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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패 짝패
hongwar 2007-10-13 오후 11:07:18 1570   [0]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야기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 영화계에서도, 이야기가 그다지 중요한 게 되지 않아도 되는 장르가 있다면, 그 중 하나가 바로 액션영화이리라. 사실 우리 한국인들이 그토록 이소룡이나 성룡, 이연걸의 액션 영화에 열광해 온 건 스토리가 눈부셔서는 결코 아닐 것이다. 이소룡이 전세계적인 영화계의 전설로 추앙받는 것도, 그가 나온 영화들이 하나같이 스토리가 기가 막힌다거나 그의 연기력이 아카데미상감이라거나 한 것이 아니라 그의 몸놀림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액션영화에 더없이 잘 맞는 완벽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처럼 액션영화는 보통 감미로운 대사나 탄탄한 스토리, 분위기 있는 미장센으로 감동을 안겨주는 다른 장르의 영화들과는 달리, 배우들의 몸놀림, 신체로 직접 보여주는 "유희"가 감동을 안겨주는 요소가 된다.

 

류승완 감독은 이 영화 <짝패>를 통해 이런 맛이 있는 액션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것 같다. 액션에다가 스릴러, 멜로같은 장르가 합쳐져 복합적인 재미를 주는 장르영화가 아니라 오로지 액션만이 영화의 줄거리와 인물들의 행동을 이끌어가고, 관객들의 재미를 유도하는 그런 영화말이다. 액션영화가 그다지 흔치 않게 보이는 한국 영화계에서, 거기다 오로지 인물들이 직접 몸을 맞대며 치고 박는 재미로 밀고 나가는 액션 영화는 더더욱 흔치 않게 보이는 한국 영화계에서, 이 영화는 분명 눈여겨 볼 만한 수확이다.

 

서울에서 강력계 형사로 일하고 있는 태수(정두홍)는 어느날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한다. 학창시절의 절친한 친구 왕재(안길강)가 괴한으로부터 갑작스런 죽음을 당했다는 것. 친구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태수는 고향인 충청도의 온성(이 곳은 영화에만 등장하는 가상도시이다)으로 내려가고, 그곳에서 다혈질 후배 석환(류승완)과 역시 학창시절 친구 필호(이범수)를 만난다. 석환은 이전까지 자기 집안을 꾸준히 뒷바라지해오던 왕재의 죽음으로 인해 극도로 분노한 상태. 장례 후, 태수와 석환은 각자 왕재의 죽음의 뒤에 숨은 뭔가를 캐내가기 시작한다. 왕재를 찔러죽였다는 10대 아이들(필호의 말에 따르면)을 쫓아간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왕재의 죽음 뒤에는 친구 필호가 연관되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어렸을 때와는 달리 고향 온성에서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된 필호는 이 음모를 캐려는 태수와 석환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위협을 가하고, 태수와 석환은 점차 최후의 승부를 향해 다가가는데.

 

처음 이 영화가 제작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했던 꽤나 희한한 생각 중 하나는, 출연진들만 보고 다소 개인적인 저예산 영화를 찍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맞다. 이 영화에 나오는 두 주인공은 정두홍과 류승완. 정두홍은 배우보다는 한국영화계를 주름잡는 무술감독으로 더 알려져 있고, 류승완 역시 액션에 일가견이 있는 젊은 감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이 영화에 투톱 주연으로 출연한다니, 난 처음에 이 영화가 규모도 작고 개인적인 요소도 일정량 포함되어 있는 저예산 영화인가보다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액션신은 속도감 넘치고 때론 스타일리쉬하고 정교하기까지 하며, 영상 또한 화려하다. 제작비도 25억원이 저예산이라고는 하나 일단 몇십억원을 들여 찍었기에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진짜 "저예산"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상업적인 재미가 얼마든지 있는 영화라는 뜻이다. 그래서 아직은 배우보다는 감독으로서의 명성이 더 높은 두 주연의 연기가 어느 정도일까 살짝 궁금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기대 이상이다. 정두홍은 사실 최근 몇년 전부터 TV나 영화에서 간간이 배우로서의 모습을 비쳐 오고, 무술감독으로서의 특유의 강인하고 견고한 이미지가 축적되어서 그런지 이 영화에서도 묵직하고 남자다운 태수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많지 않으면서도 나올 때면 무게감이 진득하게 느껴지는 대사들, 카리스마 있는 눈빛과 표정 연기까지 정통 연기자로서도 결코 손색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류승완의 연기 역시 생각보다 상당히 괜찮았다. 배우가 감독까지 겸하는 경우는 흔해도 감독으로 더 알려진 이가 주연까지 겸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류승완은 이런 점에서 오는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동생 류승범과 영락없이 유사한 거침없고 아무렇지 않은 듯한 말투로 뱉어내는 능글맞은 충청도 사투리와 재치 있는 대사(특히 "비데" 부분에서 뒤집어졌다)와 더불어 몸을 사리지 않고 여느 액션스타 못지 않게 소화해 내는 액션 연기까지, 영화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제대로 쏟아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액션에 그만큼의 애정이 있고 그만큼의 소질이 있으니까 액션영화를 찍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그렇다고 액션 연기를 할 줄 모른다고 액션 영화를 찍을 자격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런데 이 투톱 주연말고도 또 주목해야 할 배우가 있으니 바로 악역 필호 역의 이범수다. 이 배우가 없었더라면 이 영화에 있어서 연기의 무게가 급격히 달라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이전까지 이범수는 인간적이고 순박하고 따스한 캐릭터가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배우였는데, 이 영화에서는 정말 그 꼬불머리를 기름에 노릇노릇하게 튀겨주고 싶을 정도로 악랄함이 극에 달하는 악역 연기를 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보여주었다. 사실 이 영화에서의 이범수가 이전 영화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잔뜩 카리스마 있다거나 험상궂은 표정을 하고 나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말투나 표정을 보면 여전히 그는 넉살 좋고 화통한 성격인 것 같다. 다만 그런 말투와 표정으로 정작 행동은 인간 이하의 것을 일삼는다는 점에서 악당으로서의 포스가 만만치 않게 다가온다. 이범수는 이러한 이중적인 성격의 필호는, 특유의 거침없고 시원시원한 대사 구사력과 더불어 열등감과 보복심에 사로잡힌, 그래서 동시에 비열하고 비겁하게 변해버린 필호의 모습을 능청스런 표정과 행동을 통해서 정말 악당답게 보여주었다. 특유의 넉살좋은 이미지가 이렇게 정반대의 이미지 또한 완벽하게 형성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웠다. 역시 연기파 배우는 어떤 연기를 해도 연기파다.

 

이렇게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 면면도 상당히 만족스럽지만, 사실 이야기는 앞서 얘기했듯 물고 늘어지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 친구의 죽음과 오랜만에 고향에서 만난 동무들, 그리고 그 죽음 뒤에 숨어 있는 음모와 동무들의 외로운 싸움, 돈이나 이익보다 정의와 의리를 중시하는 사나이들의 심리 등은 남성미 넘치는 액션 느와르 영화에서 흔히 보아온 구성이고 설정이다. 아마 이 영화를 만든 류승완 감독도 이 점은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이야기 면을 너무 의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느와르"로 칭할 수 있느냐 하면 마냥 그렇지만도 않다. 물론 이 영화는 범죄의 세계, 그 속에 숨은 검은 음모같은 것들을 다루고 있긴 하나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딴판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어둡지도 않고, 마냥 차갑지만도 않다. 간간히 등장하는 유머는 여느 코미디 영화 못지 않게 폭소를 유발하기도 하고, 수시로 등장하는 액션 장면은 때론 피가 마구 튀면서도 밝고 화려한 배경 아래에서 현란한 카메라워크와 함께 펼쳐진다. 인물들의 연기 역시 마냥 진지하고 고뇌에 잠겨 있기보다는 거침없고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더 강하고. 때문에 액션 느와르라고 하기 보다는 그저 "액션" 장르의 영화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액션 자체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공을 많이 들인 만큼, 이 영화는 액션 신에 있어서 한국영화에서 그간 보기 드물었던 꽤나 독창적인 장면을 많이 선사한다. 비보이들이 자신들의 춤을 권법화(?)시켜서 펼치는 액션신은 상당히 창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야구부나 하키부 등 운동부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도구로 펼치는액션 장면 또한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또 우리가 흔히 거니는 번화가 안에서 자동차나 오토바이 등 주변의 각종 사물을 이용해 결투를 벌이는 것이 마치 "생활액션"처럼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했다. 반면, 이런 독창적인 장면들 외에도 그동안의 수많은 액션영화들 속 결투신을 집대성한 듯한 복합적인 액션 장면 또한 많았는데, 후반부 대규모 술집에서 펼쳐지는 결투신이 바로 그것이다. 때론 좁은 복도 안에서 두 명의 주인공이 수많은 검객을 상대로 아슬아슬한 진검승부를 펼치고, 때론 널찍한 장소에서 발차기와 주먹질 같은 지극히 1차원적인 수단으로 승부를 벌이기도 한다. 또한 간간히 슬로우 모션이 끼어들면서 쉴 새없이 칼날이 오가는 결투 장면은 화려한 세트를 배경으로 눈을 휘둥그레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이 영화는 독창적인 액션과 유형화된 액션 모두 손을 대면서 한마디로 액션의 종합선물세트를 선보인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이 영화는 또 자기만의 매력 또한 잊지 않는다. 영화의 배경도 충청도도 그렇고, 주요 인물들이 쓰는 말투도 충청도 사투리인데, 이 충청도 사투리나 인물들의 행동에서 오는 느낌은 전체적으로 액션 영화와는 어울리지 않게 "여유롭다". 사건의 배후에 있는 인물들을 협박하면서도 이들은 이마에 핏대 바짝 세우고 위협하기보다는 실실 웃으면서 위협하고, 심지어 악당 필호조차도 겉으로는 무지막지하게 살벌한 벌칙을 하면서 말로는 고문기술자에게 "너 따블 뛰냐?"는 등의 농담성 멘트도 날리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 목숨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결투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태수와 석환은 여유롭게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이따 봐요"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다음을 기약한다. 흔히 액션 영화하면 떠올리게 되는 잔뜩 긴장된 카리스마나 무게감과는 다소 거리가 먼, 이 영화만의 구수하고 넉살좋은 액션영화로서의 매력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초반부 주요 인물들의 학창시절에 대한 장면에서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다소 촌스럽고 생뚱맞게 느껴지기도 하는 나미의 "영원한 친구"를 BGM으로 깔고서 마치 마냥 활달한 80년대 의류 광고라도 보는 듯이 발랄하게 펼쳐지는 복고풍 결투 장면은 뭔가 촌스럽고 구시대적인 느낌이 들게 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적이고 풋풋한 그 시대의 매력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괜히 진지해지고 멋있어지려 하기 보다는 보기 좋게 펼쳐진 마당 위에서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신명나는 액션의 유희를 즐기는, 그런 자유로운 즐거움이 이 영화에는 녹아 있다. 이는 어쩌면 폼잡고 무게잡는 것보다는 편안하고 여유로운 인간미를 추구하는 한국영화로서의 매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맛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알싸한 된장찌개"와도 같다. 한국인으로서의 넉넉하고 구수한 된장찌개 맛이 상당히 배여 있으면서도 그 속에 다듬어져 있는 액션의 맛은 알싸한 고추마냥 매콤하고 짜릿하다. 아마도 류승완 감독은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듯하다. 그동안 우리가 보아온 액션 영화들의 진정한 맛을 되살리면서도, 그 속에 한국영화로서의 고유한 요소를 버무려 "한국 액션영화"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감독의 의도가 상당히 긍정적으로 표현된 듯 싶다. 구수하면서도 매콤하고 짜릿한 맛이 함께 하는, 한국사람의 입맛에 착 달라붙는 그런 액션 영화로 탄생했으니 말이다.


(총 0명 참여)
thesmall
글쿤요   
2010-03-14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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