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친절한 설명이 재미를 반감시킨다.. ★★★
어린 시절, 한나와 클라리사는 매년 여름마다 가족 휴가를 보낸 외딴섬에서 둘만의 우정을 쌓아 나가지만, 어떤 끔찍한 사건 이후로 둘의 관계는 끊어진다. 시간이 흘러 한 아이의 엄마이자 의사가 된 한나는 어느 날,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병원에 실려 온 클라리사와 재회하게 되고, 추억이 깃든 외딴섬의 별장으로 딸과 함께 셋이서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한나를 기억하는 섬 주민들은 한나를 차갑게 대하고, 심지어 섬을 떠나라는 경고를 한다. 한나는 별장에서 클라리사 이전에 자신의 절친이었던 마리아라는 소녀를 떠올리고, 과거의 끔찍했던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간다.
어렸을 때 아주 친하게 지냈던 친구를 성인이 되어 전혀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기억이 묘한 게 별 거 아닌 실마리로 인해 마치 실타래가 풀리듯 어린 시절의 추억이 술술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포가튼-잊혀진 소녀>(이하 <포가튼>)에서 한나가 마리아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이런 일반적인 경우, 즉 시간이 오래 흘러 잊어버린 경우는 아닌 것 같다. 끔찍했던 순간을 자신도 모르게 의도적으로 기억에서 삭제해 냈거나 감당하기 힘든 고통으로 인해 특정 사건과 관련한 정보를 송두리째 잊어버리는 증상, 그러니깐 선택적 기억 내지는 해리성 기억상실에 가까워 보인다.
어린 시절, 자신이 관여되어 있던 끔찍한 진실의 퍼즐을 맞춰나가는 <포가튼>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황홀할 정도로 신비로운 분위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주인공들의 성인이 된 현재보다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이 영화의 신비로운 분위기의 핵심을 이룬다. 다분히 과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확실히 소녀들의 웃음소리와 표정, 안개 낀 섬의 분위기, 특히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던 어두운 동굴 속 등의 이미지는 마치 판타지를 방불케 한다.
신비로운 분위기에 어울리는 이야기도 상당히 흥미로운 편이다. 대체 동굴 속 지하실에선 어떤 사건이 발생했던 것일까? 도대체 어떤 끔찍한 사건이기에 한나는 그와 관련한 기억을 하나도 떠올리지 못하는 것일까? 한나 주위를 맴도는 건 마리아의 혼령인가? 드라마의 진행 도중에 불쑥 튀어나오는 공포장치도 긴장감 고조와 유지에 큰 몫을 한다.
그런데, 영화는 후반부 들어와 이런 장점들을 스스로 깎아먹느라 분주해진다.(?) 무슨 얘기냐면, <포가튼>이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신선하다거나 새로운 이야기인 건 아니다. 게다가 중반만 넘어가면 대충 과거 이야기의 윤곽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영화는 관객이 이미 사건의 진실을 대충 알아챈 이후에도 마치 전혀 모르고 있다는 듯이, 아니 전혀 몰라야 된다는 듯이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당연히 관객 입장에선 늘어진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거기에 덧붙여 관객이 상상할만한 여지를 봉쇄한 채 모든 얘기를 플래시백과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하나하나 친절하게 보여주고 설명해 준다. 이로 인해 <포가튼>의 신비로움과 흥미는 사라지고 짜증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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