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하면서도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운... ★★★★
록음악 등 새로운 것에 밀려 점점 설 자리가 사라져가는 나이 든 마술사 ‘타티셰프’는 포스터 한 장과 토끼 한 마리, 그리고 간단한 마술도구 등을 들고는 정처 없이 이곳 저것을 떠돈다. 파리에서 영국으로 건너 온 마술사는 공연을 위해 스코틀랜드의 한 시골마을에 갔다가 자신의 마술을 진짜 마법이라고 믿는 앨리스라는 소녀를 만나게 되고, 앨리스는 도시로 떠나는 마술사를 따라 나서게 된다.
솔직히 말한다면 이 애니메이션의 원작자인 자크 타티를 알지도, 들어본 적도 없다. 영화를 보고 나서 찾아보았더니, 자크 타티는 프랑스의 찰리 채플린이라고 불릴 정도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코미디 배우이자 감독이며, <일루셔니스트>의 마술사가 바로 자크 타티가 연기했던 대표적 캐릭터인 ‘윌로씨’를 그대로 이미지화 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깐 만약 자크 타티와 윌로씨를 좋아하거나 최소한 아는 사람이 이 애니메이션을 봤다면, 모르고 본 사람에 비해 훨씬 더 큰 감동을 받았을 거라는 얘기다. 물론 모르고 본 사람이라도 이 영화가 주는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정서에 깊은 감동을 받을 것이라 확신한다. 내가 그랬으니깐.
<일루셔니스트>는 우선 정감어른 그림체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화려한 CG 애니메이션, 실사와 동일하게 표현하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이 촌스럽기 그지없는 화풍과 부자연스러운 인물들의 움직임이라니. 그러나 마치 정물화를 보는 듯한 정지된 화면과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도, 아니 오히려 그런 화면으로 인해 이 애니메이션은 더욱 깊고 쓸쓸한 감정을 남긴다.
사실 <일루셔니스트>의 이야기는 간단하다. 거기에 대사도 거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아예 대사를 모두 빼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아니면 자막을 없애든지) 그건 이 영화가 대사로 인해 이해되거나 진행되는 애니메이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루셔니스트>가 전달하는 감정은 거의 전적으로 하나 하나의 이미지에 의해 만들어지고 전달된다. 비가 내리는 스코틀랜드 시골마을의 풍경, 밀려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복화술 인형이 버려진 듯 놓인 그 진열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지만 이제는 갈 곳 없는 분장이 벗겨진 삐에로의 비참한 몰골, 간판을 칠하는 데 이용되는 곡예기술, 젊은 남자와 데이트를 즐기는 앨리스를 보고는 놀라 도망치듯 숨는 마술사의 표정, 그리고 끝내 토끼를 들판에 내려주고는 돌아서는 마술사의 그 쓸쓸한 뒷모습까지도.
이런 이미지들이 주는 감정은 변화하는 시대의 뒤안길로 내 몰리는 것들에 대한 쓸쓸함이다. 잊혀 진다는 것, 밀려 난다는 것의 아픔과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향수가 이 영화엔 짙게 배어있으며, 그것들과의 이별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절절하면서도 가슴이 아리도록 말해준다.
※ 비록 자크 타티와 윌로씨는 알지 못했지만, 마술사가 앨리스를 피해 들어간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가 바로 마술사의 캐릭터임은 한 눈에 알아봤다. 바로 자크 타티의 <나의 아저씨>라는 영화라고 한다. 만화 캐릭터가 자신인 실사 캐릭터를 바라보는 그 장면은 그 의미를 완전히 몰랐다고 해도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 왜 이 애니메이션을 한 여름에 개봉했는지 의아하다. 늦가을에 개봉했다면 더욱 제격이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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