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1일 다단계하도급 폐지와 주 유급화, 교섭을 요구하면서 파업에 돌입했던 포항건설노조가 13일 포스코의 대체인력 투입에 항의해 본사 항의방문에 들어갔다. 다음 날 경찰병력으로 포위가 된 노조원들은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을 우려해 포스코 본사로 피신한다. 이른바 포스코 점거농성이 되어버린 것이다. 상황이 점거로 이어지자 언론들은 대대적으로 건설노동자들의 불법성을 보도했고, 경찰과 포스코는 단전 단수, 음식물 반입을 저지했다. 가족들이 음식물 반입 투쟁이 이루어지면서 7월 16일 포항 형산강 로터리에서 농성지지집회가 열렸는데 이 집회에서 하중근 조합원이 쓰러졌다. 이 날 경찰은 평화적인 집회를 하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해, 사전예고 없이 두 번이나 강제해산을 시도하면서 폭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언론은 노동자가 포스코 행진 중에 일어난 사고라고 오보를 내보냈다. 책임소재를 노동자들에게 돌려버린 것이다. 하중근 조합원이 뇌사상태에서 있는 동안 7월 19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집회 이후에 한 임산부가 경찰의 폭력으로 유산을 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한다. 시위진압을 담당했던 경북경찰청이 수사를 담당하면서 진상규명은 이루어지고 않고 있었고, 결국 8월 1일 하중근 조합원은 사망하게 된다. 이로서 폭도로 몰린 노동자들의 분노는 터져 나왔고, 그들은 포스코로 평화행진을 줄기차게 요구하면서 저지하는 경찰과 몇 차례 격렬한 충돌을 벌인다. 끊임없는 평화행진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경찰은 결국 포스코로의 행진을 허용했고, 그들은 약속대로 평화적으로 집회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2005년 두 농민을 사망케 했던 경찰은 하중근 조합원의 사인에 대해서 끝내 인정을 하고 않았고, 서울상경투쟁을 통해 진상규명을 요구하던 건설노조는 9월6일 유족들의 요청으로 결국 장례식을 치룬다. 장례식으로 끝으로 투쟁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하중근 조합원의 사망도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채 1년이 그렇게 흘렀다. 그리고 그가 사망했던 8월 1일, 포항에서는 초졸한 추모제를 뒤로 하고 자본의 승리를 자랑하듯 국제불빛축제가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과거를 지워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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