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영화 <세 가지 사랑, 정사>는 사랑 혹은 섹스에 대한 이야기지만 아닐 수도 있다. 영화는 20대 소냐, 30대 니콜, 40대 에바의 사랑과 섹스를 화두로 세편의 에피소드를 엮어내지만, 이 화두는 궁극적으로 인생의 진면목을 간파하고 통찰하는 한 방법일 뿐이다. 이는 사랑과 섹스가 일상의 일부이고, 그러한 일상이 모이면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종합병원 간호사로 일하는 에바는 무난한 남편, 사춘기 딸과 함께 중산층의 평범한 생활을 꾸려가고 있고, 니콜은 이혼한 뒤 어린 아들을 데리고 혼자 살고 있으며, 마트 계산원으로 일하는 소냐는 유고 출신 남자친구와 동거하고 있다.
조용하기만 한 에바의 일상에 파문이 이는 건 우연히 만났던 남자와 재회하면서이다. 두 사람은 호텔에서 비일상적인 성행위에 탐닉하고 카메라로 상대의 몸과 현재의 순간을 기록한다. 일상을 함께 나누지 않는 이들은 말보다 존재의 증거인 사진이 더 편안한 소통수단일지 모른다. 셋 중 제일 복잡한 사연의 주인공 니콜은 폭력적인 전남편과의 지긋지긋한 인연에 종지부를 찍고 싶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남편은 아니라도 그는 여전히 아들의 아버지이며, 신혼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이 증명하듯 공유하고 있는 과거는 단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에바와 니콜에 비하면 소냐는,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간직한 채 구절양장 인생사연을 만들어가려는 출발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소냐는 사랑의 허상을 자각하기에는 아직 어리고 사랑과 집착을 변별하기에는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이다. 임신하였다고 거짓말을 한 그녀는 잡지에서 아기 사진들을 오려 상자에 모아두고 진짜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한다.
이음매가 매끄러운 이 옴니버스영화를 보다보면, 공통점이 없어 보이던 세 여성의 삶이 어느 지점에서인가 스르륵 겹치면서 한편의 ‘여자의 일생’으로 재구성된다. 소냐의 병적인 집착과 너무나 적나라한 에바의 성행위 사이의 간극은 단지 세월이 갈아입는 옷 같은 것 아닐까. 사랑을 확인하려 안간힘을 쓰는 소냐도 어쩌면 이십년쯤 뒤에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애인하고 있지만 이혼을 원하지는 않아”라고 에바처럼 차분하게 말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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