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신선한 영화였다. 영화의 주인공들이라 할 사람들이 실제 인물들이고 80살이 넘었던 이들의 과거를 연기하는 탱고 댄서들이 이들의 과거를 채우며 영화가 진행된다. 다큐멘타리 영화인 것 같으면서도 다른 이들이 과거의 유명한 이들을 연기하고 춤추는 구성은 사실 무척 낯설다. 어디선가 본 적이 없는 그런 구성. 영화는 묘한 환상을 심어주며 관객을 과거로 이끈다. 어느 주중 아침에 방영되는 막장 드라마의 구도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솔직히 최고의 탱고 커플의 기본 이야기는 구태의연했고 어디서나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오늘의 이야기인 것처럼 보였다. 현재 80살이 넘어 생존하고 있는 마리아 니브 리고(80)와 후안 카를로스 코페스(83)라는 불세출의 탱고 커플에 대한 영화는 나처럼 이들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이 보는 어떤 이들에게 환상을 줄 수도 있는 이야기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처음부터 깨졌다. 환상적인 탱고 커플의 모습 뒤에 숨겨진 웃픈 이야기는 어쩌면 당황스런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감동적이다. 마리아와 후안을 대신해서 과거를 연기하는 댄서들은 그냥 춤만 추지 않고 있다. 거기엔 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과거의 영광을 지닌 인물들과의 진한 이야기가 사실 매우 놀라웠다. 그들과 과거의 장소로 가면서 그곳에서 최고의 탱고 커플들이 했었던 춤을 다시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과거의 인물들과 함께 대화하면서 평범할 수도, 아니면 독특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해준다. 아마도 마리아와 후안의 춤을 대신하거나 그들의 춤을 해석하는 이들의 마음 속엔 환상이 있었는지 모른다. 아름다운 탱고를 탄생시킨 이들의 아름다우면서고 우아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는 착각. 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그건 관객에게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마리아와 이야기하는 두 명의 여성 댄서들의 이야기나 얼굴에 드러난 모습들은 인생의 새로운 면을 다시 보는 것들이었다. 마리아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이란 뭔가를 다시 한 번 고민하는 모습이라든지 결혼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모습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당혹스런 얼굴은 영화의 묘한 긴장을 강화한다. 80살이 넘은 두 명의 노인들의 생활 속엔 삶의 안스러우면서도 잔인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다. 마리아와 후안의 이야기는 분명 막장 드라마적 모습들이 많았다. 하지만 연인으로 끝났어도 사업 동반자로서의 파트너 관계는 계속 유지된다. 아마도 이 영화 최고의 압권인 부분이다. 사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로 미워하면서도 탱고라는 사업에 그들은 뭉쳤고 서로를 증오하면서도 함께 아름다운 춤을 춘 것이다. 어쩌면 인생의 슬픈 구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남녀 사이에 사랑은 없지만 함께 일을 하는 동료의 가치가 있다는 것. 그것은 사랑하는 이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다. 이미 틀어진 관계를 지닌 인간들끼리도 업무적으로 뭉치는 일은 다반사다. 적과의 동침이란 말이 괜히 생긴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 표현은 마리아와 후안의 관계에도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막장이면서도 이 영화는 인간의 비극적 모습을 우아하게 보여주면서 그런 인생 속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아픈 면들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많은 고민을 던져주고 그러면서 이상한 위로를 해준다. 슬픈 인생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해결방안을 주는 듯하다. 사실 마냥 좋은 수 없는 관계 속에서도 이 둘은 최악은 면했는지 모른다. 어떻든 탱고라는 분야에 많은 활력을 줬고,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줬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슬픈 인생 속에서도 그들의 마지막 춤처럼 꼭 사랑만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아님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필요한 관계 역시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우아한 춤 속에 보여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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