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편일률적인 청소년 영화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괜히 고등학교 학생들의 이야기엔 낭만과 순수, 그리고 아름다운 세상 등이 연상됐다. 편견이라면 편견이겠지만 청소년 영화엔 그렇게 제작되는 것이 좋아 보였다. 아마도 청소년이라면 어른들의 그늘진 마음이 결코 투영되어서도 안 되고, 그런 것을 알기엔 어린 것 아닐까 하는 정도의 생각이 들어서일 것이다. 아니면 그들이 결코 인생에 있어 쓴 맛을 나중에 확인해야지 지금은 아니란 생각도 하고 있었을 것 같고, 아니면 어른이라서 좀 창피하단 생각이 들 것도 같고, 아니면 그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불행한 인간사를 모를 것이란 생각도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정글피쉬2’는 나의 편견을 여지없이 파괴해 버렸다. 솔직히 형편없었다. 고등학교 학생들의 서사에 맞춰 연기자들은 고등학교 학생이거나 조금 높은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래서인지 연기력은 아직 미숙했고, 흡인력은 떨어졌다. 우울한 얼굴들은 있었지만 좀 어설펐다는 것이 솔직한 평이다. 그리고 영상이나 구성 역시 아쉬움이 짙게 느껴졌다. 극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했고, 갑작스런 전환에 당혹스러웠고, 여러 가지 면에서 어설펐다. 아마도 연기자만큼 감독이나 제작진 역시 신인이었던 것 같다. 영화 상에서 말이다.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깊이 몰입하게 됐다. 그것은 영화 속에 보이는 고등학교의 현실 때문이었다. 과한 표현이나 과한 사건, 그리고 과한 따돌림 등이 있었겠지만 본질적으로 언론에서 이미 듣거나 봤던 내용과 유사했다. 정글피쉬란 어휘 자체를, 영화를 보고 인터넷 사전으로 찾을 만큼, 영화는 어른인 나에게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영화 속에서 봤던 사회가 바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 일치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철저하게 경쟁으로만 내몰린 한국사회는 인간미를 상실했다. 아니 어쩌면 한국사회는 일제시대는 물론 조선시대부터 언제나 불법적인 거래가 판쳤는지 모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신자유주의란 거대한 파괴적 회오리 앞에서 한국 사회는 승자독식사회로 길들여졌고, 이기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걸쳐 퍼졌다. 그래서 거친 경쟁 앞에서 편법과 불법이 동원되는 것이 일상화됐고, 그런 내용은 연일 언론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그것도 넘치게 말이다. 도덕성이나 인간미란 단어가 과연 한국사회에 존재하긴 한 것인지 의심될 정도로 엉망인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런 한국사회에 포함되어 있는 학교라도 열외가 될 리 없다. 정글피쉬란 의미가 이리저리 휘둘리는 물고기를 비유한 것이라면 아주 적절한 표현이었다. 세상에 사는 것이 세상에 사는 것이 만족스러워서 사는 것이 아님을 정글피쉬란 단어로 기막히게 표현한 것이다. 불법과 편법이 넘쳤다. 특히 학생들의 윤리적 교육을 담당해야 할 고등학교가 과연 세상에 존재하기는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탐욕의 그물망에서 허우적거렸다.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선 무슨 짓이라도 하는 사회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영화 속의 고등학교는 학생들조차 탐욕으로 물들게 했다. 자연스레 자신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은 학생들을 ‘왕따’시키고, 그런 학생들을 삭제시키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부정입학 학생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밝히려는 학생을 죽음으로 모는 장면은 결코 과하게 보이지 않아 보였다. 정말 지금 어느 고등학교에서 벌어질 것만 같은 슬픈 사연이었다. 친구란 것이 허황된 인간관계 같아 보였다. 경쟁과 비리 앞에 친구는 부차적인 존재였다. 영화는 의문의 죽음을 찾는 이들의 힘든 노력이 보였다. 하지만 고교생의 정직함을 외면하고 자살로까지 이끈 이 역시 바로 친구였던 학생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만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부정입학으로 장사를 한 학교가 부적격자로 낙인 찍힌 학생들을 어떻게 소외시키고 배제시키는지 영화는 현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었다. 학교의 목적이 학생의 소외시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좋은 입시학교란 이미지를 얻기 위한 나름의 비책임이 분명하다. 그래야 돈을 버니까. 영화가 보여주는 세상은 가혹하기 그지없다. 현실의 학생들의 고충과 고민, 그리고 그들의 우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는 과한 몸짓 같지만 다소 과했을 뿐, 그다지 비현실 같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고등학교 학생들이 이 사회를 고칠 수 있으리라 다짐하는 장면에서 어른으로서 착잡함과 함께 오늘을 사는 비애감도 느꼈다. 학교를 벗어난다고 그런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더 거칠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가 곧 부정직한 사회의 본질을 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슬프다. 속편이 더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