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렉의 또 다른 속편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놀랍지도 설레지도 않는다. 지난 속편도 별다른 흥미를 주지 못했기에 그런 마음은 어찌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진짜 마지막이란다. 그 말에 조금 짠한 마음이 든다.
"발상의 전환의 1편 그리고 속편의 쇠락"
2001년 <슈렉>이 처음 등장했을 때 정말 놀랐다. 이제껏 만화나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은 서로 누가 더 예쁜가나 귀엽고 친근한 이미지인가를 경쟁하여 승패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슈렉'은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아무리 도깨비라도 짧고 못생긴 외모에 색깔은 녹색이라 애정이 가는 구석이라고는 찾기 힘든 모습이다. 처음 이 작품을 기획할 당시 얼마나 많은 논의가 있었을까... 모르긴 해도 도박에 가까운 모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곧 슈렉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지금껏 예쁜 장난감에 실증이 나서 못생긴 주인공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슈렉을 좋아했다. 그런 성공이 속편을 부추겼고 그나마 짜임새가 있었던 <슈렉2>는 전편만 못한 인상을 남긴 채 마치고 만다. 등장 인물이야 그대로 등장하고 목소리 주인공도 바뀐것이 없지만 주인공 주변의 인물로 새롭게 만들어진 이야기는 신선함이 없는 어설픈 스토리가 가장 큰 문제였다.
그리고 <슈렉 2>가 나온 지 3년이 지나 이제 슈렉이 거의 잊혀질 무렵 <슈렉 3>가 개봉했다. 아직 슈렉의 인기가 확실히 아이들의 지지로 구축된 아성을 이었기에 3편도 좋은 분위기로 시작했다. 그러나 3편은 스토리나 작품성 모든 면에서 전작과 확연한 격차를 보이며 쓸쓸히 퇴장하고 만다. 더 이상 신선할 것 없는 캐릭터와 별로 연관도 없어 보이는 등장인물로 스토리를 이어가려는 무리수가 가장 큰 문제였다. 그리고 또 3년이 지난 2010년 <슈렉 포에버>라는 이름으로 속편이 개봉했다. 하지만 이미 이런 분위기를 알고 있어서인지 '이번이 마지막 작품입니다.... (그러니 봐 주세요)'라며 막장임을 강조한다.
1편을 능가하는 속편을 찾아보기 어렵듯 <슈렉>도 속편은 1편만큼의 즐거움과 재미를 주지 못하는 작품이고 그 이유가 매 작품마다 감독이 교체되는 이유로 일관성 없는 전개도 문제지만 어쩌면 '슈렉'이 처음 등장했을 때 보여준 참신함이 이제는 식상함으로 바뀌어 슈렉 자체가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캐릭터가 된 때문은 아닐까 생각도 든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번 속편에서도 여전히 주변의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 색다른 이야기를 준비한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전편에 비해 스케일이 커졌다. 마법의 주문으로 슈렉의 생명이 위태롭게도 설정되었다.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이라는 아쉬움과 지난 날을 함께 해 온 희대의 캐릭터가 조용히 마무리하는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아이를 위한 그리고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슈렉의 외모가 정 반대의 캐릭터로 참신한 바람을 일으켜 인기 몰이를 한 것도 이유지만 <슈렉1>은 이야기에 반전이 숨어있었다. 지금껏 작품 속 공주는 예쁘고 착한 캐릭터이지만 마법이 풀린 공주의 모습은 샤말란 감독의 <식스센스>처럼 깜짝 반전이 숨어있었다. 인간으로 변하는 것이 형벌이라는... 그리고 예쁜 공주가 무술도 잘한다는 의외성도 한 몫한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슈렉의 성공 요인 중 스토리가 차지하는 부분이 매우 중요했다. 그런 이유로 2편이나 3편으로 가면서 어른들의 눈 높이에 턱없이 부족한 스토리라인은 결정적인 마이너스로 작용해 어른들의 발길을 끌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4편은 조금 달랐다. 마법사의 주문으로 자신이 꿈꾸던 지난 날의 무서운 도깨비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이들도 좋아하는 마법의 이야기이고 이에 더해 이야기 책으로 읽었던 '피리부는 사나이'도 등장시키며, 마녀나 도깨비 무리들이 함께 춤추는 모습등을 넣어 아이들 눈 높이에서 즐기며 볼 수 있도록 했다. 장화 신은 고양이가 살이 불었고 당나귀나 피요나마져 슈렉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은 애들 눈에서 보면 안타깝고 더욱이 하루 내 진정한 사랑의 입마춤을 하지 못하면 영영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슈렉의 안타까운 상황은 슬프기까지 할 것이다.
그런 이면에 이번 스토리는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도 숨어있다. 애들의 손을 잡고 함께 관람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슈렉의 처지가 100% 공감가는 상황이다. 힘겹고 정신없는 반복되는 일상으로 결혼 전을 꿈꾸며 한번 쯤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남편에게 슈렉의 고민은 딱 자기가 하는 고민이다. 그리고 그런 남편의 바램으로 화가 치밀어 오르는 아내의 모습은 피오나를 보면서 위로가 될 것이다. 결혼 후 아내와 자식이 족쇄처럼 느껴져 힘겨운 결혼 생활을 하는 부부에게 이 영화는 일종에 <부부 클리닉>인 셈이고 그런 면에서 보면 이번 속편은 관람 대상층 모두에게 공감을 얻어내는 이야기 구조를 담고 있기에 다른 속편보다는 훨씬 완성도 높은 작품이란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래서인지 배경음악도 어른들의 귀에 익은 'Carpenters의 Top of the world'나 'Enya의 Orinoco Flow', 'Lionel Richie의 Hello'로 마음을 따듯하게 해준다.
게다가 <아바타>처럼 녹색 괴물 대 럼펠의 마녀들과의 대결 구도도 흥미롭다. <터미네이터>처럼 저항군의 모습으로 반란을 꿈꾸는 그들의 모습은 슈렉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이었기에 색다른 재미도 준다. 비록 전투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나름 훌륭한 대전이었다. 그 중에서도 '왜 안나올까'하고 기다렸던 불뿜는 용과 당나귀와 슈렉의 연합 대결 모습은 가장 박진감 넘치는 짜릿한 전투였다.
"아름다운 마무리"
연이은 속편의 아쉬움을 달래주기에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재미를 주려한 노력과 색다른 시도로 여러 세대를 타겟을 삼아 스토리를 가져간 <슈렉 포에버>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보여주었다. 더 이상의 슈렉은 오히려 비참한 현실만을 실감한 채 쓸쓸히 퇴장할 수 있다는 걸 아는 제작진은 마지막을 선언하는 용감한 결단을 내린다. 슈렉은 2001년 참신한 발상과 반전이라는 스토리로 지금껏 다른 캐릭터가 누려보지 못한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빼어나게 예쁘고 귀엽지도 않은 캐릭터로 이런 결과는 어쩌면 아이러니하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故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 책 제목처럼 슈렉은 아름다운 마무리를 보여주며 이제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오우거라는 종족을 알리고 녹색 괴물도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준 슈렉. 수다스러운 당나귀와 장화 신은 고양이를 또 볼 수 없을 지 모르지만 그들이 있어 지난 10여년은 행복했다. 우리 아이들도 가끔 슈렉을 틀어달라며 좋아하는 걸 보면 앞으로도 슈렉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잃고 나서야 비로소 슈렉이 알게 된 가족의 소중한 가치를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슈렉에서 그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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