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계 체조 선수이자 체육 교사였다. 연기 수업을 몇 차례 들은 바 있는 허쭝다오는 대만의 독립 무술 영화의 거물인 곽남굉이 발굴한 배우이다. 곽남굉은 자신의 초기 작품들에서 그를 단역으로 출연시켰고, 이후 허쭝다오는 그의 첫 ‘브루스플로이테이션’ 전기 영화인 <일대맹룡>(1947)에서 주연을 맡게 된다. 이 영화와 허쭝다오의 다음 이소룡의 전기 영화인 <브루스 리: 위 미스 유(Bruce Lee: We Miss You)>(미국판 제목: <드래곤 다이 하드(The Dragon Dies Hard)>)는 얼라이드 아티스트(Allied Artists)를 통해 미국에서 개봉했는데 이소룡의 부인인 린다 리(Linda Lee)가 건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이유는 고인이 된 그녀의 남편의 이미지를 위에서 언급한 두 편의 영화와 광고에서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허위 광고 혐의는 <굿바이 브루스 리: 히스 라스트 게임 오브 데스(Goodbye Bruce Lee: His Last Game of Death)>에서도 계속되었다. 필라델피아의 폭스 극장에서 티켓 값을 지불하고 영화를 본 수십 명의 이소룡 팬들이 영화가 표절이란 사실에 격분하였고 이에 따라 펜실베이니아 소비자 보호 단체가 해당 영화를 기소하였으며 판사들은 영화 상영 금지 처분을 내렸다. 또 다른 전기 영화 <돌아온 이소룡>(1976)은 미국에서, 특히 뉴욕에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런 이유에서 인지 이 영화의 성공 때문에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존 피터스가 이소룡 전기 영화를 만들려던 계획을 포기했다는 소문이 돌았다.(이 또한 미국 TV로 방영될 첫 미국말 더빙 중국 쿵후 영화였다.) 허쭝다오는 <사망유희>(1978)의 주연 역할을 제안 받았으나, 골든 하비스트(Golden Harvest)에서 이소룡의 미완성 영화의 완성에 관한 허쭝다오의 신중한 조건을 만족시켜주지 않아 거절했다. 1974년부터 1982년까지 허쭝다오는 20여 편의 ‘브루스플로이테이션’ 영화에 주연 배우로 출연했다. 그는 이소룡의 유산을 가장 존중하는 모방 배우였고, 그 자신이 유명 인사가 되는 것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영화는 <핑크 트랩(Pink Trap)>(1985)이었다. 오늘날 그는 공인 접골사로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이들 및 노인들을 위한 체육 교실을 열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