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표현수위를 낮춰도 끔찍한 현실.... ★★★☆
요 몇 년 사이에 읽은 책 중 가장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책이 양석일 저 <어둠의 아이들>이다. 특히 백인이나 일본의 아동성애자가 태국의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벌이는 매춘행위를 담은 부분은 몇 번이나 책 읽기를 중도에 포기할 만큼 혐오스럽고 분노가 치밀어 오를 정도로 두려운 경험이었다. 소설이나 영화, 모두 동일하게 아동성애자를 상대로 하는 매춘에서 시작해 살아 있는 아이에게서 장기를 적출하는 불법 장기 매매로 시선을 옮기며 독자,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의 지옥도를 헤매게 한다.
태국 주재 신문기자인 난부(에구치 요스케)는 일본 아이가 조만간 태국에서 불법 장기이식수술을 받는다는 정보를 접하게 된다. 충격적인 것은 심장 제공자가 살아 있는 아이라는 사실이다. 한편 방콕 사회복지센터에 자원봉사자로 찾아온 케이코(미야자키 아오이) 역시 타이 아이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 앞에서 고민한다. 난부는 프리랜서 사진작가 요다(쓰마부키 사토시)를 끌어들여 끔찍한 장기매매의 현장을 포착하려 한다.
소설에서 케이코와 난부는 대학 선후배 관계이며, 이성으로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관계로 표현되어 있으며, 영화에서 쓰마부키 사토시가 맡은 프리랜서 사진작가라는 캐릭터는 사실상 원작엔 없는 캐릭터를 창조했다고 봐도 무방하다.(소설에선 베테랑 르포 사진작가가 등장한다) 이 정도의 변주를 제외한다면 소설이나 영화나 크게 달라진 점은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의 손에 쥔 몇 푼의 대가로 어린 소녀는 매춘 아동으로 팔려가고, 팔려간 아이들은 온갖 폭력과 매춘에 시달리며, 에이즈에 걸려 더 이상 상품가치를 상실한 아이들은 산채로 검은 비닐봉지에 담겨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다. 쓰레기 더미를 헤쳐 나와 운 좋게 고향에 돌아가더라도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버림받은 채 죽는 것이 어린 소녀를 기다리는 운명이다. 그나마 병에 걸리지 않은 아이들도 언제 부자 나라의 아픈 아이의 치료를 위해 장기를 떼인 채 죽어야 할지 모르는 운명에 처한다.
영화는 이 과정을 가급적 감정을 배제한 채 잔인할 정도로 담담히 보여준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과연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지 무척이나 고민했다’ 활자보다는 영상이 더 적나라하고 잔인한 것이 일반적이라는 상식에서 도저히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원작 소설 읽기를 중도에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몸서리를 쳤는데, 그걸 영상으로 과연 볼 수 있을까. 그러나 여전히 영화가 그리고 있는 현실은 끔찍하고 암담함에도 불구하고 소설에 비한다면 거의 평이할 정도로 표현 수위를 낮췄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 누구라도 소설 속 지옥 같은 현실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길 수 없을 것이며, 그 누구라도 그 영상을 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영화를 보면서 내내 머릿속엔 온갖 의문들이 떠올랐다.
국가가 가난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개인이 가난하기 때문일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태국의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일정 정도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리고 과연 이런 끔찍한 일들이 태국만의 문제일까? 아니면 제3세계 아이들의 공통된 문제일까? 그저 조금 잘 사는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건강과 쾌락의 특혜를 누리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일까? 어쩌면 우리가 누리는 나름의 안온한 생활이 수많은 빈곤국가 민중의 노동의 대가는 아닐까? 과연 내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개인의 열정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 미야자키 아오이, 츠마부키 사토시와 같은 일본의 청춘 배우들이 출연했음에도 워낙 끔찍한 이야기라 그런지 딱히 영화에서 배우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영화에 인기가 높은 젊은 배우가 출연했다는 것 자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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