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고양이도 산다.. ★★★☆
몇 년 전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라는 책을 한 권 사서 읽게 되었다. 이유는 단지 제목이 맘에 들어서. 그 책 속엔 거리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의 귀엽고, 천진난만하고, 안타깝고, 비참한 현실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겐 도둑고양이로 불리는 게 더 익숙한 길고양이는 그렇게 책과 함께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게 되었다.
영화보단 내 얘기를 먼저 늘어놓자면, 어릴 때, 집에서 꽤 많은 동물들과 함께 자랐더랬다. 개, 고양이, 새, 물고기, 거북이, 토끼와 서울에선 키우기 힘든 닭까지. 생각해보면 고양이는 개처럼 다양한 이름을 부여받지도 못하는 존재였다. 어떤 집이건 고양이는 모두 나비로 불렸으며, 심지어 집에 고양이 두 마리가 있을 때조차도 모두 나비였다. 꼬물꼬물거리던 새끼 고양이를 데려다 그 녀석이 결국 나이가 들어 자연사할 때까지 키웠으니 꽤나 오래 키운 셈이다. 아마 요새처럼 사료를 먹이고 동물병원에 드나들었다면 더 오래 살았을 테지만, 그런 문화도 없었거니와 고양이를 키웠던 이유는 오로지 쥐를 잡기 위한 목적에 불과했었다.
아무튼, 나로선 그 고양이에 대해 일종의 트라우마가 좀 있다. 트라우마라기보다는 미안하고 애틋한 감정이랄까. 그건 떠나는 마지막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인가 몸이 쭉 펴지고 뻣뻣해지더니 조용히 가버린 나비. 어린 마음에 겁이 나면서도 동시에 나비를 위해 뭔가를 해야 된다고 생각은 했지만, 쉽게 몸이 움직여지지는 않았다. 그 사이, 어른들이 나타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비닐봉지에 나비를 넣어서는 거리의 쓰레기통에 던졌고, 얼마 뒤 쓰레기차가 나타나 나비가 들어 있을 비닐봉지와 함께 쓰레기를 수거해 갔다. 뒤늦게야 저래선 안 되는 거 아닌가 생각은 들었지만, 이미 늦었고,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나비를 떠올리면 마음 깊은 곳에서 미안함과 슬픔이 저려 옴을 느낀다. 아마 내가 끝내 껴안고 가야할 감정이리라.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고양이에 대해선 어느 정도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알고 보면 대부분 오해이거나 인간들의 잘못에 의한 것임에도 원인은 도둑고양이들에게 돌려졌고, 그들은 인간들의 편한 삶을 위해 사라져줘야 할 생명이 아닌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는 길고양이에 대한 여러 편견을 깨주었다. 길에는 인간만이 아니라 여러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그리고 그 중에 고양이도 있음을, 그리고 언제나 동물들은 자기들의 속도로 움직이고 살아가고 있음을, 오로지 속력을 높여 사고를 내는 건 인간들임을.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를 일종의 원작으로 한 영화 <고양이 춤>을 보면서 오웬 윌슨과 제니퍼 애니스톤이 출연했던 영화 <말리와 나>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오웬 윌슨이 키워서 잡아먹을 목적에 아마도 병아리(오리인가? 아님 거위인가?)를 사기 위해 가게에 들렀다. 주인은 왜 병아리를 사냐고 물었고, 오웬은 나중에 잡아먹으려 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주인은 나중에 먹으려면 절대로 이 병아리들에게 이름을 붙이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잠깐 외출을 하고 온 사이 아이들이 병아리에게 이름을 붙이고 부르는 모습에 절망하던 오웬.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의 저자 이용한 씨와 이 책을 보고는 영화화를 결심한 윤기형 감독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길고양이와의 인연을 이어가게 되는 가장 결정적 계기가 바로 그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마치 김춘수 시인의 꽃과 같은 의미라고나 할까. 자기가 만든 이름을 부름으로서 그 고양이는 그냥 거리를 떠도는 길고양이가 아니라 둘 사이에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그럼으로써 비로소 나만의 고양이가 되는 것이다.
영화 <고양이 춤>은 이용한 씨의 사진과 나레이션, 그리고 윤기형 감독이 직접 촬영한 영상과 나레이션이 번갈아 이어지는 가운데, 길 위에서 사는 고양이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펼쳐 보여준다.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기쁨, 즐거움, 안타까움, 슬픔 등의 여러 감정을 불러오며, 인간 세계가 다양하듯 고양이들의 세계 또한 다양함을, 그리고 너무 진부한 표현이지만, 이들도 존중받아야 할 생명임을 자연스레 일깨워준다.
가끔은 강요하지 않고도 그저 보여주는 것만으로 깊이 공감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바로 <고양이 춤>이 보여주는 길고양이들의 모습들이 그러하다. 만약 화면에 담겨진 새끼 고양이의 장난에 미소가 떠오르고, 바람이의 마지막에 슬픔이 느껴졌다면, 당신 역시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공감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 약 80% 정도 들어찬 객석은 마치 고양이 동호회에서 단체 관람을 온 듯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거의 동시적으로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 한숨소리들. 느껴지는 그 공감의 분위기.
※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의 저자 이용한 씨에 의하면 ‘고양이가 사람을 보고 도망가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고.
※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 - 마하트마 간디 -
※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왠지 자꾸 동네 골목길과 낮은 담장에 눈길이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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