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도시라 불리는 인도 최대의 도시 캘커타. 그러나 그 이면에는 4백만 명이 넘는 절대 극빈자가 지독한 가난과 싸우며 살아간다.
영화 <오래된 인력거>는 이러한 캘커타의 극빈자들 중, 인력거를 끄는 인력거꾼 '샬림'과 '마노즈'를 토대로 그들의 땀방울을 생생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샬림'은 대가족의 가장으로서 병든 아내와 가족들을 보살피며, 뜨거운 아스팔트길을 맨발로 달리는 인력거꾼이다. 그는 허리까지 차오르는 빗줄기에도 아랑곳 없이 그저 손님이 많다는 이유에 들떠서 인력거를 끄는 타고난 일꾼이다. 원인불명의 병을 앓고 있는 아내의 병원비와 가족들의 생활비를 벌면서 틈틈이 돈을 모으고 있는 샬림의 꿈은 전동차를 구입해서 보다 안정적인 일을 하며, 하루 빨리 가족과 함께 살 집을 장만하는 것이다. 이러한 꿈을 가슴에 품은 그에게 힘든 일과를 끝내고 그날 수입을 세어보며 돈을 모아두는 것이 크나큰 즐거움이다.
그리고 이런 샬림과 함께 일하는 갓 20살을 넘은 청년 '마노즈' 샬림의 소개로 인력거꾼이 된 그는 내내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타인과 단절된 모습으로 일관한다.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더불어 마음 속 어둠을 끌어안은 채 악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마노즈는 결국 마지막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한 제사를 지내고 고향으로 떠난다. 마노즈를 아들처럼 챙기던 샬림에게 있어서도 가슴 아픈 이별 이었을 것이다.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상반된 이 두 남자의 모습은 참 인상깊다. 스스로의 아픔과 고통을 마주하지 못한 채 떠나는 마노즈의 모습은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치는 듯한 안타까움이 배어 나온다. 반면, 영화가 흐르는 동안 수없이 많은 역경에 부딪힌 샬림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이 둘의 모습은 누구 하나 나을것 없이 위태롭다. 그럼에도 샬림의 현실과 맞서 싸우는 그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힘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것이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마노즈. 그는 그 나름대로 발버둥을 쳐보지만 결국 그 수렁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샬림은 그보다 강했다. 그는 아내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 달리고 또 달리는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십여년을 모아온 돈이 아내의 병원비로 바닥이 나버리자 오열하던 샬림의 눈물. 그것은 꿈에 대한 좌절감과 아내를 향한 미안함과 또 다시 고단한 인내를 계속해야 하는 서러움이 뒤섞여 나온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 주머니를 탈탈 털고 일어난 샬림은 오늘도 여지없이 인력거를 끌고 캘커타를 누빈다.
샬림의 꿈은 비단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엔 자신의 가족이 있었다. 그의 꿈이 곧 가족의 꿈이고, 가족의 꿈이 곧 그의 꿈인 것이다.
샬림의 인생은 아내와 아이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고, 그 원동력으로 노쇄한 나이에도 힘차게 달음박질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아버지의 위대함이다. 그의 인력거의 무게는 거기에 태운 사람의 무게만이 아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의 땀과 눈물의 무게인 것이다. 그 중압감을 어깨에 얹은 채 최선을 다하는 샬림의 땀방울은 너무도 숭고하고 아름다운 희생이다.
영화 <오래된 인력거>는 철저한 관찰자의 입장에서 캘커타의 인력꾼 샬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일말의 개입이 없는 시선은 잔인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샬림의 눈물과 웃음을 적나라하게 담아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다큐멘터리' 아니겠는가 우린 그저 관찰자들일 뿐이다. 이 영화를 보는 나의 시선 또한 그들에겐 잔인한 화살이 아니었을까
끝으로 영화는 최근 인도에서 빈민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인력거를 완전히 없애려 한다는 사실을 알린다. 그렇다면 수많은 인력거꾼들은 어떻게 될까? 걱정부터 앞서는건 사실이지만 샬림이라면, 그라면 인력거가 아니어도 분명 무언가를 해내며 꿈을 향해 달리고 있을 것임을 한치의 의심 없이 믿는다.
부디 샬림이 꿈을 이루어서 행복해지기를... 인도의 인력거꾼들이 거리로 내몰리지 않기를... 마노즈가 아픔을 이겨내고 웃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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