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대단원의 서막을 열다... ★★★
드디어 마지막이다. 아니 마지막의 서막이다. 시리즈의 일편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2001년 개봉했으니,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가 내년에 개봉하면 정확히 10년 만에 이 시리즈는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물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아무 것도 모른 채 머글(평범한 인간)들 사이에서 온갖 업신여김을 받으며 자랐던 해리포터(다니엘 래드클리프)는 11살 생일날 자신이 사실은 마법사 세계에서는 매우 유명한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마법학교인 호그와트에 입학하여 론 위즐리(루퍼트 그린트), 헤르미온느(엠마 왓슨)와 함께 우정을 나누게 된다. 지금까지의 시리즈는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사실은 동일한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 있다. 새학기가 시작된 호그와트에서의 생활과 세상을 정복하고 영원한 삶을 꿈꾸는 볼드모트(랄프 파인즈)의 음모, 그리고 그 음모를 저지하려는 아이들과 불사조 기사단의 활약.
그런데, 이 시리즈의 묘한 점 하나는 매번 해리 포터가 볼드모트의 음모를 저지함에도 불구하고 볼드모트의 힘은 점점 강해져왔으며, 결국 잃었던 힘을 되찾게 된다는 것이다. 볼드모트 입장에서 보면 작은 전투에서는 졌지만, 큰 흐름(6부까지는)에서는 이기는 전쟁을 했다고나 할까. 7부의 서막인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1>에서 마법부와 호그와트 등 마법 세계는 사실상 볼드모트에 의해 장악되고, 해리포터, 론, 헤르미온느는 죽음을 먹는 자들에 의해 쫓기는 신세가 된다. 마지막 7부의 가장 특이한 점은 6부까지의 동일한 흐름을 깼다는 점이다. 항상 호그와트 들어가 새로운 학기를 보냈던 아이들은 이제 호그와트를 중퇴하고 볼드모트가 영혼을 나누어 담은 호크룩스를 찾아 없애기 위한 기나긴 여정에 들어간다. 일종의 로드무비로 보이기도 하며, 따라서 이번 영화엔 퀴디치의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다.
우선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1>의 가장 큰 특징은 어둡다는 점이다. 물론 아이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상쇄되긴 했지만, 사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전반적으로 어둡다. 매 시리즈마다 누군가의 죽음이 나오고, 배신과 갈등, 모략, 고문 등 온갖 어두운 것들이 원작과 영화를 장식한다. 사실 나는 이번 영화를 보고 나와서 이 영화가 전체 관람가라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어쩌면 아이들이 주인공인 판타지 영화라는 점에서 너무 후하게 관람 등급을 책정한 것은 아닌지 싶다. (고등학생이 충분히 볼 수 있는, 아니 봐야하는 영화도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청소년관람불가를 때리는 걸 보면, 영등위의 등급 기준은 오락가락이다) 그러나 어둡다는 것이 무겁게만 다가오는 건 아니다. 영화 내내 소금처럼 뿌려지는 은근한 유머는 영화의 어두움과 조화를 잘 이룬다.
다름으로 아이들의 갈등구조, 고민에 대한 흥미로운 관찰이다. 슬리데린의 로켓을 목에 건 아이들은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반지에 의해 조정되는 사람들처럼 감정이 격해지고, 자신의 콤플렉스를 증폭해 갈등하고 번민한다. 그러다 끝내 론은 잠시나마 해리와 헤리미온느의 곁을 떠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의 본질은 현실에서 이 나이 대의 아이들이 겪을 만한 고민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인다. 아이들은 ‘호크룩스를 찾아서 파괴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호크룩스가 뭔지도 모르며,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길을 알려주었던 덤블도어 교수도 없이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현실의 이 나이 대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뭔가를 이뤄야 하고 뭔가를 해야 하는 데, 그게 뭔지 잘 잡히지 않는다. 게다가 이제는 부모의 보호막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서야 한다. 미지의 공간에 발을 내딛어야 하는 아이들은 영화를 보면서 매우 공감이 가는 지점이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음악과 영상의 힘이다. 지금까지 시리즈 중에서 아마도 음악은 가장 인상적이지 않나 싶다.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완시켰다 하는 음악의 리듬감이 전반적으로 영화에의 몰입도를 증가시켰다고 본다. 공중에서 광활한 벌판이나 숲을 내리 달리는 영상의 매끄러움은 <반지의 제왕>이나 기타 판타지 영화를 연상시키는 지점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웅장하다. 특히 삼형제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은 그 부분만 따로 떼어내어 보관하고 싶을 정도로 기묘하면서도 아름답다.
마지막으로 이번 영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기존 시리즈와 달리 원작의 과도한 압축과 삭제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게 담겨있지는 않지만, 이전 시리즈와 비교해보면 거의 원작 그대로를 담고 있다고 보인다. <해리포터와 불의 잔>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등에 대한 원작 팬덤의 가장 큰 불만은 원작에 대한 과도한 압축과 삭제였다. 일단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이 가급적 원작을 해치지 않게 된 것은 이부로 나눠 개봉할 만큼 늘어난 러닝 타임 때문일 것이고, 둘째는 원작자인 조앤이 아예 프로듀서로 나섰다는 점에 기인할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한 반응은 원작에 대한 애정도에 따라 호불호로 나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니깐 원작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이라면 자칫 지루하거나 답답해할 지점이 있을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이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1>의 내용을 온전히 100% 이해하기엔 좀 무리가 있을 수 있으며, 전작인 <해리포터와 혼혈왕자>를 관람한지 오래된 경우에도 헷갈릴 수 있다는 것이다. 원작을 읽지 않고 영화로만 <해리포터 시리즈>를 접한 사람이라면 도비가 해리 포터나 헤르미온느와 맺어온 관계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린덴왈드가 누구인지, 도대체 삼형제 이야기는 뭐란 말인가. 문제는 대게의 다른 영화들이 이런 궁금증을 그 자리에서 최소 한 두 시간 안에 해소할 수 있었다면, 이 영화의 궁금증은 내년에 개봉할 2부에서나 해결 가능하다는 것이며, 이 영화의 진정한 재미도 내년에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1>의 가장 큰 메시지는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를 꼭 보라는 얘기다.
※ 호크룩스는 고대 마법 중의 하나로 자신의 영혼을 사물이나 동물에 나눠 담는 것을 의미하는 데, 이를 위해서는 살인을 저질러야 한다. 볼드모트는 영원한 삶을 누리기 위해 7개로 영혼을 쪼개 나눠놓았다. 이 중 2개는 이미 파괴되었다.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해리가 파괴한 리들의 일기장, <해리포터와 혼혈의 왕자>에서 덤블도어 교수가 파괴한 곤트의 반지가 그것이다. 슬리데린의 로켓은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1>에서 파괴되었으며, 후플푸프의 잔, 래번클로의 왕관, 뱀의 왕 래기니, 그리고 시리즈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질 무엇인가가 남아 있다. 그러니깐 네 개의 호크룩스가 남아야 되는데 이번 영화에서 론은 로켓을 파괴한 다음에 ‘앞으로 세 개가 남았다’는 말을 한다. 내가 딱히 착각한 게 아니라면 아마도 나머지 호크룩스 중 하나의 에피소드는 삭제되거나 다른 식으로 처리되는 건 아닐까 싶다.
※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점령당한 마법부의 분위기는 마치 영화 <브라질>이나 <핑크 플로이드 더 월>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아마도 독일 나치의 이미지일 것이다.
※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일관된 특징 중 하나는 굳이 원작을 뛰어 넘으려는 욕심도, 시도도 없다는 사실이다.
※ 배우들의 성장을 빼놓고 이 시리즈를 얘기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 어렸던 아이들이 어느 덧 수염이 덥수룩해진 청년으로 성장했다니 지나간 세월이 느껴지는 듯하다. 특히 엠마 왓슨은 매년 봐왔음에도 불구하고 놀랄 정도로 아름답게 성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