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페이크다큐(Fake Documentary)가 가진 장점에 한계로 생각되던 단점까지 보완한 진일보한 작품
"색다른 시도"
<인간극장>과 같은 다큐를 보다보면 드라마에서 느낄 수 없는 감동을 접하게 된다. 등장 인물은 나와 다를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처한 삶이나 역경을 이겨나가는 모습을 보다보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삶에 대한 의욕을 찾곤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런 프로그램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될까? 여러가지 이유 중에서 '꾸밈없는 사실'이란 점이 큰 이유가 될 것이다. 감정을 유도하기 위한 연출된 설정이 없는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는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전해지는 모습은 내가 사는 현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공감대는 큰 몫을 차지한다.
그러나 영화는 연출이 생명인 장르다. 재미와 감동을 주기위해 모든 것을 꾸미고 다듬어 보는 이의 마음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한다. 그런 점에서 다큐멘터리와 영화는 같은 카메라를 가지고 담아내는 모습은 같을 지 몰라도 어떻게 담느냐의 차이로 서로 정반대의 입장에 선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의 기법을 영화에 옮긴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런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다. 영화와 다큐가 합쳐진 초기 작품은 위인의 삶을 담아내는 전기적인 작품이나 역사를 다룬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내용과 형식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작품의 수로 알 수 있다. 특히 '공포'를 주기위한 작품활동이 활기를 치면서 케이블TV에서 '귀신'이나 '혼령'을 소재로 한 작품들처럼 영화에서도 유사한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초기작 <블레어윗치>"
어떤 작품이 시초인지는 잘 모르지만 내가 처음으로 본 기억되는 작품은 <블레어위치>로, 2백여년간 전해 내려오는 미스테리한 실종과 관련된 블레어윗치 전설을 카메라에 담아내기 위해 3명의 영화학도가 걸어간 발자취를 담은 작품이다. 행방불명이 된 그들은 어디에 갔고 무엇을 만났고 그들이 왜 사라져버린 것인지의 단서가 될 영상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전개된 이 작품은 영화가 개봉할 1999년 당시, 홍보를 위해 영화와 관련된 내용을 알리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들였다. <블레어윗치>는 허구의 사건을 마치 실제 벌어진 사실처럼 착각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성공한다. 초저예산으로 만든 작품이 전세계 극장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무려 340배에 이르렀으니까.
하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의 평가는 어떨까? 다큐멘터리 형식이라는 색다른 시도는 마치 사실처럼 받아들이게 하여 연출된 공포가 아닌 진짜 공포를 주려는 의도가 엿보이긴 했지만 진짜 공포는 느끼게 하진 못했다는 점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게 이들의 행적을 고스란히 담아간다. 때문에 약간 지루한 면이 있긴 하지만 전설과 관련된 단서들이나 현상을 담아가면서 조금씩 공포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다가 결정적으로 뭔가 벌어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 불이 켜진다. 끝난 것이다. 끝이 아닐것 같은 아쉬움은 허망하고 생뚱맞아 적잖이 실망을 안긴 작품이었다. 그런 뒤 이런 형식의 작품이 갖는 한계로 인해 제작되는 작품은 거의 없어 세인들의 뇌리에서 조금씩 잊혀가는 장르가 되어가다가 2007년 전세계가 주목한 작품이 등장한다.
"초대박 <파라노말 액티비티>"
그 작품은 바로 <파라노말 액티비티>다. 세계적인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작품을 보고 매호되어 판권을 사들여 마지막 10분여를 재촬영했다는 소식과 함께 이 작품은 당시 입소문을 통해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다. 전미 박스오피스 1위와 7,140배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하며 역대 영화 수익률 1위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운 것이다. 이 작품의 성공 비결은 연출이 전혀 없는 것같은 형식을 빌어 초자연적 현상이 주는 공포를 잘 전달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빅히트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이 훌륭했고 결말이 <블레어윗치>같이 끝나지 않는다는 점은 호기심으로 인한 반짝 성공이 아닌 입소문으로 이어지는 성공을 이루게 한 것이다.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분명 성공한 작품이고 무서운 공포를 안겨준 작품이긴 하지만 아쉬운 점은 여전히 남았다. 공포를 주는 영화의 패턴이 동일하고 강략의 변화만 있지 큰 변화가 없다는 단조로운 전개와 함께 여전한 결말이 문제였다. 원인모를 초자연적인 현상을 만드는 알 수 없는 공포의 실체는 조금씩 강도를 더해가며 불안감을 증폭시키지만 계속 반복되는 모습에선 단조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여전히 뭔가 남은 이야기를 기대하게 해 놓고 끝나버리는 결말은 이런 장르의 작품이 갖는 일종의 한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후 등장한 <포스카인드>에선 실제라고 믿게 하는 점에 강조를 두고 당시 녹화된 영상을 삽입하며 또 다른 시도를 하지만 되풀이되는 결말의 아쉬움은 여전히 남았었다. 하지만 <라스트 엑소시즘>을 보고 그 한계를 극복할 날도 얼마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한계 극복의 희망 <라스트 엑소시즘>"
<라스트 엑소시즘>도 페이크 다큐 작품이다. 사실을 담은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지만 잘 짜여진 각본된 연출 장면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마커스 목사가 왜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했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목사인 아버지로 인해 어릴적부터 남다른 말솜씨를 갖게 되었고 창작가의 기질이 남달라 화려한 쇼맨십을 보유한 그가 목사가 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3대째로 이어지는 퇴마사 (엑소시즘)지만 실제로는 악마를 믿지 않기에 엑소시즘은 쇼라는 증거를 남기려는 의도를 보여주기 위한 여정을 카메라는 담아낸다. 목사가 엑소시즘이 쇼라는 모습을 담아내고 퇴마 치료가 잘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때부터 본격적인 공포는 시작되는데, 순진하기만해 보이는 소녀의 변신이 진짜 무서운 공포로의 안내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부터의 이야기는 아주 오랜 공포 영화의 고전 <엑소시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이제 악마에 지배를 받는 소녀를 위해 마커스목사가 행하는 진짜 엑소시즘의 전개는 소녀를 위한 희생이라는 예상을 하게 한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라스트 엑소시즘>의 진가가 발휘하기 시작한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단조로운 예상에서 벗어나 스토리 흐름을 예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계속 전환해 나가는 것이다. 악마에 영혼을 지배당한 소녀인가 아니면 순결을 잃은 소녀가 위기를 넘기기 위한 연기인가에서부터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찾아간 주변 사람들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가까지 <라스트 엑소시즘>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쉽게 속단하지 않게 하기 위해 꽤나 복잡하고 다양한 스토리 전개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도착한 영화의 결말도 이전 작품들에게 느꼈던 것과는 달리 꽤나 자세하고도 충격적으로 결말로 라스트를 장식한다.
공포를 주기 위한 연출된 다큐방식임에도 드라마적 요소를 최대한 살리며 다양성을 모색했고 중간부분에서 영화는 소녀가 그린 그림대로 결말을 예고했기에 이들의 앞날은 비참할 것이라는 불안감은 한순간의 안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착하고 여린 소녀가 언제 돌변할 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이끌어간 종극에 결말은 지금까지 이런 류의 영화와는 달리 나름 매끄럽고 정리된 결말을 보여주며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에필로그"
입체감 넘치는 공포를 안겨준 작품이었다. 공포를 위한 단조로운 패턴이 아닌 나름의 꼬이고 뒤틀린 스토리로 이야기를 풀어갔고 결말도 꽤나 안정적이었다. 다만 정말 무서운 공포를 기대한다거나 명쾌한 해결을 바라는 결말을 바라지 않는다면 만족할만한 공포를 경험하게 될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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