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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된 것은 영웅인가? 아니면 악마인가? 드라이브
ldk209 2011-11-29 오전 10:45:35 491   [0]

 

소환된 것은 영웅인가? 아니면 악마인가? ★★★★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다. 주인공 드라이버(라이언 고슬링)는 낮에는 카센터 직원과 스턴트맨으로, 밤에는 범죄자들의 도주를 도와주는 운전사로 살아가는 중이다. 그에겐 이름도 없으며, 과거도 없다. 단지 몇 년 전 일자리를 달라며 카센터를 찾아온 이후의 삶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혼자 조용히 살아가던 드라이버는 같은 층에 사는 아이린(캐리 멀리건)을 우연히 알게 된 후 그녀와 교감하며 행복감을 느끼지만, 그것도 잠시 뿐. 감옥에 갔던 아이린의 남편 스탠다드(오스카 아이삭)가 출소하면서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간다. 드라이버는 감옥에서 진 빚으로 인해 갱단으로부터 전당포를 털라는 협박을 받는 스탠다드를 협조하게 되지만, 함정에 빠지면서 스탠다드는 죽고 아이린마저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아마 이 영화의 제목과 예고편을 보고 <패스트 & 퓨리어스>와 비슷한 류의 범죄와 연결된 카 체이싱 영화로 생각하고 <드라이브>를 본 사람이라면 실망했을 지도 모른다. 또는 반대로 더 큰 흥분을 맛봤을 가능성도 있다. 그건 이 영화가 어떤 영화보다도 강렬하고 뜨거운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야간에 드라이버가 어느 건물을 턴 강도 두 명을 태우고 경찰의 추적을 피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이 첫 장면이야말로 <드라이브>의 특징과 이미지를 함축하고 있는 장면이랄 수 있다. 영화의 일반적인 차량 도주 장면에서 볼 수 있는 강렬한 차량 굉음과 질주, 폭주, 경찰차와의 추격전, 차량의 전복과 같은 아드레날린이 분출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전혀 볼 수가 없다. 대신 드라이버는 절제하는 운전과 정차, 경찰 무선 도청(정보), 그리고 익숙한 지리를 120% 활용함으로서 경찰의 추격을 피한다. 물론 순간적인 가속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카 체이싱 장면의 위험함은 그려지지 않는다. 절제와 질주의 조화,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인 것이다.(엘리베이터 장면이 바로 절제와 질주의 조화가 가장 인상적으로 구현된 장면이 아닐까 싶다. 드라이버와 아이린이 아름다운 음악을 배경으로 느리게 키스를 나누다 옆에 서 있던 킬러를 죽이는 장면은 매우 잔인하면서도 소름끼치도록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카 체이싱 장면이라든가 범죄 장면(영화 초반의 두 명의 범죄자가 어떤 건물을 터는 장면이나 중반부 스탠다드가 전당포를 터는 장면은 실제 범죄 현장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운전석에서 기다리고 있는 드라이버의 움직임만으로 긴장감을 증폭시킨다)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긴장감으로 충만해 있으며, 이를 바라보는 관객의 심장 역시 두근두근 뛰게 만든다. 한마디로 촬영, 편집, 음악, 연기가 어우러져 최고조의 긴장감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무거운 듯 아래로 깔리는 80년대 풍의 전자음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최고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본격적인 액션이 펼쳐지는 후반부에 이를 때까지 영화는 액션이라기보다 오히려 멜로에 가까운 장면들을 많이 보여준다. 처음 드라이버가 아이린과 마주치는 장면, 마트에서 아이린과 그녀의 아들을 보고 피했으나 그녀의 자동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자신의 차에 같이 동승하는 장면(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드라이버가 갈등하는 모습), 카센터에 찾아온 아이린, 아들과 함께 강변을 질주하는 장면(이 장면은 마치 영화 <카>를 연상하게 한다) 등은 아름답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한 느낌을 준다. 특히 아이린이 운전을 하는 드라이버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놓는 장면은 아련한 느낌의 절정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건 이 장면들에서 조차 영화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 영화의 액션 장면들은 대단히 잔인하기는 하지만, 짧게 스치듯 지나가고 횟수도 몇 번 되지 않는다. 영화의 대부분은 주인공이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상대를 죽여도 된다는 걸 납득시키기 위한 감정의 축적을 느리게 진행시킨다. 그럼에도 매 순간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다. 즉,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뭔가 일어날 것 같은 전조의 연속으로 이루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릴 때 TV에서 봤던 <석양의 무법자>는 멋진 총격전의 향연으로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러다 몇 년 전 한 극장에서 세르지오 레오네 특별전이 열려 보러 갔다가 좀 당황했었다. 왜냐면 기억 속 영화에 비해 의외로 액션이나 총격장면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 내가 느꼈던 건 아마도 거대한 액션장면의 많고 적음보다는 액션으로 가는 과정의 치밀함과 액션이 펼쳐지는 그 순간의 강렬함이 액션 영화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드라이브> 역시 마찬가지다.

 

드라이버는 과거 전문 킬러였을 수도 있고, 손을 씻은 것 같은 현재에도 범죄와 관련한 일을 하는 걸 보면 밝은 세상에서 살아 온 것 같지는 않다. 처음 그가 아이린을 도와줄까 잠시 망설였던 건(그의 캐릭터와 맞지 않게), 그녀와 가깝게 됨으로서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느낌 때문 아니었을까. 결국 드라이버는 자신 안에 내재해있던 가혹한 폭력성을 사랑하는 그녀 앞에 고스란히 보여주고 마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사랑하는 여성과 아이를 보호하는 영웅의 위상으로 드라이버를 바라본다. 그런데 스토리로만 보면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는 영화 <폭력의 역사>는 이를 정반대로 해석한다. 외부의 악당에 대항해 폭력을 행사하는 건 영웅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된 폭력의 발현이며, 개인사에 등재된 폭력의 증거는 결코 말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폭력의 핵심은 외부인의 위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아이린이 소환한 것은 영웅인가? 아니면 악마인가?

 

※ 왜 <드라이브> OST는 발매되지 않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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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2011, Dr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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