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집 낡은 책장 가운데에는 항상 족보가 있다.
크기가 커서 다른 책과 달리 튀어나와 있는 족보가 마음에 안 들어 밑에 쑤셔놨더니 아버지의 화만 돋웠다.
그깟 족보가 뭐가 대수이냐 대들었지만, 그것은 아버지에게 어머니와의 결혼반지보다 소중한 물건이었다.
계몽영화는 정씨 가문의 3대 가족사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그런데 이 영화, 소소한 가족사에 대한 일기라기보다는 족보에 가깝다.
행위에 대한 사건들은 보여주지만 정작 그 가족들이 왜 그렇게 했는지, 왜 그렇게 변했는지에 대한 심리는 알 수 없다. 그저 추측만 할 뿐이다.
족보를 본다고 한들 내 할아버지가, 내 아버지가 어떤 시절에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냥 그들이 그 자식에게 말해주고, 그 자식이 또 다음 자식에게 말해주면서 구전으로 내려올 뿐이다.
계몽영화를 보기 전, 3대 가족사에 대한 관심보다 ‘친일파’ 3대 가족사에 대해 더 궁금했는지도 모른다. ‘얼마나 잘 사나 보자.’라는 식으로 이를 물고 영화를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를 본 후의 내 심정은 ‘우리 모두 참 아등바등하게 사는구나.’이다. 그들도 아등바등 살아왔고 우리도 아등바등 살아왔고, 그리고 살아가고 있다.
영화 속 한 장면에 ‘니네 집안 되게 웃겨’라는 대사가 있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을 냈다. 정태선의 집이 정말 웃긴 집안이라서 동의하는 웃음이 아닌, 그 말을 나도 어디선가 들어봤기 때문이다. 어릴 적 부모님께서 싸우실 때 항상 나오는 말이 그것이었다.
계몽영화를 보면서 오히려 우리의 가족은 어떻지? 라는 생각을 하였다. 갑자기 아버지에게 족보를 들고 가 족보 너머에 존재하는 진실을 듣고 싶어진다.
2시간의 러닝타임에도 한 번도 지루하지 않았다. 역시 남의 가족사 이야기는 재미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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