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의 부재.. 그리고 그에 대한 감정들... ★★★★
20년 전 이혼했음에도 맞은편 아파트에서 살며 왕래하는 삶을 살고 있는 호세(페르난도 루한)와 노라(실비아 마리스칼). 어느 날, 노라는 호세의 모습을 망원경으로 살피며, 유월절 정찬에 부족함이 없도록 냉장고 가득 음식을 채워 놓고, 조리법까지 정리한 후 조용한 죽음을 맞이한다. 노라의 죽음을 가장 먼저 알게 된 호세는 유대교 식으로 장례를 치르려는 아들 루벤(아리 브랙맨) 및 랍비에 맞서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치르려 하고, 노라의 죽음을 모르는 파비아나(안젤리나 펠라에즈), 노라의 동생 리아(베로니카 랑헤르) 등이 노라의 집으로 찾아든다. 이 와중에 호세는 침대 밑에서 젊은 시절 노라가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와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의 초반에 카메라가 주목하는 건 노라의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아니라 노라의 손길이 켜켜이 쌓여 있는 아파트의 공간과 가구들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가구에도, 접시에도, 사진에도, 심지어 창틀에서조차 표정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만큼 이 아파트의 공간은 오랫동안 노라의 손길이 머물렀던 장소이고, 그녀의 미소를 기억하는 생명체로서의 유의미성을 내포하고 있다. 초반, 노라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살았던(!) 공간만으로도 노라라는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은 넓어지는 듯하다.
대체 그녀는 왜 자살을 했을까? 호세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결국 예상했던 일이 일어났다’는 식으로 얘기를 한다.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자살에 대해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일이 일어났다는 식의 반응은 보이질 않는다. 특히 호세는 시니컬하게 반응한다. “친절하게 커피까지 끓여 놓고 죽었군” 호세는 냉장고에 붙여 놓은 포스트잇을 바꿔 붙여 놓기도 하고, 아들과 파비아나에게 남겨 놓은 편지를 숨기기도 한다. 누군가의 죽음에 심통을 부리는 건, 죽은 누군가를 여전히 절실히 사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노인의 심통은 오히려 보는 사람을 더욱 애달프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느껴진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어둡거나 무겁게 다가오는 건 아니다. 죽음과 그로 인해 다가오는 빈자리를 그리고 있음에도 오히려 이 영화의 전반적인 느낌은 유머러스하고 경쾌하다. 종교에 대한 풍자가 잔잔한 웃음을 유발하고 취향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좌충우돌하는 모양새가 중남미 사람들의 낙천적 기질을 보는 듯해 그 자체로 흥미롭다.
그럼에도 영화가 막을 내리는 시점에서 느껴지는 건 가슴 저리도록 아련한 풍경이다. 성이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지만, 노라가 준비한 식사를 하며 웃고 화해하는 모습과 외간 남자와 찍은 사진의 사연을 찾아, 노라를 의심하던 호세가 끝내 노라가 그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있으며,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했음을 확인하는 장면은 관객의 얼굴에 미소를 깃들게 하며, 관객의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