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가 된 수도원의 지하에 자리한 거대한 동굴을 탐사하는 <케이브>의 주인공 일행이, 영화가 시작된 지 30분 만에 맞닥뜨리게 된 어려움은 다음과 같다. 출구를 짐작할 수 없는 미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생물체. 이제 영화는 우주공간이든 밀림이든 음습하고 까마득한 동굴이든 미지의 공간을 배경으로, 진화의 섭리와 동떨어져 존재하는 미확인생물과 사투를 벌이는 인물군상을 그리는 장르물의 법칙을 묵묵히 따른다. 베일에 싸여 있는 괴물과 관련해 힌트를 제공하자면, 영화의 배경이 드라큘라의 나라 루마니아라는 점.
탐사전문가와 생물학자, 비디오 촬영가 등으로 구성된 아홉명의 탐사대는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예정된 수순처럼 한명씩 사라지고, 괴생물체의 면모는 그 끔찍함을 더한다. 이 과정에서 초반에 희생되는 백인남자 캐릭터를 서로 구분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 사실 권위적인 탐사대장 잭(콜 하우저)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의 캐릭터는, 제작진에게 그다지 중요한 고려대상이 아니었다고 보는 편이 옳다. 아기자기한 캐릭터의 묘미를 대신하는 것은 동굴이라는 환경, 그리고 이에 적응하다보니 수중전부터 공중전까지 가능해진 괴물의 엄청난 능력이다. 여자대원 찰리(파이퍼 페라보)가 로프 하나에 의지해 절벽을 오가며, 양쪽에서 달려드는 괴물과 벌이는 사투는 주어진 환경과 조건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노력의 결과. 이는 제작진과 챨리, 괴물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영화 속 최고의 장면으로 꼽힐 만하다.
<케이브>는 미국 개봉당시, 개봉 6주차까지 제작비 3천만달러의 절반을 회수하는 데 그치는 등 관객과 평단 모두에 외면당했다. 에일리언을 본뜬 듯한 외모를 지닌 괴물은 익숙하고, <그림형제: 마르바덴 숲의 전설>의 씩씩한 여전사 리나 헤디, <로스트>의 재미동포 배우 대니얼 대 김 등의 얼굴만 눈에 익은 캐스팅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괴물의 숙주가 된 인간이 점점 변해가는 과정과 여기서 착안한 결말의 반전은 전형적이다. 그러나 폐쇄된 공간에서 맞닥뜨린 괴물과의 접전을 그린 모험물과, 루마니아산 뱀파이어가 깊은 동굴 속 괴생물체의 후손일지도 모른다는 고딕호러적 가정을 버무린 설정은 제법 신선하다. 애초의 아이디어를 능란하게 조리하는 솜씨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나, 무리한 악수(惡手)를 시도하지 않는 뚝심은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