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침묵 - 침묵의 위대함을 자기 부정한 결말 첩첩산중에 위치한 카르투지오 수도원을, 촬영 허가까지 19년을 기다려 필립 그로닝이 카메라에 담아낸 ‘위대한 침묵’은, 제목대로 수도사들의 묵언 수행을 묵묵히 스크린으로 옮겨온 러닝 타임 162분의 다큐멘터리입니다.
두 명의 수도사가 새로이 수도원에 들어오는 겨울로부터 시작하는 ‘위대한 침묵’의 카메라가 주목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미사와 기도, 묵상으로 이어지는 수도사들의 엄격한 일상과, 수도원의 안팎에서 정지된 듯 미세하지만 큰 움직임을 보이는 시간과 자연입니다.
극도로 절제된 금욕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이면의 수도사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수도사를 맞이할 때 말없이 따뜻한 미소로 환영하는 모습이나, 수도사의 방에는 수도가 없어 복도에서 물을 길어야 할 때, 마주치는 수도사가 길을 비켜주며 배려하는 모습, 그리고 한 겨울을 맞이해 눈 덮인 산에서 미끄럼 놀이를 하며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장면은 무채색 로브를 입은 수도사들 역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한 쪽 다리를 잃은 고양이를 비롯해 여러 마리의 고양이에 먹이를 주는 노 수도사의 모습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일상인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성서의 구절을 인용한 각 장의 서두의 자막이 제시된 후, 스크린 너머를 응시하는 수도사들의 눈동자는 차마 넘볼 수 없는 청명함으로 충만해, 수도사들을 마주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며 죄의식을 느낄 정도로, 그들이 속인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성직자임을 입증합니다. 동료 수도사와의 대화가 가능한 주말의 산책 시간을 제외하면, 매일 같이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침묵을 지키며 신앙을 탐구하는 일은 보통 사람이 넘보기 힘든 것임에 분명합니다. 구구한 대사와 암시가 배제되어 있기에 오히려 수도사들이 과연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 더욱 집중하도록 만드는 장점도 있습니다.
성당 입구 성수의 미세한 떨림, 바람에 휘날리는 새하얀 눈발, 싱그러운 초록 풀잎 위에 듣는 빗방울, 영겁으로 이어진 수도원의 복도에 비치는 햇살, 목조 복도 바닥을 걷는 수도사들의 웅장한 발걸음은 정지된 듯한 수도원 속에서도 시간은 분명 흐르고 있으며, 작은 변화가 모여 큰 깨달음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침묵은 금’이라는 격언을 깊이 각인하며 엔드 크레딧을 맞이하기 직전, ‘위대한 침묵’이라는 제목 자체를 스스로 뒤엎는 시각 장애인 수도사의 직선적인 인터뷰는 150여 분 동안 어렵사리 유지해온 침묵의 기조를 자기 부정하는 옥에 티로 남았습니다. 직접적으로 주제를 제시할 것이 아니라, 충분히 많은 질문을 던졌으니, 질문에 대한 답을 관객이 스스로 생각하며 극장을 나서도록 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습니다.
내러티브와 내레이션이 없으며, 대사도 거의 없는 영화의 특성을 강조하기 위함인지, 메가박스 코엑스에서는 이례적으로 본 영화 상영 전 ‘위대한 침묵’의 예고편을 먼저 상영했습니다. 아마도 대사가 없는 다큐멘터리라는 사실에 당혹스러워 하지 않도록 배려하기 위한 조치로 보입니다. 중년과 노년의 관객들로 객석은 거의 만석이었는데, 팝콘과 콜라를 씹고 마시며, 영화를 통해 침묵이 이끄는 성찰을 방해하는 이들이 있어 안타까웠습니다. 다른 영화라면 몰라도, ‘위대한 침묵’ 만큼은 팝콘과 콜라 따위는 깨끗이 포기하고 관람하는 편이 좋습니다. 수도사의 평생 금욕에 비하면 160분의 금욕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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