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이 되살려준 유년의 기억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전쟁의 초상
<로렌조의 밤>은 별이 쏟아지는 로렌조의 밤,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나레이션으로 시작되면서, 잔인한 전쟁에 휘말린 삶을 오히려 로맨틱하고 판타스틱하게 재구성한다. 영화가 다루는 것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실화-독일군에 의한 대규모 학살, 같은 민족인 파시스트와 민병대가 벌인 내전-의 참상이지만, 6살 어린 소녀의 눈을 통해 모든 일은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한밤중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 까만 옷을 입고 하염없이 걸어야했던 피난길은 스릴 넘치는 모험으로 뒤바뀌고, 독일군에 의해 살던 집이 폭파되던 밤이 소녀의 삶에서 가장 신나는 순간으로 재현된다. 특히 평단이 입을 모아 베스트씬으로 꼽는 ‘밀밭 전투’는 소녀의 신화적 상상력이 만개하는 장면! 파시스트와 농부들의 전투를 호머의 일리어드에 나오는 영웅들의 전투로 변형시켜 판타지의 재미와 영웅서사시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명장면이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훌륭한 하모니를 이룬 다양한 캐릭터들 비극적 현실을 감싸안는 따뜻하고 생생한 묘사
<로렌조의 밤>은 체칠리아가 나레이터를 맡았지만, 그 외에는 특별히 주연, 조연의 구분 없이 각각의 개성과 욕망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여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닥친 인간의 다채로운 면면을 펼쳐보인다. 결혼식을 올린 직후 신부를 잃고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슬픈 신랑 코라도, 마을 사람들을 성당으로 모아 안전을 보장해주려던 것이 결국 독일군의 속임수로 드러나면서 모두를 죽음에 몰아넣은 장본인이 되고마는 주교, 온갖 폭력을 행사하다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파시스트 부자 등은 참혹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캐릭터들. 그러나, <로렌조의 밤>이 돋보이는 점은 가슴 아픈 시간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안았다는 데 있다. 험한 피난길에서도 로맨스가 싹터 체칠리아의 엄마는 마을의 노총각과 뜨거운 눈길을 주고받고, 신분차이 때문에 맺어질 수 없었던 늙은 농부 갈바노와 귀부인 콘체타는 서로를 향한 오랜 그리움의 마음을 비로소 털어놓는다. 비극적인 역사를 다루면서도 각각 인물들의 사연에 주목함으로써 <로렌조의 밤>은 거대 역사에 가리워진 개인들의 풍요로운 경험을 복원해 내는데 성공했다. 다양한 악기들이 제 목소리를 내면서도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오케스트라처럼 <로렌조의 밤>의 다양한 캐릭터들은 훌륭한 하모니를 보여준다.
바그너, 베르디, 비제의 아리아의 여운이 가득한 그림처럼 아름다운 토스카나의 자연풍경 속으로
사운드와 이미지의 사용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는 따비아니 형제답게 <로렌조의 밤>에서 음악은 긴장감 넘치는 영화의 리듬을 창조하고 판타스틱한 시공간을 창조하는데 한 몫을 톡톡히 한다. 바그너의 아리아가 전장의 비운을 전하는 가운데 베르디, 비제를 연상시키는 니콜라 피오바니의 매력적인 영화음악은 멜랑콜리하고 향수를 자극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서정적인 음악과 세잔의 회화를 떠올리게 하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토스카나의 시골풍경이 어우러진 <로렌조의 밤>은 따스한 인간미와 소박한 시골풍경의 위대함을 통해 역설적으로 전쟁의 비극에 다가간다.
마을폭파를 기다리는 장면, 클로즈업숏과 롱숏의 교차편집으로 보는 따비아니 식 리얼리즘의 정수 :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해석의 결합
따비아니 형제는 클로즈업숏과 익스트림 롱숏을 교차편집하여 각 인물들의 주관적인 생각과 느낌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객관적인 전쟁의 상황을 영화에 담는다. 갈바노를 따라 한밤중에 마을을 빠져나온 사람들이 우물가에 둘러앉아 마을의 폭파 소리를 기다리는 장면은 클로즈업과 롱숏의 독특한 화학작용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장면!
부감으로 잡은 롱숏 안에 잡힌 검은 옷을 입은 마을 사람들은 공포와 슬픔에 빠져 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서로를 위로하는데 개별 클로즈업으로 들어가면 그들이 숨겨둔 속마음이 드러난다. 집이 폭파되면 바퀴벌레가 박멸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다시 시작하는 것은 싫으니 제발 침대만이라도 남겨달라고 기도하는 사람, 어서 집이 날아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소소한 추억으로 빨려드는 사람...
이후에 이어지는 폭파씬은 더욱 더 극적으로 클로즈업숏과 롱숏의 작용을 활용한다. 밤 3시가 되자 요란한 폭발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를 좇는다. 사람들은 언덕 위 마을로 올라가 소리가 들린 곳이 산 마르티노가 맞는지 확인한다. 따비아니 형제는 한 사람의 귀를 클로즈업으로 담은 다음 언덕 위 나무를 중심으로 모여있는 마을 사람들을 롱숏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누군가의 귀를 보여준 다음 마을 사람들의 롱숏을 보여준다. 침묵과 폭발음, 기다림과 확인, 군중과 개인의 변증법적인 결합은 비극적 순간을 설레임과 흥분, 아쉬움과 슬픔이 교차하는 미묘한 상황으로 탈바꿈시켜놓는다. 이렇게 따비아니식 리얼리즘은 객관과 주관을 넘나들며 역사적 사건을 개인들의 주관적 기억 속으로 용해시킨다. 더 나아가 사건에 신화와 전설, 판타지와 로맨스를 결합시켜 그 당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원형으로 다가간다. 네오리얼리즘이 삶의 엄숙함과 가혹함을 보여주기 위해 치밀한 현실재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따비아니 형제는 네오리얼리즘의 사실적인 재현의 한계를 벗어남으로써 역설적으로 더욱 생생한 삶을 담아내고 현실감 있는 인물을 그려낸 것이다. <로렌조의 밤>은 네오리얼리즘을 넘어선 따비아니 식 리얼리즘의 정수가 담긴 작품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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