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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카의 유령들(2001, Ghosts Of Attica)





교도소를 장악한 재소자들의 정비된 요구조건은, 그러나 당시 뉴욕주 지사 임기를 1년도 남겨놓고 있지 않았던 보수정객, 록펠러(Rockefeller)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특히 소수자들의 권리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고조되고 있던 상황에서 아프리칸 어메리칸(African-American)과 푸에르토리칸(Puerto Rican)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수용자들의 반인종차별적, 정치적 요구들은 주지사로 하여금 단시일만의 강경진압을 택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결국 협상은 4일만에 결렬되고 주정부 군대의 무차별적인 소내진입이 진행된다. 마치 '칠면조 사냥'과 같이 불필요할 정도로 강경하게 진행된 이 진압과정에서 29명의 재소자와 10명의 교도관들이 군대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반란이 진압된 후 수개월간에는 다시 교도관들의 재소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 폭행이 자행된다. 이 폭행의 정도가 얼마나 심했던지 1971년 12월에는 연방법원이 더 이상의 학대행위를 금지한다는 명령을 발할 정도였다. 이러한 탓으로 아티카 교도소는 미국 내에서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에 대해 가혹한 처우를 하는 교도소의 상징처럼 여겨져 오기도 했다. 책임자는 끝내 가려지지 않고 사건은 역사 속으로 묻혀 들어가는 인상이다. 1974년에 제기된 손해배상소송은 30년 동안이나 그 시비를 가리지 못하다가 결국 작년에 뉴욕주 정부가 8백만 달러를 배상하기로 하는 중재안에 도달했다. 그러나 주정부는 이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더구나 당시의 많은 피해자들은 이미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상태이다.



(총 1명 참여)
apfl529
당신과 함께 떠납니다~     
2010-09-02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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