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버지가 있다. 사회주의를 열렬히 신봉하는 그는 이국땅 일본에서 평생을 혁명을 위해 살았다. 사춘기도 지나지 않은 세 아들을 북으로 보낸 아버지는 자신이 믿는 바를 단 한번도 의심하지 않는 듯 보였다. 회의없는 신념을 부정하는 그의 딸은 철이 들면서부터 아버지를 증오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딸은 우연히 카메라를 들게 됐고, 특별한 가족, 그중에서도 아버지를 프레임 안에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법이 시작된다. 카메라 뒤의 딸은 투사인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눈을 뜨고, 카메라 앞의 아버지는 점차 자신의 진심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은 재일동포 양영희 감독이 십년에 걸쳐 홈비디오처럼 기록하고 완성한 결과물이다.
시종일관 감독의 시선과 일치하는 <디어 평양>의 카메라는 펜이나 눈이 아니라 손이고 마음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두 존재가 카메라를 통해 손을 내밀고 진심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거북한 질문을 끝까지 미루는 망설임까지 그대로 담긴 영화는 아버지와 딸에게서 이야기를 시작한 뒤 조직과 개인, 신념과 회의, 평양의 안과 밖을 중재하기에 이른다. 비교적 자유롭게 북한을 드나들 수 있었던 감독은 전력부족으로 어둑하기만 한 평양시내와 촛불을 켜놓은 채 진행되는 오빠 집에서의 작은 음악회를 함께 담았고, 북의 동포들에게 영웅대접을 받는 아버지에게서 어머니에 대한 솔직한 사랑고백을 끌어낸다. 좋은 대상과 이를 대하는 진심의 힘으로, 두서없이 시작한 사적 다큐멘터리가 사회 및 역사와의 접점을 찾는 그 과정은 가까운 친구와의 수다처럼 내밀하고 따뜻하다. <송환> 등의 좋은 다큐멘터리가 그러했듯, <디어 평양>은 관객으로 하여금 멀게만 느껴졌던 완고한 신념가의 맨 얼굴을 마주하게 하고, 진심으로 그들의 안부를 묻게 만든다.
평생을 바칠 만한 신념을 가진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어야 하지만, 그에 따른 대가는 너무나 가혹하다. 세월 속에 변하는 것과 변함없는 것 혹은 변할 수 없는 것들을 때로는 멀찍이서 때로는 코앞에서 응시하는 양영희 감독이 늙어가는 부모와 쇠락하는 북녘을 대하는 태도는 거의 비슷하다. 마냥 뿌듯할 수도, 무작정 슬퍼할 수도 없는 현실에 대해 감독은 섣불리 가치판단하지 않고, 카메라를 통해 대상을 이해하게 된 감독의 변화는 영화 속에 그대로 반영된다. 세상에는 때로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이 그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슬프고도 행복한 그 과정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다큐멘터리가 지닌 몇 가지 커다란 힘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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