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한 개인을 영웅으로 만드는가, 아니면 괴물로 만드는가.
★★★☆
동명의 소설 원작. 톰 하디, 게리 올드만, 조엘 키나만 출연의 영화 <차일드 44>를 감상하였습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만큼 이야기의 완성도가 굉장히 높은데, 더욱 믿을 수 없게도 이 이야기가 모두 실화였다고 하더군요. 기회가 된다면 영화의 원작인 소설 <차일드44>를 감상해 보았습니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영화 <차일드 44>는 요행부리지 않고 말하고자 하는바를 부지런히 전달해내는 영화입니다. 스릴러로서 흡인력을 증대시키는 장치가 전무하지만, 순수하게 완성도 높은 원작의 힘으로 전달하고자 하는바에만 집중하죠.
2차대전 종전후 잘 재현된 러시아를 배경으로 둔 영화 <차일드44>는, MGB(국가보안요원)에 속해있는 '레오'를 주인공으로 두고있습니다. 어느날 출세가도를 달려온 그에게 아내가 스파이 혐의가 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오고, 본부는 아내를 고발할 것을 명령하지만. 임신한 아내를 버릴수 없었던 레오는 명령을 거절하고, 좌천되고 말죠.
한편, 모스크바를 포함한 러시아의 몇몇지역에 아이들이 계속해서 시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본부는 정확한 사인조차 밝혀내지 않은채 모든 사건을 단순 사고사로 은폐시켜버리고, 이러한 본부에 대한 의구심은 점점 커져 결국 레오는 단독적으로 이 사건을 수사하게 됩니다.
<차일드44>는 "천국에 범죄란 없다"라는 자막으로 부터 시작합니다. 범죄란 자본주의의 산물이라는 스탈린의 공산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범죄율 0%라는 결과 이면에 '범죄은폐'라는 비극을 낳고 맙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알고도 은폐하는 권력집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연쇄살인범은 더더욱 활개를 치지만, 스탈린의 눈치를 보느라 정확한 사인조차 밝혀내지 못한채 수 많은 아이들이 죽임을 당하고 말죠.
재밌는 것은 이러한 사건을 둘러싼 영화의 대부분의 인물들 또한 국가라는 권력에 상당부분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건을 풀어나가는 '레오'는 자의적이라기 보다 지극히 우연적으로 선택되어 국가를 통해 만들어진 영웅입니다. 또한 레오와 첨예한 대립을 펼치는 '바실리'와 레오의 아내인 '라이사' 역시 간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변화되어진 인물들이죠. 이러한 인물들을 포함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다 그래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물들 가운데 레오는 뭔가 구별되어집니다. 영화 후반쯤 나오는 "국가도 정신병자는 어쩔수 없지"라는 대사 처럼, 길들여지는듯 보이지만 길들여지지 않는 비정상적인 시스템의 '기형아' 처럼 보이는데. 이러한 결론은 국가라는 권력에 의해 고아로 자랐지만, 그것은 오히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의 아픔에 눈물을 보일줄 알고. 결국 44명의 아이들의 죽음에 의혹을 품는 레오의 모습의 원동력이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죠.
그리고 국가가 만들어낸 수 많은 작품중, 유별났던 레오는 결국 아이들의 죽음에 대한 실체와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연쇄살인마 또한 국가라는 권력과 전쟁의 잔재로 인해 철저하게 빚어진 조각상이라는 점에, 레오와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죠. 그것은 영웅이자 MGB로서 레오가 벌인 행적과 괴물로 불리는 연쇄살인마가 벌인 행적이 사실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겠죠. 유일한 차이라면 국가가 용인하느냐 용인하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이렇듯 <차일드44>는 당시 러시아에 실제했던 실화를 통해, 국가와 사회라는 권력이 망쳐버린 개인들과 그로 부터 도출되어진 비극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지금이라고 별반 다를까요?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가끔은 한 개인은 사회의 노예일뿐라는 생각이 들때가 참많습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또 한명의 기형적 시스템의 기형아인 '레오'가 나오길 기다리는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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