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 65주년인 2013년 봄 세상을 울릴 4•3 영화 2편 <비념><지슬>을 만난다! 지금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할 제주섬의 노래!!
바야흐로 3월과 4월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뚜렷한 역사적 인장이 찍힌 달이다. 3월은 1919년 3월 1일 일제의 압박에 항거, 전 세계에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한 3•1운동의 달이며, 4월은 현대사의 가장 슬픈 핏빛 역사로 기록될 제주 4•3사건과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인 4•19혁명으로 기억되는 역사적인 달이다. 이렇듯 뜻깊은 3월과 4월에 세상을 울릴 영화 2편이 연이어 개봉한다. 2편 모두 제주 4•3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비념>과 <지슬>이 그 주인공이다. 한국영화 최초의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의 쾌거를 올린 오멸 감독의 극영화 <지슬>은 먼저 3월 1일 제주 개봉을 시작해 3월 21일 전국 개봉을 앞뒀다. 제주 4•3사건으로 희생된 제주섬과 제주사람들에 관한 다큐멘터리 <비념>은 바로 그 4•3사건의 65주년이 되는 2013년 4월 3일 관객들을 만난다.
<비념>은 제주 4•3사건으로 상처 입은 제주도와 제주 사람들의 오랜 한숨과 깊은 슬픔에 귀 기울이고, 최근의 강정마을 사태에 이르기까지 제주도를 둘러싼 현재 진행형의 비극을 묵직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4•3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강상희 할머니의 삶을 주축으로, 제주도가 아름다운 관광지면서 동시에 실은 거대한 무덤이며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영혼들의 땅임을 보여준다. 임흥순 감독은 우리가 만들어낸 제주의 낭만적인 풍경 속에 묻힌 시린 역사와 기억들과 나무, 돌, 바람, 숲의 실제 풍경을 통해 제주섬과 제주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불러낸다. 관객들은 그렇게 소환된 4•3의 영혼들과 아물지 않은 상처를 통해 우리가 지금,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할 제주섬의 노래와 조우한다. 그리하여 <비념>은 제주 구석구석의 잊혀진 4•3의 기억과 영혼들을 불러내어 애도하는 것만이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만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영화다.
오멸 감독의 <지슬>은 1948년 제주사람들이 ‘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들을 폭도로 간주한다’는 미군정 소개령을 듣고 피난길에 오르며 겪었던 제주도민들의 혹독한 겨울을 담아낸 작품이다.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흑백영화 특유의 이미지와 숨막히는 미장센, 깊이 있는 서사로 관객에게 강렬한 매혹을 선사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슬>의 미덕은 그 춥고 배고팠던 시절, 역사적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서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민초들의 삶을 웃음과 슬픔이 공존하는 마당극처럼 해학적으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이 4•3 당시 경찰과 군인들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학살이라는 실화가 바탕인 만큼 <지슬>은 관객들에게 보다 진정성 있는 감동을 준다.
‘빌고 바란다’라는 기원(祈願)과 같은 의미로도 해석되는 제목의 <비념>과 제주어로 ‘감자’를 뜻하며,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유일한 양식이자 희망의 끈이며 삶의 매개체인 <지슬>. 올봄, 우리에겐 반드시 귀 기울여야할 제주섬의 노래이자 보편적인 삶의 숭고함을 노래한 영화 2편 <비념>과 <지슬>이 당도했다.
1948년 4•3사건과 2013년 강정문제를 함께 담은 최초의 영화가 온다! 반복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발견한 깊이 있는 문제작!!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누가 뭐래도 제주도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귤, 해녀, 유채꽃, 돌하르방 등 지역의 상징을 술술 말할 수 있는 곳! 몇 년 전부터는 ‘올레길’과 ‘제주 이민’ 트랜드로 젊은이들에게 힐링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현재 제주도가 그 찬란한 한편으로, 서귀포시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립문제로 몇 년째 외로운 투쟁 중이라는 사실을 대중은 얼마나 알까. 강정마을 사태 또한 일반대중에게는 65년 전 4•3사건처럼 낯설고 잘 알려지지 않은 혹은 어느새 잊혀져가는 이슈가 되어버렸다. 이 조금은 낯설고 연결고리가 없을 것 같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비념>을 통해 숨죽이며 맞닿았다.
임흥순 감독은 거대담론보다는 개인의 미시적인 관점의 역사, 가족에서 출발하는 방식의 작업들을 주로 해온 비주얼 아티스트다. <비념> 역시 제주도를 드나들다 우연히 알게된 강상희 할머니 개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런 개인의 관점에서 출발해 현재의 강정마을 사태, 그리고 과거 4•3사건까지 확대시켜 거슬러 올라가 제주도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낸다. 그렇게 <비념>은 현재의 강정문제가 불현 벌어진 사건이 아님을 사유한다. 더불어 치유되지 않은 4•3의 상흔과 청산되지 않는 역사의 오류를 통해 반복되고 있는 씻기지 않은 현대사의 비극임을 발견한다. 2007년 국방부는 강정마을을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지역으로 선정했고, 2010년 첫 공사가 시작됐다. 마을주민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이 공사는 2013년 현재도 여전히 강행 중이다. 지금까지 강정 해군기지 건설반대를 위한 종교, 사회, 문화계 등의 다양한 액션과 제스쳐가 있었다. 특히 영화로는 <잼 다큐 강정>이라는 옴니버스 다큐멘터리가 있고, 이는 8인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강정의 이미지와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었다. 임흥순 감독은 환경적이고 정치적인 접근이 아닌, 개인의 역사로부터 출발해 강정사태의 기원을 4•3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인터뷰와 과거의 거친 기록영상을 통해 4•3사건이 국가적 폭력으로 자행된 역사상 가장 무자비한 학살이었음을 보여준다. 더불어 현재의 강정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된 여러 영상들을 치밀하게 뒤섞음으로써 반세기가 지난 과거와 현재가 깊게 조응하는 모습을 목도케 한다. 하지만 <비념>은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 혹은 반대라는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 임흥순 감독은 4•3사건의 피해자인 개인들의 기억과 강정 사람들의 이야기와 주장을 그대로 보여줄 뿐 개입하지 않는다. 다만 감독은 이를 통해 국가의 권력이 얼마나 많은 무고한 민초들을 짓밟아 왔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폭력으로 강정이 파괴되고, 앓고 있는지 보여주고 들려준다. 구럼비 바위를 뚫고 있는 굴삭기의 어마어마한 소음 속에 강정마을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처연하게 묻히는 시간을 공유케 한다.
<비념>은 임흥순 감독이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국가의 폭력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만든 영화이다. 4•3사건이 학살이라는 국가의 실제 폭력이었다면, 강정사태는 찬반의 문제가 아닌 과정의 문제로써 주민들의 의견이 무시된 폭력이다. 여전히 같은 맥락으로 반복되고 있는 역사의 아이러니로서 맞닿은 제주4•3과 강정의 슬픔은 4월 3일 <비념>을 통해 볼 수 있다.
이미지와 사운드 중심으로 직조된 낯설고 매혹적인 감성에 홀린다! 놀라운 미학적 성취를 이룬 웰메이드 아트 다큐!
<비념>은 4•3의 진실을 설명하고자 하는 영화도, 강정의 현실을 주장하려는 영화도 아니다. <비념>은 4•3사건으로 희생된 제주섬과 제주 사람들에 관해 나즈막히 읊조리는 작은 기도, 혹은 가만가만 부르는 치유의 노래이다. 임흥순 감독은 이와 같은 감성을 직조하기 위해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스타일을 적용했다. 기존 다큐멘터리들처럼 서사와 인물에 기대어 관객을 설득하는 방식을 취하거나 감정의 진폭을 조정하기 위한 연출과 편집을 지양하고, 최소한의 인터뷰를 다양한 이미지와 사운드에 녹여내는 방식을 택한 것. 이는 임흥순 감독이 영화감독이기 전에 앞서 사진, 비디오,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미술작업을 활발히 해온 역량 있는 중견 비주얼 아티스트인 까닭이다.
특히 <비념>이 다른 다큐멘터리와 차별되는 지점은 인터뷰이의 음성과 화면이 몇 장면을 빼고는 거의 다 분리되어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제주의 쓸쓸한 풍광에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들을 목소리로만 들려주는 식이다. 감독은 관객의 감정을 좌지우지하겠다는 일반적인 방식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시각적인 자극보다 감각적인 부분을 섬세하게 건드린다. 일종의 몽타주 효과로 불일치의 긴장감에서 터져 나오는 불편함을 통해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전언. 더불어 좀 더 대중적인 방식의 4•3 이야기를 만들라는 주변의 의견도 있었지만, 임흥순 감독은 어떤 이야기를 쉽게 말한다고 해서 듣는이가 마음을 움직이는 건 아니라고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밀어부쳤다고 한다. 그리하여 <비념>은 이야기보다는 공간, 사물의 움직임, 바람 부는 풍경, 곤충과 동물 같은 생명들을 보여줌으로써 은유와 상징을 통해 제주의 슬픔에 다가간다. 그렇게 제주도에 대해 우리가 만들어낸 혹은 주입된 낭만의 풍경이 아닌 현실에 밀착되어 있는 실제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내면서 제주섬의 내면의 풍경을 드러내는 데 성공한다.
또한 제주의 고유색을 찾고자 골몰한 감독은 제주 지천에 널린 주황색과 녹색을 대표색으로 설정한 듯, 감귤과 그 감귤을 감싸는 녹색의 이미지를 여러 컷에 걸쳐 담아낸다. 주황색도, 녹색도 아닌 감귤 한 개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컷 하나로도 관객은 처연한 슬픔을 맛보게 된다. 때때로 카메라는 4•3사건 이후 비극의 현장어었던 공간들을 훑으며 시간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 헤매기도 한다. 야간 산행 속에서, 혹은 눈밭 위의 박히는 발자국을 따라 이내 가파른 호흡과 함께 발자국 소리를 되살려낸다. 어딘가를 향해 두려움으로 짖어대는 개들을 올려다 보고, 깃발을 날리고, 비닐 봉지를 날리는 서로 다른 바람, 파르르 날라가는 새떼들 풍경, 심방(무당)이 흔드는 요령(방울) 소리, 강정의 구럼비 바위 뚫는 굴삭기 소리 등 무엇이 먼저랄 것 없이 <비념>의 모든 이미지 컷과 사운드는 4•3사건과 강정문제로 상처입은 제주섬과 제주사람들의 이야기에 오롯이 복무한다. 이는 바람 한점, 돌멩이 하나에도 제주섬의 오랜 한숨과 설음이 묻어 있을을 임흥순 감독의 예민하게 아파했던 까닭일 것이다. 그리하여 <비념>은 이 낯설지만 매혹적인 이미지와 사운드의 감각적인 직조를 통해 놀라운 미학적 성취를 이뤄낸 웰메이트 아트 다큐멘터리라고 명명해도 좋을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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