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든 TV드라마든 남자들의 세계, 혹은 남학생들의 학창시절을 다룬 영화들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곤 한다.폭력과 배신이 난무하지만 그 속에서 진한 우정과 의리가 풍기는 그야말로 남자다운 내용에 대한 동경마저도 생기게 하는 것이 바로 남자들을 다룬 영화일 것이다.두 친구간의 우정과 배신을 통해 이른바 대박을 터뜨린 곽경택 감독의 [친구]가 그랬던것처럼 중년들에겐 그 시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남자들에겐 공감과 동경을,여자들에겐 호기심을 자극하는 또다른 영화가 바로 유하 감독의 신작 [말죽거리 잔혹사]이다.제목부터 왠지모를 의미심장한 느낌이 풍기는 [말죽거리 잔혹사]는 말죽거리의 정문고라는 학교를 배경으로 남자들의 우정과 한 남학생이 변화하는 과정을 차분하게 보여 준다.무엇보다 이 영화가 여느 영화들과 차별이 되는 것은 바로 1978년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과 특히 그 시절의 대표적인 아이콘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색다른 볼거리까지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권상우와 이정진,한가인 등의 신세대 배우들이 보여주는 1978년 '학원 액션 로망스'는 유하 감독이 전달하려는 뜨끔한 비판적 메세지와 더불어 또 한편의 남성미 넘치는 영화를 보여준다.

이소룡이 뭇 남학생들의 영웅으로 대접받고,라디오에선 매일같이 진추아의 노래가 흘러 나오고,잡지에선 올리비아 핫세의 예쁘장한 얼굴이 표지이던 1978년.이소룡이 되는 것이 유일한 꿈이던 현수는 악명 높은 말죽거리의 정문고로 전학을 오게 된다.야한 잡지를 팔아 학비를 챙기거나 괜한 시비를 걸어 싸움하기 일쑤인 반 분위기에서 현수와 정문고의 일짱이라는 우식은 절친한 친구로 발전하게 된다.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학원액션을 표방한 영화인 [화산고][친구]가 그랬듯이 [말죽거리 잔혹사] 역시 문제 많은 학교의 문제아 학생들을 중심으로 학생들 사이의 위계질서 혹은 주종관계를 보여주고, 시종일관 거친 말투와 폭력을 통한 남자들간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전작인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통해 결혼문제에 대한 사회 비판적 메세지를 전달했던 유하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학교내의 차별대우와 학원폭력 등 교육현실에 대한 따끔한 비판까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선도부랍시고 학생들에게 협박과 시비를 걸어 대는 종훈이나 폭력이 난무하는 학교 내에서도 가정환경에 따라 학생들을 차별적으로 대하는 학교 교사들이며 [말죽거리 잔혹사]의 배경이 되는 정문고의 모습은 그야말로 비리와 문제로 가득찬 고등학교이다.그런 와중에서도 때론 싸우기고, 때론 함께 웃기도 하는 학생들의 우정과 학창생활, 그것이 바로 [말죽거리 잔혹사]가 보여주는 진정한 재미일 것이다.

무엇보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1978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통한 볼거리들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지금 우리 부모님들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게 하는 여러 70년대 볼거리들은 거친 욕설과 폭력적인 화면들 속에서 시종일관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곤 한다.그 시절에 유행하던 장발머리 가발을 쓰고 대학생이라 속인채 드나들던 고고장,여학생과의 설레이는 대화의 장소였던 빵집,아침마다 북적거리던 등교길 버스의 모습과 버스 안내원 아가씨의 모습등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70년대의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그리고 최고의 액션스타 이소룡과 청순미의 대명사 올리비아 핫세,라디오만 틀면 흘러 나오던 진추아의 노래와 학생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해주던 서금옥의 목소리까지 1978년을 대표하는 아이콘들을 통한 영화의 전개는 칙칙하고 어두운 학원액션 영화의 분위기로 인한 지루함을 한층 덜어 주고 있다.유하 감독의 경험이 바탕이 된 배경이기에 더욱 실감나는 이런 요소들은 각기 다런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과 함께 그 재미를 더해 준다.남학교라면 꼭 한명 있을법한 그런 모습의 캐릭터들은 영화의  활기를 불어 넣어주고, 실감적으로 다가온다.뒷자리에 분위기 잡고 앉은 2학년 일짱 우식,겉은 모범생이지만 고고장까지 드나들 정도로 대담한 현수,몰래 도색잡지를 파는 것이 유일한 학교생활인 햄버거,장군인 아버지 탓에 선생님들로부터 편애를 받는 성훈이며 야비한 선도부 종훈까지 개성있고 실간나는 캐릭터들은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함께 영화를 더욱 실감나게 해주는 것이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제목처럼 잔혹하리 만큼 사실적인 폭력과 대사가 주를 이룬다.그렇기에 배우들의 연기는 더욱 중요한것이 사실이다.그런점에서 권상우,이정진,한가인 등 젊은 배우들의 연기는 그 기대치를 더해준다.특히 모범생에서 차츰 방황해가는 현수를 연기한 권상우의 연기가 단연 돋보인다.공부밖에 모르고, 집에서 혼자 이소룡을 흉내내고,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타를 연습하는 수줍음 많은 모습부터 학교 내의 불의와 본능 앞에서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현수라는 캐릭터를 통해 새삼 다른 권상우의 연기를 지켜 볼 수 있을 것이다.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권상우는 이번 영화를 통해 탄탄한 몸매와 함께 전작들과는 사뭇 다른 연기로 색다른 캐릭터를 표현하고 있다.그리고 정문고 일짱으로서 날카롭고 차가운 우식을 연기한 이정진 역시 [해적,디스코왕 되다]등 전작에서 보여준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의 연기로 카리스마를 느끼도록 해준다.껄렁거리는 걸음걸이와 불량스러운 표정과 말투 등 우식이라는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있다.권상우,이정진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와 함께 두 남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조용하고 순진한 모습의 '말죽거리 올리비아 핫세'로 불리는 은주 역으로 스크린 데뷔를 마친 한가인과 여러 영화에서 감칠맛 나는 조연으로 활약해온 김인권,극중에서 개성있는 연기로써 영화의 재미를 더해 주었던 조연배우들의 연기도 눈여겨 볼만하다.뿐만아니라 천호진과 김부선등 중견 연기자들의 출연 또한 영화의 무게감을 한층 더해준다.

남자들간의 우정과 싸움이 주된 내용인 영화들은 다소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인것이 사실이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같은 영화가 성공을 거둔 것은 욕설과 폭력적인 화면으로 가득 찬 가운데서도 다양하고 개성있는 캐릭터들의 등장과 관객들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스토리로써 어떤이에게는 향수를, 또 어떤이들에게는 호기심을 느끼도록 해주기 때문이다.그런 점에서 [말죽거리 잔혹사] 역시 남녀노소 모두에게 구미를 땡기게 하는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배우들의 호연과 조금은 생소하면서도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70년대 아이콘들, 가슴에 와닿는 교육현실에 대한 비판적 메세지까지 담고 있는 조금은 색다른 느낌의 영화인 것이다.[말죽거리 잔혹사]는 70년대의 향수어린 볼거리들과 학원 액션을 통해 오랜만에 멋진 한국영화를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