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즈의 문제(A Matter Of Size)
코미디, 드라마 | 이스라엘, 프랑스, 독일 | 93 분 | 개봉 2010.04.15 | 샤론 메이몬, 에레즈 다드모르, 이지크 코헨(헤르젤), 드비르 베네덱(아론), 스믈릭 코헨(삼미), 아론 다한(기디), 이리트 카플란(제하라) 더보기 국내 12세 관람가
수없이 많은 연극 무대에 섰지만, 다른 배우들과 함께 옷을 갈아입은 적이 없을 정도로 남들 앞에서 맨살 보이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내가, 이 영화에 출연한 건 지금 생각해도 기적 같은 일이다. 심지어 나는 수영도 옷 입고 할 정도였다. 그런 내가 손바닥만한 헝겊만 걸친 채 숲 속을 달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사이즈의 문제>는 배우로서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다. 촬영을 하면서, 헤르젤처럼 내 자신을 수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지크 코헨(헤르젤 역)
영화 <사이즈의 문제>는 더도 덜도 아니고 딱 사이즈가 문제(A Matter Of Size)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제목을 우리말로 옮기는데 이 작품만큼 고민 없이 직역을 해도 될 만한 작품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논문도 아니고 직역을 한다고 한들 그 의미를 그대로 해석하도록 둘 리가 없습니다.
<사이즈의 문제>는 사이즈를 ‘문제’로 보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이자 답변입니다. ‘나’인가, 아니면 ‘사회(=관계)’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비해 내용은 코미디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150Kg이 넘는 주인공 헤르젤(CG라던가 분장이 아닌)은 단짝 친구들도 있고, 직장도 있으며, 여자 친구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외모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을 때 얻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취업, 우정, 사랑, 세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허면 억만장자인가 싶었더니, 헤르젤이 낡은 소형차를 타고 도착한 집은 평범한 소시민 가정집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헤르젤이 어렸을 때, 몸무게 때문에 베란다가 무너지는 사고로 돌아간 아버지의 비극으로 보아, 전에도 부자였던 적은 없어 보입니다. 적어도 베란다가 튼튼한 집에서는 살지 못했단 말이죠.
아무려나 대한민국 사회에서라면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세 가지 빛나는 아이템을 획득한 헤르젤은 대단한 용자입니다!
그런데 헤르젤의 사정을 들여다보니 그다지 희망적이지는 않습니다.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해야 할까요. 우선 단짝 친구들은 하나같이 기본이 120Kg 정도의 만만치 않은 덩치들입니다. (게다가 그중 한 명은 게이입니다.) 요리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지만, 뚱뚱한 외모 때문에 구박을 받고는 직장을 때려치우기 일쑤이구요. 다이어트 클럽에서 만난 여자친구 제하라도 몸무게 역시 세 자리입니다. (영화 초반, 제하라가 105Kg으로 빠졌다고 담당 코치에게 칭찬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극중에서는 그때가 가장 날씬할 때입니다.)
세 가지 아이템 소문에 혹해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건 뭐 준다고 해도 썩 내키지는 않습니다. 역시 사이즈가 문제로 보입니다. 다이어트 전쟁이 21세기 최고의 화두가 된 지가 언제인데 말이죠. 냉정하게 실제이고 사실입니다. 영화는 이제부터 살을 빼는 과정을 보여주겠지 싶기도 합니다. 살을 빼는 건 외모 이전에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니까 말이죠. 하지만 우선 주인공은 고지혈증으로 쓰러지기 전에 스트레스로 쓰러질 판입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돌아온 헤르젤을 두고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더 뚱뚱하다”며 잔소리를 늘어놓습니다. 역시 몸피가 만만치 않은 헤르젤의 여자친구 제하라를 두고도 “손주만은 날씬한 아이들을 보고 싶다”면서 반대를 하지요. 결혼을 해서 친구들 중 가장 무난(?)하게 사나 싶었던 아론은 알고 보니 아내가 바람을 피웁니다. 게이인 기디는 관련 웹사이트에서 애인을 찾아보지만 자신의 뚱뚱한 모습을 숨기기에 바쁩니다. 그러고 보니 친구들 중에 TV카메라맨인 삼미만 딱히 밖으로 불거진 문제가 없어 보이네요.
삼미는 뚱뚱한 외모보다는 내내 특종을 잡기 위해 고심인데요. 영화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카메라맨이 뚱뚱하다는 건 특종을 발 빠르게 찾아다니지 않는 게으름 탓이라고 구박을 받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삼미는 극중 TV 방송을 통해 미디어에 당당히 자신들을 밝히는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이때 드러나는 갈등은 당당히 자신을 드러내길 주저하는 헤르만과의 갈등입니다. (즉, 헤르만과 제하라의 갈등 요인으로, 이를 계기로 제하라가 살이 찔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도 연관이 됩니다.)
헤르젤이 가진, 그다지 부럽지 않은 세 가지 아이템마저도 점점 녹이 슬고 빛이 바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때! 드디어 마스터가 등장하지요. “너무 말랐어”라는 화두와 함께 말입니다. 드라마로 우리에게 익숙한 샤프한 셰프(chef) 이미지와는 멀지만, 아무려나 셰프에서 접시 닦기로 전락한 헤르젤을 아예 미치도록 만들려는, 놀부 심보일까요.
생긴 얼굴로 보면 놀부처럼 생기기도 했습니다만, 일본식당 사장 키타노가 던지고 간 그 얘기는 진심입니다. 정작 자신은 날씬하면서 뛰어난 스모 코치였던 그의 눈에는 헤르젤의 몸이 그다지 눈에 차지 않습니다. 사고의 일대 전환! 이스라엘에서 참으로 드물지 싶은 일본 식당 접시 닦기를 운 좋게 고른 헤이젤은 그리고 그의 친구들은, 이제 스모라는 천국의 문으로 들어섭니다.
이스라엘에서, 직장을 구하러 간 곳이 일본식당이고, 사장이 스모 코치 출신이라니. 우연치고는 로또가 생각나는 대목입니다만, 이후 헤이젤 패거리의 과정이 또한 바늘귀를 통과하는 낙타들처럼 만만치가 않습니다.
사이즈의 문제를 푸는 방법으로, 이 영화는 ‘사이즈’를 고민하지 말고, 이를 문제로 보는 ‘문제’ 자체를 들여다보라고 얘기합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극중 캐릭터들은 뚱뚱할 뿐 매우 건강하고 가끔 괴력을 발휘합니다. 씨름 선수들이나 역도 선수들이 매우 건강하듯이 말입니다.단순히 외모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건 네가지 혈액형으로 성격을 나누는 방식만큼이나 근거가 희박한 일입니다. (주인공들의 지방과 탄수화물 위주의 식습관을 보면 건강이 좀 염려되긴 합니다.)
기디는 스모를 통해 자신감을 찾고 드디어 당당하게 커밍아웃을 합니다. 기디의 경우를 보듯이 이 영화는 단순히 비만을 다루는 건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이 아랍과는 또 다르다지만, 유대교 사회가 동성애자에게 관대할 리가 없지 싶습니다. 다시 말해 영화는 “취향을 ‘문제’로 보는 너희가 바로 문제야!”라고 말하고 있는 셈인데요.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이스라엘 감독이 만든 작품이고 보면, 비만보다는 오히려 동성애자 문제를 에둘러 표현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다만 허점이 종종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스모가 국민 스포츠인 일본은 이스라엘과 다르게 비만에 관대할까요? 그럴 리가요. 일본여성들이 다이어트에 얼마나 목을 매고 있는데 말이죠. 키타노 선생은 일본에서도 몸무게에 너그러운 극히 소수이지요. 우리나라에도 역도 씨름 코치가 몇 분이나 계신지 따져보면 그렇지죠.
아무려나 이 영화는 심각하게 비만 혹은 동성애자 문제를 파고드는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남녀노소 가볍게 볼 수 있는 코미디 형식을 취하면서도 또 한 번쯤 당연히 빼는 게 장땡이다! 싶었던 문제들을 환기시켜 줍니다.
비만과 동성애를 같은 등가로 보는 게 맞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이것저것 따지기 전에, “그들을 그냥 내버려둬!”라고 눈을 부라리는 정도라고 이해하면 되지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지막 장면이 참 인상적입니다.
꽤 매력적으로 보이는 제하라는 사실 속으로 곪은 상처가 짓물러 터질 지경입니다. 당장 남녀를 구분하는 전통에 따라 스모를 할 수 없기도 하고, 교도소에 다이어트 식단을 도입하려다가 실패하기도 하고, 굶어도 살은 점점 더 찌고, 남자친구는 믿을 녀석이 못되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살이 안 빠지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하라가 드디어 아기를 가졌기 때문인데요. 여성이 생명을 잉태하면 자연히 살이 오른다는 진리(단순히 배가 나온다는 게 아니라)는 한편으로 살찌는 게 무조건 나쁜 건 아니라고 애교 있게 역설합니다.
그리고 가족 구성은 새로운 관계의 형성을 의미합니다. 헤이젤과 제하라의 아이들은 유전적이든 후천적이든 살이 찔 가능성이 높지만, 적어도 그 아이들은 살 때문에 ‘엄한’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시대에 살게 되리라는 희망을 갖게도 합니다. 스모가 이스라엘 인기 스포츠라 된다는 말이 아니라, 뚱뚱한 체로 만나 서로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행복한 부모를 두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헤르젤과 아론처럼 단짝인 두 젊은 감독이 힘을 합쳐서 만든 <사이즈의 문제>는 이스라엘 아카데미를 비롯, 세계 유수 영화제 9개 부분 10개 부분 노미네이트라는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다는군요. 이래저래 해피엔딩입니다.*
|