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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인간이 되고 싶다... 쿠바의 연인
ldk209 2011-01-21 오후 1:49:08 584   [0]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인간이 되고 싶다... ★★★☆

 

흥행에 성공한 TV드라마 제목을 베낀 것 같은 영화 <쿠바의 연인>의 시작은 왠지 거창(?)하다. 사랑이야기라고 들었는데, 오래 전 먹고 살기 위해 이곳에 넘어온 한인들의 애환을 담은 영화인가? 오해는 금방 풀린다. 정호현 감독에게 한인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큰 관심거리가 아니며, 단지 쿠바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했을 뿐이다. 아마도 오리엘비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 정호현 감독은 단지 기록을 위해 카메라를 들었을 것이다.

 

쿠바하면 뭐가 떠오를까. 피델 카스트로, 체게바라, 쿠바혁명, 사회주의, 야구, 음악, 춤, 하바나 해변 정도? 정호현 감독이 쿠바를 마음에 두었던 것은 아마도 쿠바식 사회주의라든가 아무튼 정치적 의미에서의 관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월을 거슬러 대학 초년병 시절의 나. 입학 후 처음으로 가진 면접에서 누구를 가장 존경하냐는 교수의 질문에 “카스트로”라고 했더니 교수가 놀라 반문했다. “왜?” “혁명으로 권력을 잡았는데 계급을 올리지 않아서요” 잘 알지도 못하고 했던 대답이었다. 아무튼 체게바라에 대해 알게 되고, 술만 마시면 ‘남미로 가서 총을 들자’는 등 밤새 혁명가의 삶을 살다가 아침에 술이 깨면 일상으로 돌아오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내 마음 속에도 쿠바는 언젠가 한 번은 가봐야 하는 곳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아니 내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정호현 감독의 카메라에 담긴 쿠바의 모습은 사회주의 이상향으로서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쿠바의 인민들도 쿠바에 대한 불만을 공공연하게 털어 놓는다. 밖에서 그저 뜬구름 잡듯이 봐왔던, 그려왔던 사회와 실제 그 사회는 별개였던 것이다. 현실 쿠바를 “모두가 평등하게 가난하다”는 그들의 시니컬한 반응이 놀랍다. 그럼에도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애정은 높아 보이는데, 카스트로 사후 쿠바의 정세가 그리 만만찮을 것임을 내비치는 것 같다. 우습게도 쿠바 사람들의 쿠바에 대한 불만과는 반대로 한국의 택시기사는 오리엘비스에게 쿠바에 대한 칭송을 늘어놓는다. 이건 마치 남대문을 안 본 사람이 본 사람을 이긴다는 얘기처럼.

 

오리엘비스의 한국 사회에 대한 진단도 날카롭게 파고든다. 그가 우선 지적하는 건 한국 사회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과도한 소비가 이를 증명한다. 기존의 것을 버리고 계속 새 것을 사는 사회와 문화를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생각나는 건 한국의 재개발, 재건축 제도다. 전 세계에서 한국의 재개발 문화만큼 천박한 자본주의 문화가 또 있을까? 기존의 모든 것을 깡그리 부수고 가난한 자를 내쫓고 세워지는 초고층 아파트. 그리고 그러한 재개발을 부추기는 교회.

 

오리엘비스가 제일 강조하는 건 획일화, 규정화에 대한 거부다. 내가 얘기하는 것만이 옳고 나머지는 틀리다는 주장. 그러나 그건 틀린 게 아니라 단지 다를 뿐이다. 아마도 정호현 감독의 집안은 강한 기독교 질서에 속해 있는 듯 보인다. 모든 걸 기독교적 관점으로 재단하려는 질식할 듯한 집안 분위기. 그럼에도 그럭저럭 지내는 감독이 내 입장에선 참 대단하다 생각된다. 영화에선 한국 기독교의 배타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전철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오리엘비스의 레게머리를 보고는 ‘저게 바로 종말의 상징이다’며 한 말씀 늘어놓으신다. 이렇듯 한국 개신교가 가지고 있는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음과 강요는 정말이지 놀랍도록 노골적이다.

 

연장선상에서 쿠바의 한 시민은 ‘혁명도 혁명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쿠바 현실의 문제는 결국 쿠바 혁명이 도그마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인가. 어쩌면 정 감독과 오리엘비스가 나이와 국적을 뛰어 넘어 서로를 사랑하게 된 것은 둘 모두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또는 그런 자유로운 인간이 되고 싶었기 때문 아닐까 싶다.

 

전반적으로 <쿠바의 연인>은 개인의 연애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만큼 대단히 유쾌하고 싱그럽다. 이는 어쩌면 쿠바하면 떠오르는 흥겨운 리듬의 영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쿠바의 연인>이 평가되어야 할 지점은 아무런 내레이션 없이 개인의 연애사와 두 사회에 대한 물음을 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임에도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 그렇게나 노래와 춤을 좋아하고 낙천적인 쿠바 사람들이 혁명을 성공시켰다는 것, 반대로 성격 급하고 불만 많은 한국 사람들이 제대로 된 혁명 한 번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 영화를 보며 느낀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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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연인(2009, Cuban boyfriend / Novio cubano)
배급사 : (주)시네마 달
공식홈페이지 : http://blog.naver.com/cuban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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