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조강은 노란 우비를 입고 다니는 전학생 아리를 좋아하게 된다. 자기 몸을 만지면 저주를 받는다고 믿는 아리는 함께 비를 맞았던 조강이 홍역을 앓은 다음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10년 뒤, 서울로 이사온 조강(조승우)은 갑자기 나타난 아리(강혜정)를 만나기 위해 고향으로 간다. 두 아이는 아리가 살고 있는 암자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며 연인처럼 가까워지지만, 아리는 또다시 사라지고 만다. 다시 8년이 흐른다. 포기하지 않고 아리를 찾던 조강은 느닷없이 나타난 아리에게서 다음날 미국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는다.
<도마뱀>은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고 그저 사랑하기만 하는 순수한 연인의 이야기다. 조강은 등굣길에 눈이 마주친 아리를 곧바로 좋아하게 되어 이십년이 지나도록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함께 보낸 시간이 반년도 되지 않을 아리를 위해 무엇이라도 한다. 아리도 마찬가지다. 외계인이기 때문에 언젠가 지구를 떠나야 한다고 거짓말하는 아리는 조강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자 도마뱀 꼬리처럼 사랑을 끊어내고 달아나곤 한다. 그러나 순수한 사랑이라는 컨셉을 바꿔 생각해보면 작위적이거나 어린아이 같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마뱀>의 약점은 그것이다. 조숙한 여자아이, 순박한 시골소년, 조강이 UFO를 부르기 위해 밀밭을 밟아 만든 미스터리 서클, 환자를 병원에서 데리고 도망나가는 몰상식한 행태, 어릴 적에 시작되어 평생을 가는 사랑. 자연이 배경이나 인공적인 설정으로 가득한 <도마뱀>은 <가을동화> <겨울연가> 등의 윤석호 PD의 드라마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점이 <도마뱀>을 향한 반응이 갈리는 지점이 될 것이다.
사랑은 운명이고, 세월과 함께 쌓이는 정보다 처음 주고받는 시선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도마뱀>을 아름다운 사랑의 교본과도 같은 영화로 느낄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는 조강이 8년 만에 나타난 아리의 발목을 구두끈으로 묶는 장면처럼 마음을 파고드는 감수성이 빛나는 대목도 있다. 그러나 사랑도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도마뱀>은 보기에 좋으나 쓸모는 없는 장식품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10년 만에 불쑥 나타나 키스 한번, 8년 만에 다시 나타나 사랑한다는 말 한번. 이슬만 먹고 사는 듯한 <도마뱀>은 사랑하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라기보다 머나먼 천상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사랑 그 자체를 위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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