서 극 사이마다 말없는 장면을 삽입하여 등장인물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슬프면서도 우스꽝스럽다. 나를 얼마나 감동시켰는지 모른다. 결국 절대적으로 좋거나 나쁜 것은 없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시대와 화합하지 못한 사람에게만이, 모두 좋거나 모두 나쁜 것이 있을 수 있다.
- 스타를 캐스팅 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나? 슐렌도르프 : 처음부터 그렇게 결정했다. 생존한 사람들에 대한 존중의 의미도 일부는 있다. 죽은 사람들도 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왜곡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테러리스트에 대한 상투적 이미지는 정말 압도적이다. 이 문제는 유명 배우를 기용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직 젊고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쓴다면, 그들의 삶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동독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리타와 타티아나는 거칠고 서로에게 무관심한 듯 보이지만, 가까이서 본 그들은 손을 맞잡고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RAF
1968년에 결성, 1998년 해산을 선언한 서독의 테러조직. 적군파. 1968년 4월 2일, 베트남에 대한 네이팜 폭격에 반대하는 정치적 보복행위로, 백화점에서 수제 폭탄을 터뜨린 것이 시작이었다. 멤버들은 3년형을 선고받고 6개월 후 풀려나지만 항소가 기각되자 지하로 잠적한다. RAF는 은행강도를 감행하여 활동자금을 모으고 위장 아지트와 무기, 연락망도 확보한다. 정부는 1971년부터 테러대비 특별위원회를 조직, 주동자 색출을 위해 최첨단 기술들을 동원한다. 1972년 5월. 경찰서, 사법기관의 연쇄 폭탄테러 이후 서독 역사상 최대의 수색작전으로 조직원이 대거 검거된다. RAF는 총격전, 대사관 점거, 납치인질극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저항하고 수감자들의 방면을 촉구한다. 1978년에 이르자 수사범위는 위협적으로 좁아지며 조직원간의 의견 대립이 심화된다. 몇몇은 조직을 떠나며 나머지는 새로운 신분을 보장하는 동독으로 망명한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서독 측은 과거 RAF 멤버들의 신변 인도를 요구한다. 1990년 6월부터 동독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RAF 멤버들이 잇달아 검거된다. 1998년 4월 20일. RAF는 8장에 걸친 편지를 통해 해산을 선언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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