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의 대결, 문제는 누가 선이고 악인지 모를 때가 많다. 살면서 느끼는 정직한 진실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선과 악이란 이분법 속에 살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평가를 사회에 일임한 채 살아간다. 사회로부터 명령 받는 것이 선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사회가 그렇다고 하면 수긍하는 시스템 속에서 인간, 아니 국민들은 살고 있다. 어쩌면 국민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뭐가 선이고 악인지 말이다. 허울 좋은 미명 아래 움직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삶 속에서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자신의 생명과 안녕을 위해 더없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리라. 제국주의 국가들의 국민들이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강탈하는 것이 옳다라고 생각했을까? 인도나 중국이 미개하다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그들이 교육을 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자신들이 가르치는 교육세가 좀 적다고 생각하니까 그 교육세에 맞는 수준으로 전체 국토의 자산과 생산물을 비열하게 가져갔을까? 아니란 거 다 안다. 국가에 도전하면 어떻게 될지 국민들은 다 안다. 그래서 억지로 따라간다. 그리고 그런 비열한 수긍 속에서 얻게 된 과실 역시 선과 악의 이분법을 함부로 사용하는 정부의 편을 들 수 있는 배경이 됐을 것이다. 미필적 고의라고 해야 할까? 결국 제국주의를 만든 이들은 이익에 부합되면서 거기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먹기 위해 3000년 이상의 문명 국가들이 바보로 전락됐고, 강탈당했다. 그런 국가들 속에서의 국민들은 결국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국민들일 뿐이다. 법도 정의도 외면 받는 대상일 뿐이다. 국가에 대한 배신은 사실 국가 전체를 위한 배신이 아니라 집권 지도자들에 대한 도전인 것이며, 월급 주고 생활비 마련해 주는 집권세력에 도전하는 것은 그들의 책무를 위반하는 것이다. 그렇다. 이런 책임 속에 공무원도 있고, 군인도 있고, 경찰도 있고, 우리가 있는 것이다. 영화도 붐이 있나 보다. 오늘의 한 팀이 왜 이렇게 됐는지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지금의 멤버 구성이 어떻게 됐는지, 그리고 왜 그들은 뭉쳤는지를 보여주는 이런 방식은 좀 위험하기도 하다. 화려한 액션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지만 사실 결정된 내용을 보여주는 위험이다. 오직 관심을 끄는 유일한 방식이라면 그랬구나 정도의 수긍을 이끄는 매력 정도? 이런 방식을 ‘공각기동대’도 따랐다. ‘공각기동대’는 믿기 힘든 액션과 복잡하리만큼 어려운 과학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래서 그 수준만큼 매우 어려운 애니메이션이다. 과학 잡지를 보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이런 복잡하면서도 고도의 지식을 요구하는 그런 스토리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인간세계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 보는 이들과 접점을 찾아가는 뛰어난 영화다. 국가 혹은 사회의 폭력과 배신 앞에 서있는 인간은 한없이 약할 뿐이다. 그나마 저항하는 세력들도 존재하지만 그들은 가차없이 타도된다. 그러면서도 과연 그런 세력들이 정의감이 없던 것도 아니다. 그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고, 어쩌면 선도 있다. 그들을 타도해야 할 주인공들 역시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선택의 여지는 없다. 마치 냉혹한 사회를 사는 우리 자신들처럼 말이다.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 명령에 따라 복종하는 것이 미덕이 되어 버린 충실한 개일 뿐이다. 이 지점이 나를 공각기동대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우리들 세계처럼 애니메이션의 세계는 무섭고 공포스럽다. 위험한 액션이 아슬아슬하고 즐거우면서도 끝났을 때의 묵직한 한방은 영화의 여운으로 남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과 자신의 주위를 다시 보게 된다. 그런 혹독한 명령체계 속에 위치한 인간의 비애감, 이게 이 영화의 무서운 마력인 것 같다. 이 영화, 앞으로 후속작들이 계속 선보일 것을 대놓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싫지 않다. 또 다시 공각기동대를 볼 수 있다는 의미니까. 언젠가 끝나겠지만 말이다. 계속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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