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 보일의 화려함은 고통을 타자화, 대상화시킨다.... ★★★☆
의외로 인물의 전사를 거의 보여주지 않고 영화는 곧바로 주인공인 아론(제임스 프랭코)이 사고를 당한 블루 존 캐니언으로 이동한다. 자전거를 타다 굴러도, 바위에 부딪쳐도 마냥 즐거운 야생을 사랑하는 사나이 아론. 예고편에 무수히 등장했던 여인 두 명의 안내를 마친 아론은 자신을 127시간 동안 가둬둘 작은 바위와 마주 대하게 된다. 암벽에 끼어 움직일 수 없는 상태, 거기에 보통 사람들은 다니지 않는 코스.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물 한 통, 캠코더, 낡은 로프, 랜턴, 싸구려 중국제 나이프. 가족들에게조차 행선지를 알리지 않은 까닭에 누군가 자신을 구조하러 올 가능성은 0%.
<127시간>은 첫 화면부터 대니 보일의 영화를 자랑이라도 하는 듯이 화려한 3분할 화면으로 눈을 호사시킨다. 그렇다. 대니 보일 영화의 가장 큰 매력 중의 하나는 무엇보다 화려한 카메라 워크와 색감, 거기에 절묘한 음악의 사용에 있다. 물론 형식적인 측면에서만 대니 보일의 인장이 영화에 박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리고 아마도 대니 보일이 다루고자 하는 영화는 사면이 막힌 사면초가, 고립무원의 상황으로 인물을 몰아넣고, 그런 상황을 극복하는 인물(들)의 고군분투기를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좀비에게 쫓기기도 하고(<28일후>) 태양을 향해 날아가기도 하며(<선샤인>), 퀴즈쇼 우승이라는 불가능한 도전에 성공(<슬럼독 밀리어네어>)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내몰리기도 한다.
이렇듯 인물이 당하고 있는 전대미문의 고통을 화려한 형식으로 치장하는 데 있어서 데니 보일 감독만큼 성과를 올리고 있는 감독은 찾아보기 힘들며, 아마도 거의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일종의 블루 오션, 미개척 분야의 독보적 존재라고나 할까.
<127시간>의 아론은 자연이 남긴 거대한 블루 존 캐니언의 좁은 틈 속에서 홀로 갇힌 신세가 된다. 아무리 ‘Help Me’를 외쳐도 들리지 않는 철저한 고립무원의 상황. 누워 쉴 수도 없고, 식수는 부족해 자신의 소변을 먹어야 하는 상황. 이러한 끔찍한 상황을 데니 보일은 쉴 새 없이 이리 저리 넘나들며 관객에게 전달한다. 현란한 화면 구성과 화려함, 적절한 음악의 사용과 리드미컬한 편집은 분명 1시간 30분 동안 관객에게 충분한 재미를 선사하기는 한다. 반면 그런 현란함과 화려함은 화면 속 인물의 고통을 철저하게 타자화, 대상화시킨다는 특징이 있다. 이건 단점이 아니라 데니 보일 영화의 특징인데, 나는 다만 그러한 특징이 불편할 뿐이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현실 인도의 지독한 가난과 불평등은 부감숏으로 화려하게 채색된 화면에서 그저 희한하고 이국적인 볼거리로 전락해 버렸고, <127시간>을 통해서는 아론의 고통 역시 그러하다. <28일후>가 조금 다른 느낌이었던 것은 좀비는 현실의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얼마 전 개봉했던 <베리드>라는 영화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 좁은 관 속에 갇힌 인물 한 명을 두고, 카메라가 결코 밖으로 벗어나지 않은 채 플래시백 같은 꼼수(?)를 부리지 않고도 충분한 긴장과 재미를 주었다는 점이었다. <127시간>은 <베리드>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었음에도 진득하게 카메라를 블루 존 캐니어에 갇힌 아론을 향해 놓아두지 않고 끊임없이 과거로 갔다가 환상의 영역으로 빠졌다가 현실로 돌아오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현란함 속에 남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자신의 팔을 자르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결말 뿐.
※ 어쨌거나 어디를 갈 때는 가족들에게 행선지를 알리고, 엄마의 전화는 꼭 받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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