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어릴 적 수많은 만화책을 보면서 컸다.
드래곤볼, 짱구는 못 말려(크레용
신짱), 마이러브, 천랑열전, 접지전사, X-Men 등등 한국,
일본 만화를 비롯하여 미국의 코믹북까지.
지금은 찾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쉽게 찾을 수 있던 만화책 대여점에서
살다시피 했고, 그곳에 있던 만화 대부분을 섭렵하며 즐거워했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서 소설이나 인문학 서적 등으로 옮겨오긴 했지만, 그때의
추억들 대부분은 아직 기억 속에 고스란히 자리 잡고 있다.
한국 만화나 미국 만화(이하 코믹스)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최고는 일본 만화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최고라고 생각하며 읽었던 일본 만화들은 독특한 특징으로 구분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모든 만화를 이와 같은 범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특별히
좋아했던, 혹은 인기가 있다고 생각했던 만화들에 한해서 말이다.
대표적인 만화를 꼽으라면, 짱구는 못 말려, 명탐정 코난, 소년 탐정 김전일,
도라에몽 등이 이러한 만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만화들은 내용 전개는 무척이나 느리면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생성해냈다. 명탐정 코난의 경우 아직 어린 모습으로 20년이 넘게 살고 있다. 같은 탐정 수사물 중 역시 인기 있던 소년탐정
김전일의 경우 완결이 났지만, 그도 딱히 나이를 먹어서는 아니었다.
4살 유치원생 짱구도 코난과 같이 아직도 그 나이 그대로 10여 년이 넘게 지내고 있고, 반면 우리는 그 시간만큼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이러한 만화들은 애니메이션화 되어 다시 한 번 사랑을 받고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그 애니메이션들이 극장에서 상영되는 이른바 극장판 애니메이션도 만들어지곤 했다.
만화 강국 일본에서는 각종 만화가 애니메이션화가 되고 지금도 활발하게 방송 중이기에 이처럼 내용 전개가 느린
만화만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원피스나 나루토와 같이 이야기의 흐름이 있는 만화도 제작된다.
이때 극장판의 경우 실제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내용 전개와 크게 상관없이 독자적인 에피소드로 만들어지곤 한다. 물론
약간의 영향을 주긴 하지만, 위에 언급한 전개는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원피스를 보면, 만화 본편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지만, 극장판에서 나왔던 기술들을 그대로 쓰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여기서 극장판을 본 적 없는 독자들도 내용을 이해하기에 지장이 전혀 없다.
그만큼 극장판은 전체적으로 덧붙이는 정도로 보이고 있으며, 또한 전체적인
줄거리를 굳이 이해시키려고도 하지 않는다.
즉 어느 정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알고 있어야 극장판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으로, 반대로 이야기를 하자면 약간의 장벽이 있다는 것도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개봉한 도라에몽:스탠 바이 미(이하 스탠 바이 미)는 무척이나 친절한 극장판이다.
만화를 보지 않아도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내용이 만들어졌고, 어떻게
도라에몽이 진구에게 오게 되었는지, 그들의 목적은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장기간 연재되었던 만화이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도라에몽은 그 시간을
꾹꾹 눌러 담아 길지 않은 상영시간에 담아냈고, 내용전개가 진행되는 만화가 아니기에 새로운 에피소드를
만들기에는 아주 수월한 조건이었다.
만화를 알고 있는 우리들의 입장에서 극장판 도라에몽에 거는 기대는 무엇일까? 개인적인
견해를 펼쳐보자면, 일상생활에서 보기 힘든 미래의 아이템을 소개할 때 기존에 본 적이 없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거나, 여기에 덧붙여 무언가 독특한 모험담 등을 기대할 것이다.
당연히, 귀여운 도라에몽의 모습과 지질함이 매력인 진구의 모습도.
하지만 이미 장시간 연재했던 이 만화는 그 시간 동안 수없이 신기하고 한 번쯤 갖고 싶던 다양한 물품들을 쏟아냈다. 모르긴 몰라도 감독이 추구한 새로움을 보여줄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겁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선택한 3D 도라에몽.
물론 최근 발달한 촬영 기술 및 추세의 영향 때문에, 3D로의 진출은
당연할지 모르지만, 이유야 어쨌든 이러한 3D로의 진출 시
주의해야 할 점이라면, 캐릭터들의 기존 매력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분명 기존 만화 및 애니메이션을 봤던 관객들이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스탠 바이 미는 이러한 부분들에서 처절하게 실패했다. 도라에몽은
전혀 귀엽지 않았고, 그의 독특한 목소리는 괴기스럽게 들리기만 할 뿐이었다. 진구는 오히려 너무 멀쩡하게 보여서 뭐가 그렇게 지질한지 느껴지지도 않았으며,
그냥 눈물이 많은 여린 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
거기다가 등장하는 아이템들도 이미 여러 번 써먹어서 더는 저런 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하늘을 나는 프로펠러나 시간을 돌리는 보자기는 너무 많이 봐서 물리고, 만우절에
적절하다는 반대로 되는 물약은 전혀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줄거리에 치중했다고 하기에는 친절함을 필두로 기존 만화에서 보여주었던 다양한 물품을 보여주는 게 바빠 시간 대부분을
허비했고, 실질적인 내용은 후반부에 잠깐 등장할 뿐이었다.
미래로 가서 커버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진구와 동행하는 도라에몽의 그림은 기존에 수차례 본 모습이기 때문에
이미 익숙했고, 이슬이와 잘 되고 싶은 그의 모습만 남을 뿐이었다. 새로운
감흥은 전혀 주지 못한 채, 무언가 이야기를 끝내고 싶어하는 노력만이 보일 뿐이었다.
결국, 떠났던 도라에몽은 다시 돌아왔고,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을 남기며 행복한 결말을 보여주었지만, 그런
단순함이 도라에몽 극장판에서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분명 도라에몽은 기본적인 줄거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전개가 무척이나
느린 만큼 위의 이러한 친절은 다소 과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처음 진구에게 오게 된 이유 정도를
보여주는 것은 전체적인 이해도를 높이고 그 정도만으로 충분히 친절함을 보여줄 수 있었겠지만, 과도하게
마무리하는 단계까지 보여주면서 기존의 어마어마한 연재 분량을 담아내려고만 했던 것 같다.
그 결과 전혀 새롭지 못한, 아니 오히려 시대와 비교했을 때는 오히려
더욱 퇴보해버린 그들의 이야기가 만들어졌고, 다양한 부분에서 아쉬움만이 남는다.
★ 5개 만점
★★★☆(스토리 4 연출
4 비쥬얼 6 오락 7 총점
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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