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어쩌면 비현실적이다. 지금의 바쁜 현실에서 누군가를 기다릴 여유가 있을까? cool한 사회와 인간관계가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세상에서 과연 old하게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채울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헤어진 이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만난다면 과연 무엇을 채울 수 있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영화는 무척 오래된 영화를 보듯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신세계로 향하는 듯 하다. 바라볼 수 없는 그 어떤 과거로의 여행 아닌 여행을 떠난 ‘요시다 미사키 (나가사쿠 히로미)’의 새로운 시작은 도발적이기조차 하다. 이미 과거의 인물이 되어버린 자신의 아버지를 찾기 위한 그녀의 새로운 시작은 과거의 어느 영화에서 있던 스토리였지만 지금의 감성으론 좀 다가서기 힘든 내용이기도 했다. 어쩌면 과거라는 올가미에 스스로 걸려버린 어리석은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더 이상 사람이 올 것 같지 않은 적막한 곳에 버려진, 어쩌면 아버지의 마지막 유산인 바닷가 창고에서의 새로운 출발은 무척 이상했다. 버려진 곳에서의 새로운 시작, 과거를 잊지 못하는 것은 사람으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인가보다. 아마도 과거를 잊지 못한 이면에는 그리움뿐만 아니라 미안함과 아쉬움이 숨쉬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버렸다는 죄책감 역시 그 이면 뒤에 잠자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만남이 마냥 반가울 리 없지만 그래도 기다리는 요시다 미사키의 새로운 기다림은 그래서 뭔지 모를 감성을 자극한다. 그녀는 사실 찾아간 것이다. 찾아간 그곳에서 기다린다면 말이다. 자신이 있는 그곳으로 올 리 없는 현실을 극복하고 아버지가 다시 올 그 곳으로 그녀는 찾아가서 기다리는 것이다. 그녀의 기다림은 그래서 색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의 많은 이들이 바쁘고 고단한 현실 속에 허덕이면서 누군가를 기다리기보단 새로운 것을 찾아서 뭔가를 해보려는 지금과 견줘 보면 이색적이다. 색다른 기다림이 찾아가는 것이라면 그녀는 어쩌면 과거의 고통을 다시 만나기 위한 어리석은 행동일지 모르겠다. 과연 그곳에 따뜻함을 만날 수 있을까? 아니면 무서운 비극이 숨쉬고 있을까? 아니면 부녀지간의 뜨거움이 아닌, 서로를 향한 무서운 말들의 향연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과거로의 여행이다. 현대인은 과거로부터의 탈피를 꿈꾸며 산다. 과거의 실수나 오해로 인해 벌어진 많은 죄는 죄책감을 낳고 있다. 그리고 그건 상처로 남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현대인들이 해결하는 방법은 외면이다. 문제는 상처를 외면한다고 그게 그리 쉽게 낫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먼 훗날 관련된 사람들을 만났을 때의 공포가 엄습할 때가 무섭다. 그리고 용서를 빌 자신이 싫을 것이다. 그래서 도피성 외면을 하려 한다. 하지만 요시다 미사키는 그런 죄책감이나 아마도 ‘왜 그랬니’라는 말들이 오고 가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가족이란 이름 속에 담긴 아련한 즐거움을 만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인간적인 사과도 하고 싶었을지도. 그리고 자신의 마음 속 한구석에 남아있는 인간적 고뇌를 해결하고 싶은 그런 마음일 수도 있겠다. 아마도 현대인들 역시 은근히 바라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망설이는 그런 행동을 그녀는 많은 생각을 간직한 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새로운 이주가 마냥 과거와의 연결로만 가지 않는다. 그곳에서 새로운 만남이 시작됐고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 어차피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은 도처에 많다. 한적한 해안가 마을에서도 그런 이들을 만난다. 여기서 이 영화의 매력이 발산된다. 과거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려는 이와 현재의 생활 속에 상처를 받고 있는 이의 만남은 서로 간의 관계를 틀면서 새롭게 전개되고 진화된다. 보듬는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상처받은 이가 마냥 쉬울 수 없는 상대의 상처를 보듬는다는 것은 이미 타인을 위한 마음 열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이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억지로라도 내야 한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장소는 결국 새로운 장소가 되는 것이면 그 속에서 인간은 다시 살아가는 법이다. 그 삶 속에서 새로운 이를 만나는 것은 운명이며, 그런 과정 속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영화는 과거로 돌아가려는 이의 새로운 시작을 황량하면서도 포근한 어느 바닷가 카페에서 보여준다. ‘세상의 끝’이라는 황량함과 절박함이 묻어 있는 문구는 지금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같다. 언론 사회면에서 따뜻한 기사보단 암울한 기사로 넘치는 지금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곳에서 마음을 녹이고 위로가 될 수 있는 ‘커피 한 잔’은 누구나 마시고 싶은 그런 그리운 이상향이 되고 말았다. 영화 속 위로가 어떤 의미인지 알지만 세상 속에서 그런 위로가 될 수 있는 곳을 찾아 정처 없이 떠도는 현대인들을 본다면 이 영화는 그래서 비현실적인 것도 같다. 그래도 이미 비현실적이지만 소박한 위로를 받고 싶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위로가 고맙게 느껴진다. 그런 곳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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